배우 박해일이 영화 ‘상류사회’(감독 변혁)로 돌아왔다. <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살인마로 의심받는 청년, 순박한 우체부, 노년의 소설가, 조선의 임금까지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다. 맡은 작품마다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들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새롭다. 위선적이고 욕망 가득하지만 어쩐지 밉지만은 않은 또 다른 모습이다. 수많은 캐릭터를 소화하고도 여전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것. 배우 박해일이 오랜 시간 대중들에게 신뢰받는 이유가 아닐까.

박해일이 신념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대학교수로 돌아왔다. 영화 ‘상류사회’(감독 변혁)를 통해서다. ‘상류사회’는 각자의 욕망으로 얼룩진 부부가 아름답고도 추악한 상류사회로 들어가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경제학 교수이자 촉망받는 정치 신인 장태준(박해일 분)과 능력과 야망으로 가득 찬 미술관 부관장 오수연(수애 분) 부부가 상류사회에 입성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갈증과 끝없는 야망을 보여준다.

‘상류사회’에서 박해일은 잘 나가는 경제학 교수이자 촉망 받는 정치 신인 장태준을 맡아 색다른 얼굴을 스크린에 펼쳐냈다. 그는 서민경제 발전을 위해 힘쓰는 인간적인 모습과 상류사회로 진입하고자 하는 야심가 기질이 동시에 존재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벽히 구현해 ‘믿고 보는 배우’의 진면목을 과시한다.

박해일이 ‘상류사회’에서 출세를 향해 달려가는 장태준 역을 맡았다. <김경희 기자>

최근 박해일은 <시사위크>와 만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상류사회’에 가장 끌렸던 이유 무엇인가.
“작품 자체가 갖고 있는 이야기의 밀도와 속도감에 매력을 느꼈다. 장태준이라는 캐릭터의 변화의 흐름도 굉장히 다채로웠다.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장태준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또 배우 수애와 처음 작품에서 만나면서 부부로 호흡한다는 것에 대한 궁금함과 반가움이 있었다.”

-수애가 먼저 ‘상류사회’ 출연 제안을 했다고 들었다.
“처음 제안한 건 맞다. 이후 정보를 듣고 영화사 쪽에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수애에게 고맙다. 배우가 배우한테 제안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 가지 고려할 점도 많고 상대 배우가 제안을 했다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제안을 해 준 것에 대해 정말 고맙다.”

-장태준을 연기하는데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뒀나.
“영화적이되 최대한 현실에 발붙인 남자로 생각을 했다. 전문직 직업인이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허점도 있고 인간미도 있는 그런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에서도 (그런 점이) 보였고 배우로서 다채롭게 해보고 싶었다.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각자의 방식대로 색깔대로 자기의 목표와 욕망을 보여준다. 태준 같은 캐릭터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차별점을 두고 싶었다.”

-정치입문자로 영화에서 간접경험을 했다. 기분이 어땠나.
“못해볼 것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간접경험이라도 했다. 사실적인 뉘앙스도 잘 살려보자 싶었다. 그래서 뉴스나 기사를 많이 찾아봤다. TV 토론회 같은 경우는 실제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안 보던 부분까지 보게 되고 패널들의 작은 뉘앙스도 관찰하게 됐다. 실제 YTN 세트장에서 경력 많은 앵커와 실제 교수와 함께 촬영을 했었는데 진짜 토론회 같은 느낌이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되게 떨렸다. 사실 안방극장에서 발 뻗고 토론회를 보는데 (촬영장에서는) 기에 눌리더라. 그 직업 분야에서의 또 베테랑이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준과 실제 박해일과 닮은 점이 있나.
“태준은 현실과도 타협이 가능한 친구고 실용주의적이기도 하다. 학자로서, 시민운동가로서 기질을 보일 때도 뜻을 이뤄낼 수 있다면 정치와 손을 잡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되게 재밌는 친구다. 나랑 그렇게 닮아있지는 않다. 그런데 수긍이 가는 인물이었다. 현실적이고 인간미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애착이 생겼다.”

박해일이 ‘상류사회’에서 정치인을 소화한 소감을 밝혔다. <김경희 기자>

-수연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석했나. 평범한 부부는 아니다.
“괜찮은 콘셉트 부부였다. 쿨하고, 친구 같고 동료 같았다.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둘의 관계는 끈끈하다. 오수연이 태준보다 더 세다고 본다. (오수연이 장태준에게) 때를 기다리지 말고 때를 만드는 사람이 좋겠다고 주문을 걸어주는데 장태준은 그대로 따라간다. 그래서 시작되는 거다. 태준은 그렇게 목표의식이 강한 사람 같지는 않다. 아마 결혼도 수연이 먼저 하자고 했을 것 같다. 수연이 때를 만들라고 얘기만 안 했어도 태준은 한량처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교수 생활을 오래 했을 수 있겠다. 불을 당긴 건 오수연이다.”

-실제 남편 박해일의 모습은 어떤가.
“나도 그렇게 나서서 당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캐릭터. 그래서 영화에서 세고 그런 것들을 하고 싶은 것 같다. 현실과는 상반되는 그런 곳에서 에너지를 찾나 보다.(웃음)”

-인간 박해일의 욕망은 무엇인가.
“배우이다 보니, 하고 싶은 작품에 참여해서 과정을 잘 겪는 것이다. 만들어낸 결과물 갖고 관객들한테 선보이면서 이런저런 얘기 잘 나눈 것. 나이를 먹어가면서 또 이야기들이 깊고 넓고 다양해진다. 오랫동안 그러고 싶다. 배우로서, 개인으로서의 욕심일 수도 있고 바람일 수도 있다.”

박해일이 ‘상류사회’를 준비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고 밝혔다. <김경희 기자>

-정치인의 성생활, 미술관 비자금 등 사회적으로 강도가 센 메시지를 담았다. 이런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가.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었던 것이 정확하게 내러티브가 있었고 그것은 창작물이라고 정해져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이 시사적인 사건과 뉴스에 나오는 것을 구체적으로 활용을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순수 창작물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없었다. 구체적 인물을 떠올렸거나 연기에 대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대에 맞게끔 세팅을 해야 되는 이야기다 보니 인물과 인물에서 겹쳐지는 수준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은 있을 수 있겠다 싶다. 판단은 관객의 몫인 듯하다.”

-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왔는데 연기해보고 싶은 직업군이 있나. 
“‘제보자’에서 언론인 역할 해봤었는데 다른 톤의 이야기와 캐릭터로 기자 역할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기자는) 힘이 어마어마하다고 본다. 최근 사건들만 보더라도 기자들의 힘이 무시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게 영화로 옮겨졌을 때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귀농해서 농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스릴러 말고 전원일기 같은.(웃음)”

-‘상류사회’가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는가.
“19세 이상이 볼 수 있는 드문 케이스의 영화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출세하고 싶고 성공해보고 싶어 하는 욕망들에 대해 한 번쯤은 ‘나는 어때?’라고 돌아볼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물론 영화 자체로 즐기셔도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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