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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이산가족의 눈물, 이제는 멈추게 해야 한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2년 10개월 만의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90넘은 부모와 70대의 자식이 부둥켜안고 70년 가까운 시간만의 만남에 감격하는 모습은 가슴 뭉클하지만, 결국 2박3일의 찰나 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주소를 주고받으며 편지하자거나 “오래 살아서 다시 만나자”, “통일이 되면 꼭 만나자”는 다짐을 하지만 그 말이 부질없다는 건 서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분단과 체제와 이념이 이런 비극을 만들었다고 책임을 떠넘기기엔 우리 인간이 너무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란 생각이 든다.

사흘에 걸친 상봉 일정이라지만 실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건 12시간에 불과하다. 헤어진 70년이 61만3,200시간에 해당하니 상봉의 장면은 그야말로 눈 감았다 뜨는 짧은 순간이다.

금강산으로 들어가 오후 단체상봉과 환영만찬을 하고, 이튿날 개별상봉과 객실에서의 도시락 점심 식사 등을 마치고 나면 마지막 날 '작별상봉' 일정이 성큼 다가와 있다. ‘작별상봉’이란 아이로니컬한 말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물이 흐르는 헤어짐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보기 어려운 길을 가야한다. ‘차라리 만나지 말걸 그랬다’는 이산가족의 외침은 상봉 트라우마의 고백이다.

남북한은 모두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인도적 사안이라고 강조해왔다. 남북 당국대화의 첫 머리에 이산상봉 카드를 꺼내며 경색국면을 풀어내는 윤활유로 써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측면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내막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남북 간에 이산가족 문제를 대하는 인식과 태도는 차이가 확연하다. 북한은 이산상봉을 철저하게 정치적 이슈로 삼아왔다. 상봉 문제를 협상장의 지렛대로 삼아 우리 측의 양보를 요구하거나 대북 식량지원을 챙기는 방도로 이용했다.

여차하면 예정됐던 상봉을 파탄내거나 아예 현장에서 행사 진행을 중단하며 이산가족과 우리 측을 압박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2004년 9차 상봉 때 통일부 간부가 ‘천출명장(天出名將, 김정일을 하늘이 낳은 장군으로 찬양하는 표현)’ 선전 글귀를 문제 삼고, 2006년 13차 상봉 때 TV 방송이 ‘납북’ 표현을 쓰자 북한은 행사 중단 카드로 이산가족을 애타게 했다.

이산가족 상봉에 있어 북한은 늘 ‘갑(甲)’의 위치를 차지해왔다. 우리 측이 아무리 상봉 정례화와 규모 확대를 요구해도 북한은 꿈쩍하지 않았다. 상봉 규모는 2000년 첫 이산가족 행사 때와 같은 남북 각 100명, 장소는 금강산이란 틀을 깨트리지 않아온 것이다. 물론 북한에 끌려가는 듯한 우리 정부 태도에도 문제는 없지 않았다. 1~3차 상봉 때 서울·평양을 동시에 상호 방문하는 상봉행사를 한 뒤 북한은 장소를 금강산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서울을 다녀간 북측 가족이 발전상에 동요할까 우려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덜컥 수용했고, 고령 이산가족이 교통과 숙박이 불편한 북측 지역으로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7월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3만2,484명이다. 이 가운데 7만5,425명이 숨졌고, 5만7,059명이 상봉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90세 이상 고령 상봉 신청자만 1만2,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상봉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식이다. 2000년 8.15 상봉 이후 18년간 21차례의 상봉이 이뤄졌으니 일 년에 겨우 한 차례 정도 만난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5만7,000명이 만나는데 500년 넘게 걸려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산가족 상봉단 구성을 위해 대한적십자사의 컴퓨터 추첨에 참가했지만 탈락한 평북 철산 출신의 박성은(95)옹은 “오늘 안 되면 언제 될지 알 수 없다. 내가 살면 몇 년 살겠나”라며 실낱같은 희망을 보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추첨장을 떠나며 “이제 이산상봉은 끝났다”고 말했다. 죽기 전에 가족을 한 번만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끝내 무너져버린 가슴 아픈 탄식이다.

이제 대통령과 정부, 국민 모두가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책적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이산상봉의 확대 등을 강조하고 나선 건 반가운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상봉 행사가 시작된 지난 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기적인 상봉 행사는 물론 전면적 생사확인과 화상 상봉·상시상봉·서신교환·고향 방문 등 상봉 확대방안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의 상시 운영도 강조했다. 통일부도 대통령의 언급 이튿날 국회 외교통일위에 “차기 적십자 회담 등을 통해 전면적인 생사확인과 고향 방문, 상봉 정례화 등을 북측과 본격 협의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역대 정부는 모두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그런 선언적 차원의 조치로는 북한을 움직이기 어렵다. 좀 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세와 전략적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결연한 의지를 갖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완화, 경협 등 많은 의제들이 테이블 위에 놓이겠지만 이산상봉 문제만큼 화급한 게 없다는 점을 김정은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와의 상봉을 오매불망 그리던 고령 이산가족이 매년 3,600여명 넘게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지난 7월에만 316명이 눈을 감았다. 이대로 방치하거나 간헐적이고 시혜적 성격의 ‘100명 상봉’에 머물다가는 이산의 한을 품고 숨지는 실향민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과 북한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산가족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는’ 국면이 닥칠 것이라고 말한다. 향후 10~20년이면 이산 1세대인 고령 이산가족 분들이 모두 사망하거나 상봉장에 나가기 어려울 정도가 될 것이란 측면에서다. 이른바 이산가족 문제의 ‘안락사’가 이뤄져 버리는 또 하나의 비극이 빚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침 남북한은 고위급 회담을 통해 ‘9월 중 평양 정상회담’에 합의한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과 5월 판문점 회담에 이어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 등 중대 이슈가 논의되겠지만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이란 숙원도 이번에는 꼭 챙겼으면 한다. 다른 의제에 밀려 이산가족들이 또다시 기약 없는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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