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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오늘과 내일’] 21세기 한국, 아직도 주적논쟁인가?
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시사위크] 하지 말아야 될 일이나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공연히 한 다음 두고두고 곤욕을 치루는 경우가 있다. 2년마다 발간되는 국방백서에 ‘주적’(主敵)이란 문구를 넣느냐 마느냐 하며 번번이 논쟁을 벌이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국방부는 지난 봄 남북정상이 발표한 4.27 판문점 선언의 정신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국방백서에 있는 ‘주적’ 문구를 삭제하거나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발행하는 공식 간행물에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한 채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적대행위 중지’ 등을 협의해 나간다는 것은 매우 모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서는 늘 그랬듯 강력 반대하고 나섰다. 남·북, 북·미간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모처럼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있다지만, 북한의 노동당 규약에 적화통일 개념이 버젓이 살아있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서다.

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이 등장한 것은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그해 3월 19일 판문점에서 남북 특사교환 실무회담이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북한대표 박영수 조평통 부국장이 “전쟁이 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이다.

이를 계기로 국방부는 그해 연말 국방백서에 처음으로 북한을 ‘주적’이라 명시했다. 박정희 18년, 전두환·노태우 12년 기간에도 없던 일이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하고 군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한 YS가 대북정책에서만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다가 그만 사려 깊지 못한 정책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이렇게 한국 정부가 북한을 ‘주적’이라고 공식화하자 당시 일본·중국 등 주변국들은  ‘북한이 주적이면 우리는 부적(副敵)이냐?’며 반발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국방백서를 내고 있는 어떤 나라도 책자에 ‘주적’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차 대전이후 미·소 양극체제 하에서도 두 나라는 상대방을 ‘주적’으로 부르거나 공식문서에 활자화하지 않았다.

미국은 ‘위협’(threat), 러시아는 ‘근본위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통일 이전 서독은 동독을 ‘군사적 위협’이라 표현했고 통일 이후 독일은 불특정 위협을 뜻하는 ‘도전’이란 용어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중국과 대만,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늘 교전중이거나 전쟁의 위험에 항시 노출돼 있는 나라들도 상대방을 ‘주적’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특히 중국은 이러한 용어사용에 매우 신중하다. 교전중인 상대는 ‘적(敵)’, 앞으로 교전 가능성이 있는 상대는 ‘가상적(假想敵)’, 전쟁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대는 ‘대수(對手)’로 각각 구별해서 사용한다. 중국은 평소 대만을 ‘가상적’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공식문서에는 그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얼었던 남북관계도 해빙무드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와 여당은 ‘주적’ 표현의 적절성 문제를 들어 삭제할 것을 주장했고, 야당은 당연히 반대하고 나섰다. 그 후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심각한 위협’ 또는 ‘직접적인 군사위협’ 등으로 순화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 대형 도발사건이 터지자 그해 국방백서에 북한을 다시 ‘적’으로 표현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 나온 백서는 2016년 판으로 이제 2018년 판이 나올 차례다.

국방부는 백서에 나와 있는 문구,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표현을 아예 삭제하거나 다른 말로 대체하기로 방침을 전한 것 같다. 현명한 판단이라고 본다. 아무리 군사적인 대치상태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정부발행 공식 문서에 상대방을 ‘주적’이라고 활자화하는 것은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적절치 못한 것 같다.

공연한 문구 하나 때문에 두고두고 애물단지가 된 ‘주적논쟁’은 21세기 한국의 국방과 국익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조선시대 제사 지내는 형식을 놓고 갑론을박하며 논쟁을 벌이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끝도 없이 반복되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이며, 논쟁을 위한 논쟁이요 싸움을 위한 싸움 밖에 안 되지 않는다. 양쪽의 논리가 나름 타당성을 갖고 있으나 그래서 얻는 게 무엇인가?

주적논쟁은 지난해 4월 제19대 대선후보 2차 텔레비전 토론회에서도 벌어졌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북한은 우리의 주적인가?’ 라며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고, 문 후보는 ‘대통령 될 사람이 할 발언은 아니다.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잘 풀어야 할 사람‘이라며 직답을 피해갔다.

그러자 대통령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북한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느니 없느니 하며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벌이다가 토론은 끝났다. 그래서 무슨 소득이 있었는가? 북한을 ‘주적’으로 표현하면 대적관이 확실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적관이 의심된다는 어처구니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논리가 21세기에도 통용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면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생각해 보자. ‘이런 나라가 우리의 주적’ 이라고 정부 간행물에 명시, 세계만방에 알리는 것이 과연 현명하고 전략적인 판단인가? 그들은 도대체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말인가?

만약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실체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주적 타령’을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전투능력을 증진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말이 아닌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실전능력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주적논쟁이야말로 김영삼 정부 당시 일부 국방부 고위 관리들의 단견(短見)이 만들어 낸 졸작이다. 그들은 신중하지 못했고, 전략적이지 못했으며, 멀리 보지도 넓게 보지도 못했다. 첫 단추 잘못 꿰면 줄줄이 어긋나게 돼 있듯이 신중치 못한 일처리는 항상 후과가 큰 법이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아직도 주적논쟁이나 하고 있을 때인가?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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