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라며 외교부에게 ‘재판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내라고 지시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중공업 주식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아직까지 결론을 맺지 못했다. 무려 18년이다. 2000년 5월 처음 제기된 이후 2012년 5월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을 거쳐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재상고한 뒤로 진척이 없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만 남은 상황이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왜일까.

강제징용 재판 고의 연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의심하고 있다. 한겨례와 JTBC 등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검찰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외교부 관계자들로부터 재판 연기를 주문한 사람이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는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에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라고 말했다는 것. 이에 따라 청와대 외교라인에서 외교부에 ‘재판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내라고 지시했다. 

공교롭게도 이때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맺은 직후였다. 일본 정부에서 위안부 합의 위로금 10억엔을 받기로 한 만큼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지였다. 하지만 외교부는 의견서 제출을 미뤘다. 한일 합의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억엔이 들어오는 대로 의견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외교부는 2016년 11월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환 조사를 검토 중이다.

이미 핵심 진술도 나왔다.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당시 법원행정처장에게 강제징용 재판 판결을 늦춰달라고 요구”한 사실을 밝혔다. 진술의 신빙성은 높았다.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올 경우, 외교적 문제와 함께 과거 한일협정에 대한 정당성 논란을 빚을 수 있다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고민이 깊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일협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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