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모집을 위해 가상화폐를 활용하는 가상화폐공개(ICO)가 부진에 빠졌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기업공개(IPO) 제도는 비상장기업이 투자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이다. 재무내용을 공개하면서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공매하는, 일종의 상장 준비단계다. 가상화폐 시장에도 가상화폐공개(ICO)라는 이름의 유사한 방법이 있다. 가상화폐를 받고 수익을 배분하거나 자사가 신규 발행한 가상화폐를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최근 ICO 시장은 위기에 빠졌다. 투자자들이 예전만큼 가상화폐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게 되면서 거래량이 줄었다. 해외 일부 국가들은 ICO를 합법화하고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제도화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 부실 많은 ICO, 가상화폐 열기 식자 모금액 급감

코인원리서치가 12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는 ICO 시장의 부족한 투자전문성을 문제 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ICO 중 11%만이 베타 아이템(시험용 제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42%는 초기 레벨(MVP 도는 알파)의 아이템, 나머지 47%는 단순 아이디어만으로 자금을 모집한다. 코인원리서치는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탈 기업들이 상용화 단계의 제품을 갖고 모집하는 투자도 성공률은 10%에 불과하다”며 가상화폐 투자 성공률은 이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매투자자가 많은 가상화폐 시장의 특성은 이와 같은 부실투자 현상을 더 확대시킬 수 있다.

ICO를 진행하는 업체들이 비현실적인 사업계획을 내놓는 것도 문제다. 보고서는 “많은 프로젝트들은 ICO로부터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내에 의미 있는 성과 내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IPO를 성공한 일반 기업들의 평균 연령은 8.8년이었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가상화폐 개발지연 문제가 대두되지 않은 것은 시장의 역사가 그만큼 짧기 때문이며, 앞으로 많은 종목들이 상품개발 계획 연기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코인원리서치에 따르면 현재까지 진행된 ICO의 90% 이상이 2년 미만 기업체며, 기준점인 8.8년을 넘은 것은 비트코인뿐이다.

코인원리서치의 분석은 최근 ICO 시장이 심각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시점이어서 특히 더 심각성이 높다. 블룸버그는 11일(현지시각) 8월 ICO 모금액이 작년 5월 이후 가장 낮았다고 밝혔다. 8월 한 달 동안 ICO 규모는 모두 3억2,600만달러로 작년 12월(30억7,700만달러)의 10% 수준에 그쳤다. 바로 직전 달의 자료와 비교해도 약 5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2017년 하반기부터 가상화폐 열풍과 함께 급속도로 성장한 ICO 시장이 이제 끝물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ICO의 거래도구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의 하락세는 ICO의 부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다. 5월 10일(현지시각) 757달러였던 이더리움 가격은 9월 13일(현지시각) 188달러까지 떨어졌다.

◇ 한국은 ICO 규정 전무… 금융당국 대책마련 나섰나

한국은 작년 9월부터 ICO를 금지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은 해외에 나가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그러나 ‘ICO 금지조치’의 근거가 되는 법률규정은 없다. 금융당국과 국회의 일부 의원들에게서 ICO의 합법화를 고려하고 있다는 언질은 간간이 나온 적 있지만 아직까지 당국이 명확한 계획안을 내놓은 적은 없다.

일반적으로 ICO 관련 규정에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되는 것은 자금모집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투자자 보호제도다. 코인원리서치는 ‘ICO 팩트체크가 필요한 시점’ 보고서에서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고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것, 프로젝트에 대해 경영자문을 제공할 것, 그리고 충분한 투자자금 집행과 시리즈별 투자집행구조를 확충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한 법률이 다수 상정돼있으며, 정기국회에서 거래자 보호방안을 중점으로 입법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금융당국은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ICO 현황조사에 나섰다. <한겨레>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에게 주주 현황과 ICO 진행 국가, 국내 홍보 방법 등 52개 질문을 담은 질의서를 발송했다. 금융감독원의 이번 실태조사가 본격적인 ICO 제도마련을 위해서인지, 또는 해외에서 ICO를 진행하는 업체들을 제재하기 위해서인지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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