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박용진 의원이 토론회를 반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과 언성을 높이고 있다. / 뉴시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박용진 의원이 토론회를 반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과 언성을 높이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조용했던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방이 터졌다. 1,878개 사립유치원에서 원장이 국가 지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비리 유치원명단을 공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물론 교육당국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유치원 비리는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은 일부 유치원 원장의 회계 비리 사태가 적발될 때마다 개인의 일탈로 전체를 매도한다고 반발해왔다. 정부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단휴업도 불사했다. 지난해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사립유치원 회계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집단휴업을 하겠다고 반발했고 결국 방침은 추진되지 못했다. 이런 일들이 쌓여 지금껏 사태를 키워온 셈이다.

유치원 원장과 학부모는 아이를 중간에 놓고 뒤틀린갑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이를 맡긴 부모로서는 유치원 업계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한유총의 집단휴업주장은 사실 아이와 학부모를 볼모로 삼은 협박이었다.

에 민감한 정치인들은 집단적인 저항 앞에서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지역구마다 20개의 유치원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유치원 원생이 100명이라면 학부모는 약 200명이 된다. 한 지역구에서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유권자만 4,000명이라는 의미다. 한 지역구를 넘어서 기초자치단체 내 유치원 원장이 힘을 합하면 적지 않은 표를 움직여 기초단체장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한 국회의원의 토로다.

사립유치원은 권리만 누리고 의무는 수행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 집단이기도 하다.

사립유치원은 사유 재산이다. 감사를 하려면 공립유치원을 하라.

지난 5일 박용진 의원이 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울려 퍼진 한 한유총 회원의 말이다. 국가 지원금은 받으면서 감사는 거부해온 사립유치원 업계의 솔직한심정을 담은 울분으로 들렸다. 박 의원은 이날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감시단과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실이 실시한 어린이집·유치원 실태점검에서 적발된 회계부정 사례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취지에서 토론회를 열었지만, 한유총의 토론회장 점거와 몸싸움으로 토론회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파행됐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은 개인 설립자의 사유 재산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다. 사립유치원은 2012년부터 매년 2조원의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 박용진 의원에 따르면, 각 사립유치원에 지원되는 항목은 누리과정 22만 원, 방과후과정 7만 원, 교사처우개선비 59만 원, 학급운영비 25만 원, 교재·교구비 10만 원 등이다. 모두 국민 세금이지만 국·공립유치원과 다르게 감사는 받지 않는다. 여기에 학부모들이 매달 내는 20~30만원은 별도다.

이유를 막론하고 저희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시는 학부모님들께 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유총은 깊이 반성하면서 대한민국의 유아교육을 한 단계 발전시켜 나가겠다. 이제 이번 사태는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하는 유아교육을 만드는 논의로 이어나가야 한다.

한유총은 16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엄포를 놓자 심각성을 느끼고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한유총 내부에서는 법을 어긴 유치원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유치원이 비리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으냐당당하게 우리 입장을 이야기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유치원 전수조사는 물론 비리 유치원 실명공개 등을 담은 종합대책을 내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공개된 비리 유치원이 있는 지역의 학부모들은 오픈채팅방등으로 모임을 만들고 맞대응을 준비 중이다. 지금껏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던 정부당국을 향한 압박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이미 여론은 돌아섰다. 지난해 한 유치원 원장은 한유총 집회에서 교육당국이 사립유치원에 간섭하지 말라고 외쳤다. “사립유치원은 사유 재산이라는 외침과 다를 바가 없는 말이다. 사립유치원 업계가 끝까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들이 바라는 신뢰하는 유아교육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