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이 코세기 디아나 기사에 대한 김성룡 전 9단의 성폭행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성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뉴시스
한국기원이 코세기 디아나 기사에 대한 김성룡 전 9단의 성폭행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성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김성룡 전 9단의 성폭력 의혹 사건을 조사한 한국기원이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질의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사건은 지난 4월 헝가리인 코세기 디아나 기사가 김 전 9단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바둑계 미투’ 논란으로 불거졌다.

한국기원의 ‘(코세기 디아나-김성룡) 성폭행 관련 윤리위원회 조사·확인 보고서’(2018년 6월 1일 작성)를 입수한 <경향신문>은 23일 “한국기원이 해당 사건을 조사하면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성 발언을 했다”면서 “한국기원은 피해자가 제출한 자료 채택도 거부했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내부 윤리위의 문제성 발언은 다음과 같다.

“김성룡 씨가 진술인(코세기 기사)과 노래방에서 춤을 진하게 추면서 호감을 갖게 됐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사실이 있느냐”

“진술인과 친구가 김성룡 씨와 다음날 바닷가에 가기로 했다면, 진술인은 그 약속을 한 시점에 이미 김성룡 씨 집에서 숙박할 것을 예정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김성룡 씨 집을 방문했던 진술인이 친구가 오지 않는다고 했음에도 계속 남아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다음날 가해자와 바닷가에 놀러간다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청바지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벗기가 쉽지 않은 옷으로, 디아나가 탈의에 협조했다는 김성룡 측 진술이 사실일 경우 준강간이 성립하기 어렵다”

이 같은 질의들은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전형적인 2차 가해 질문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당사자 간 호감이 있었다면 성폭력이 성립하지 않는다거나 피해자의 진술이 아닌 피해자의 복장 여부에 따라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코세기 기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전 9단이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이상해 아마추어 기사 ㄱ씨에게 전화해 안전한지 물었다”면서 “ㄱ씨가 ‘그 사람 요즘 외국인들이랑 일도 하고, 문제 없겠지’라고 말해 믿고 갔다. 친구를 기다리다 술을 많이 마셔 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바닷가에 간 것과 관련해서는 “일이 발생하고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친구 두 명을 따라다닌 것이고 친구들이 김 전 9단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 같아 같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리위는 코세기 기사가 사건 발생 후 친오빠에게 당시 상황을 알린 e메일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편집본이 아닌 전문을 가려오라는 이유에서다.

코세기 기사는 “사적인 내용이 많아 변호사의 조언을 토대로 관련 내용만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경향신문에 밝혔다. 결국 윤리위는 “김성룡 전 9단이 성관계를 시도한 것은 분명하나 성관계를 했는지, 준강간이 성립되는지 미확인됐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내놨다.

코세기 기사는 김 전 9단의 사과와 현 윤리위원을 제외한 차기 윤리위에서 보고서를 재작성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동료 프로기사 233명도 재작성 요청 서명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한국기원 측은 보고서 재작성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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