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근로자 중 "자발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작년보다 높아졌다. 사진은 지하철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모습.
비정규직 근로자 중 "자발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작년보다 높아졌다. 사진은 지하철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모습.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늘어난 취업인구 3만9,000명 가운데 3만6,000명은 비정규직 종사자였다. 비정규직은 일반적으로 ‘질 낮은’ 일자리로 인식되지만, 최근에는 “스스로 원해서 비정규직 근로를 하고 있다”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택한 이유를 물었던 설문조사 결과는 더 의외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어서, 또는 다른 일과 병행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근로조건이 마음에 들어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택했다는 응답자가 증가했다.

◇ 근로시간 줄고 월급 늘고

통계청이 30일 발표한 ‘2018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 중 현재 일자리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응답은 53.0%에 달했다. 2010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바탕으로 한 8년 전 조사에서 나타난 응답률은 45.5%보다 7.5%p 높은 수치다.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택한 사유로 ‘근로조건에 만족해서’라고 응답한 인구가 동기간 41.1%에서 53.8%로 늘어났다

특히 지난 1년 사이 스스로를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라고 인식한 인구가 크게 늘어났다. 올해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 53.0%는 2017년 8월 조사(50.0%)보다 3.0%p 높은 수치다. 최근 8년간 증가폭이 7.5%p였다는 것에 비교하면 지난 1년의 증가폭이 상당히 높은 셈이다.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 중 ‘근로조건에 만족한다’는 응답자의 비중 역시 지난 1년 동안의 상승폭이 3.7%p에 달한다(최근 8년간 12.7%p 상승).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만족도가 높아진 원인으로는 우선 임금수준의 상승이 뽑힌다. 2015년과 16년 조사에서 전년 대비 1~2만원밖에 오르지 않았던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7·18년 조사에선 각각 7만1,000원과 7만5,000원 상승했다. 올해 조사에서 기록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주당 평균 취업시간이 31.2시간으로 전년 대비 1.5시간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간당 임금의 증가율은 더 높다.

비정규직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 사이의 임금격차가 실질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7만5,000원이라는 월평균 임금증가폭은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증가폭(15만8,000원)에 비하면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다만 상대적 임금격차와 별개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비정규직 일자리의 절대적 임금수준이 개선되면서 최소한의 삶의 수준은 유지할 수 있게 된 인구가 늘어났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비정규직 일자리의 가장 큰 문제로 뽑히는 고용안정성도 다소나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근로자 중 근로계약서를 서면으로 작성한 비율은 2010년 50.3%에서 2018년 63.7%로 높아졌다. 전체 비정규직 인구의 약 41%를 차지하는 시간제 근로자의 경우 2010년 9.3%에 불과했던 국민연금 가입률이 2018년에 18.6%로, 건강보험 가입률은 동기간 10.6%에서 25%로 높아졌다. 2016년부터 국민연금 시행령을 일부 개정해 시간제 근로자의 연금 가입이 쉬워진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 ‘자발적 고령근로자’ 유입 늘어나

한국의 전체 임금근로자 대비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20.6%)은 영국·일본에 비해선 높지만 스페인·폴란드보다는 낮다. 비정규직 비율이 비슷한 네덜란드(21.8%)는 한국보다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이 소폭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 ‘자발적 비정규직’의 증가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이다. 임금이 상승하고 고용보장 비율이 높아진 것은 맞지만, 정규직과 비교하면 아직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문조사에서 “근로조건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말 ‘자발적’으로 근로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고령 노동자의 유입은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의 증가를 설명하는 또 다른 요소다. 경제인구조사에서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연령별 통계는 별개로 집계되지 않았지만,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고령인구의 비율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틀림없다. 올해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 중 60대 이상 인구는 전년 대비 12만6,000명, 50대 인구는 1만9,000명 늘어났다. 반면 20대와 40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감소했다. 2010년에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15.6%였던 60세 이상 인구는 이제 24.9%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고령취업자가 직장 선택의 이유로 안정성이나 유동성을 제시할 가능성은 낮다. 정년을 넘긴 인구가 비정규직 일자리에 취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 마련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비자발적 취업자 중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 비정규직 일자리에 취업했다고 답한 인구는 2015년 조사에서 77.8%까지 높아졌다가 올해는 75.8%로 소폭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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