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이날 회의에서 전국 법관들은 사법농단 연루 의혹 판사들에 대한 탄핵 촉구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뉴시스
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이날 회의에서 전국 법관들은 사법농단 연루 의혹 판사들에 대한 탄핵 촉구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사법 농단’ 연루 의혹 판사들에 대한 탄핵소추가 검토돼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권한이기 때문에 법원이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대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선 법원 스스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다만 법관들의 의지와 달리 정작 국회에선 정치적 논쟁이 한창이다. 실제 탄핵소추안이 발의될지 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법원노조는 우선적으로 연루 법관들을 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법관회의 탄핵결의안 가결에도 국회는 정쟁 중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의 탄핵 촉구 요구가 처음 나온 이후 일주일만인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같은 의견이 모아졌다. 각급 법원의 대표 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날 경기도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총 119명 중 114명이 참석한 가운데 2차 정기회의를 열고 ‘재판독립 침해 등 행위에 대한 헌법적 확인 필요성에 관한 선언 의안’을 논의했다.

여기서 ‘사법 농단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를 검토해야 한다는 안건이 105명의 찬성투표로 가결됐다. 현직 판사들이 현직 판사들에 대해 탄핵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결의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판사는 헌법으로 신분이 보장돼,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탄핵을 당하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는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날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나 재판 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자문을 해주거나 일선 재판부에 특정한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는 것은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고 지적했다. 투표 결과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특별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이 회의체가 공식 기구로 상설화된 만큼 마냥 국회로 공을 넘길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법관회의의 결의안이 나오자 국회에서도 각 당마다 입장을 내놓으며 대응 태세에 돌입한 상태다. 하지만 정족수 계산에서 쉽게 답이 나오지 않고 있어 정치적 논쟁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이미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인민재판식 마녀사냥’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쓰기도 했다. 바른미래당 역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형사재판과 징계는 엄연히 구분되는 절차인 만큼 정쟁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에 힘이 더욱 실리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 김준우 변호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그런 논리는 하나의 정치적 레퍼토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면서 “위헌 요소가 있을 경우 탄핵을 검토할 수 있는 것이고, 형사재판과는 별개의 절차인 만큼 적어도 법적으로는 논의할 내용이 아닌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간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탄핵 요구가 있었지만, 헌정 사상 처음으로 법관대표회의에서 의견이 모아진 만큼 국회에서도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조석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적폐법관 재판업무 배제 및 특별재판부 수용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뉴시스
조석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적폐법관 재판업무 배제 및 특별재판부 수용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법원노조 “현실적 어려움 많아... 재판 배제부터”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탄핵에 우호적인 의석을 모두 합치면 과반(150석)에 겨우 미치거나 조금 못 미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 농단 자체를 부정하는 의원도 있는데다,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법관들만 최소 6명에서 최대 98명에 이르고 있어 정치권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때문에 우선적으로 연루 법관들을 재판에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지난 19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특별재판부 설치 및 탄핵 의혹 법관들의 재판 배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원노조는 기자회견 후 특별재판부 설치 의견서를 김명수 대법원장에 전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양승태 휘하에서 위법한 문건 작성과 재판개입 등으로 직무가 정지된 법관 외에도 언론과 수사기관의 조사를 통해 추가로 드러난 적페 법관들이 다수 존재한다”면서 “대법원장은 이들 법관을 즉시 재판업무에서 배제하고 징계에 회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사법농단은 법관들의 수직적 서열 구조 속에서 신분 상승의 욕망이 자초해 낸 결과”라며 “지금도 보은의 시각을 가진 법관들이 존재할 수 있어 향후 기소자들에 대한 재판은 특별재판부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노조는 향후 사법행정회의를 통해 ▲대법원장이 지명한 법관 1명 ▲전국법원장회의가 추천한 법관 1명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추천한 법관 3명 ▲법원공무원 대표 단체가 추천한 법관 아닌 법원공무원 1명 ▲독립운동단체·민주화운동단체·노동단체·여성단체 중 사법행정회의 공모를 거쳐 법관 아닌 4인(2명 이상은 여성이어야 함) 등을 구성으로 한 특별재판부 설치를 촉구했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지금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당사자들만 해도 법적으로 다퉈보겠다는 입장이고, 국회에서도 정치적 공방을 떠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도 “이런 문제 때문에 우선적으로 검찰의 공소장에 거론된 법관들만이라도 재판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안을 대법원장에 촉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소장과 특별조사관이 공개한 자료들에 대한 검토가 끝나면 국회에도 같은 취지의 요구를 할 것”이라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그 법관들이 아무렇지 않게 국민들을 재판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이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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