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해년마다 이맘때면 하는 말이지만 또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가고 있네. 내가황금돼지의 해2019년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5% 정도가 속하게 될 공식적인 노인들 중 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니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고 씁쓸하구먼.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되었다니 심란하기도 하고. 그래서 공식적인 노인이 되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어떤 사람으로 변해야 사회의이 되지 않을지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

먼저 걷기 열풍의 전도사로 2004년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인생은 60부터 시작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자신의 은퇴 후의 시기를 인생의 황금기로 만들었던 프랑스의 보통 노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떠나든, 머물든.에서 했던 말을 들려주고 싶네. “스스로 자신에 대해 잘못 생각하지 말자. 은퇴란, 멋진 것이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있어서, 그것은 인생에서 완전한 자유를 갖게 되는 특혜 받은 순간이다. 과거의 활동적인 청소년기나 성년기의 인생이 그러했듯 강요된 삶이 아니라 선택된 삶이다.”

맞는 말 아닌가? 싫든 좋든 노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공적 사적 의무들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뜻하네. 노년은 육체적으로는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하는 시기인 것은 맞지만 정신적으로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것들에 도전해볼 수 있는 풍요로운 선택의 시기이기도 해. 이런 시기가 권태롭다면 그건 전적으로 노인 자신의 책임이지. 다른 누구의 간섭 없이,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자기에게 열려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설령 그것들이 남들에게는 정신 나간 짓처럼 보일지라도, 시도해볼 수 있는 시기이니까. 그래서 누구도 쓸쓸하거나 외로운 노년이라고 한탄하거나 자식들 원망해서는 안 되는 거지.

그러면 풍요로운 노년기를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노후의 삶을 설계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세속적인 욕망들로 가득 찬 마음을 비우고 자유롭게 살려고 애써야 하네. ‘인능허기이유세(人能虛器以遊世) 기숙능해지(其孰能害之)’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장자<산목편>에 나오는 구절로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능히 그를 해하겠는가?”라는 뜻일세.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아무도 타지 않은 빈 배가 떠내려 와서 자기가 타고 있는 배를 들이받을 경우 누구에게도 화를 낼 수가 없지. 그냥 그날 운수가 나빴다고 중얼거리며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밖에. 하지만 그 배에 누가 타고 있다면? ‘똑바로 운전하지 못 해라고 소리치거나 육두문자가 섞인 욕설로 화를 내면서 싸우기도 하겠지. 우리 삶도 마찬가지야. 빈 배처럼 마음을 비우면 다른 사람들과 다투거나 싸울 일이 없네. 그러니 노년을 인생의 황금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비우고 내가 먼저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거야.

며칠 전에 동해안에 갔다가 나랑 비슷한 또래의 사진작가가 일출을 찍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네. 날이 밝기 전에 찬바람이 세게 부는 바닷가에 나와 미리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잡고 있다가 해가 뜨기 시작하자 쉬지 않고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지. 주변 상황을 의식하지 않고 30분 이상 한 자리에 서서 피사체와 카메라에만 몰입하고 있는 노인이 얼마나 멋있게 보였는지나도 이제는 저런 자세로 사진을 찍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더군. 어디를 가나 스승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우친 아침이었네.

내가 왜 갑자기 나이 든 사진작가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는가? 노년을 풍요로운 시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야. 또 그 무엇인가를 하려면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거고. 요즘 추세대로라면 남자의 경우 공식적인 노인이 된 후에도 평균 15년 이상 더 살다가 생을 마감하네. 그런데 그 15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닐세. 그러니 계획이 필요할 수밖에.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사람은, 젊은 청년이든 늙은 노인이든,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네. 설사 그 계획을 실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괜찮아.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삶에 활력소가 되니까. 새해에도 난 다른 욕심들은 다 버리고 사진 공부만 열심히 할 생각이네. 그러면서 동해안에서 만났던 노인처럼 집중력과 인내심을 갖고 피사체를 바라보는 습관도 몸에 배게 만들 거고. 아울러 더 알찬 사진 공부를 위한 5년 정도의 장기 계획도 구상 중이네.

뭔가 아직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내가 자주 읊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의 마지막 연이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아무리 눈 내리는 숲이 아름다울지라도 거기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는 게 우리들의 인생일세.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길일지라도 내가 좋으면 계속 가야만 하는 게 자유롭지만 고독하게살아온 자의 마지막 여정이라고 믿네. 왜냐하면 고리타분한 노인으로 남은 생을 마감하기는 싫으니까. 우리 사회에서 늙음이 추함의 동의어로 굳어져서는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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