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9.1%, 7.8%, 5.3%, 4.5%, 3.2%, 3,0%. 무슨 숫자일까? 5공화국 역대 정권들의 경제성장률 수치들이야.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장률을 내림차순으로 적어놓은 것일세.

우리 국민들에게 여섯 대통령 이름과 경제성장률을 서로 연결해보라고 물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예전부터 궁금했던 일이네. 참고로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이른바 빨갱이라고 말하는 좌파들이 설친 시대였고, 나머지 정부는 낙수이론을 믿는 기업 친화적인 보수주의자들이 권력을 행사했던 시대였네. 자네도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서로 관련이 있는 것들 끼리 선을 그어보게나.

답은 저기 있는 순서 그대로야. 노태우 정부 때 가장 높고, 박근혜 정부 때 가장 낮았지. 어느 나라나 산업화 초기에는 경제성장률이 높고,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성장률이 낮아지는 게 정상이야. 박정희이나 전두환 시절에나 가능했던 연 10%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바라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그는 아마 욕심이 아주 많거나 경제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중 한명일 걸세. 한국의 보수들이 좋아하는 박정희의 딸이 집권하고 있을 때 경제성장률이 가장 낮았다는 사실을 알면 성장률을 높이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할 것도 같은데 아직도 성장률 타령이니 답답해서 물어본걸세.

우리나라 경제가 크게 성장하는 시기에 살았던 연배라 나도 미국에서 현대자동차 포니와  골드스타 전자제품을 처음 보았을 때 정말 반갑고 기뻤네. 두 기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내가 부자가 된 기분이었어.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우리 경제성장 방식에 관해 회의적이게 되었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계속 경제가 성장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거든. 그런 성장의 끝이 어디가 될지도 불분명하니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은 나라에서 살면서 여전히 성장타령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어.
   
성장을 해서 뭐 하자는 걸까?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네.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경제 성장의 최대 수혜자는 언제나 자본을 가진 자들, 즉 자본가 계급이야. 물론 경제가 커지면 노동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삶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사실이지. 하지만 그건 떡고물에 불과해. 자본가들은 자선사업가 아니거든. 자신들의 배가 불러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물이야. 그것도 측은지심에서 보다는 미래의 이익창출을 위해 투자하는 셈치고 조금씩 양보하는 합리적인 동물이지. 게다가 그들은 가난한 자들이 없으면 자신들의 부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아네. 가난한 자들이 많아야 자신들의 부가 더 빛나거든. 대중이 있어야 스타가 빛나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에서 점점 빛을 잃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것도 성장을 그만 두자는 것이 아니야. 경제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이 부의 양극화이니 그 불평등을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완화해보자는 것이지. 그래야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돈이 돌아가고, 그 돈으로 소비활동을 하게 되면 경제성장도 함께 이루어진다는 생각에서 나온 정책이야. 최저임금 인상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몇 년 전부터 대통령과 수상이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보수집단은 그런 정책마저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네. 그런 정책 때문에 한국 경제가 곧 무너질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어. 그러니 문재인 정권도 점점 보수화가 될 수밖에. 

물론 보릿고개를 경험했던 노인 세대에게는 성장무용론이 배부른 사람의 헛소리로 들리겠지. 하지만 나도 다시 5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많은 사람들이 굶고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야.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 정도 되었으면 이제 좀 달라지자는 거지.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 뭔지 알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 증가가 반드시 행복을 증진시키지 않는다는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의 주장일세. 인간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소득과 행복도는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지. 이스털린 교수가 자기 연구 결과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했던 나라들 중 한 곳이 우리나라야. 1인당 국민 소득에서는 선진국 수준이면서도 행복도는 아직 50위권 밖의 중진국 수준인 나라가 대한민국이거든. 

경제적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는데도 왜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아우성일까? 왜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일중독자(workholic)라고 조롱을 당하면서도 아직도 그렇게 많은 시간동안 일하고 있을까? 게다가 자살률은 왜 세계 1등인가? 왜 젊은이들은 애를 낳으려고 하지 않을까? 정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른바‘애국’학자나 언론인이라면, 우리 경제가 곧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떨지 말고 골방에 혼자 머리 싸매고 앉아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화두들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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