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자 “참담하고 부끄럽다”면서 허리 숙여 사과의 뜻을 밝혔다. / 뉴시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자 “참담하고 부끄럽다”면서 허리 숙여 사과의 뜻을 밝혔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된다. 사안이 중대하다.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10시간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는 24일 검찰이 청구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울구치소에서 영장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그대로 수감됐다.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예우와 안전 등을 고려해 1.9평의 독방으로 배정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입소 절차를 마무리한 뒤 현재 독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예상 밖 결과에 술렁

법원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영장을 청구했던 검찰 내부도 놀란 분위기다. 어느 쪽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 검찰 안팎에선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제 식구 감싸기’, ‘방탄 법원’ 논란이 그 이유다. 더욱이 영장 청구 대상이 전직 사법부 수장이다. 구속영장을 발부할 경우 법원 스스로 사법농단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적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만약 영장이 기각됐다면 부실 수사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신병을 확보하면서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됐다. 공식 논평은 하지 않았다. 다만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팀 책임자로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문자메시지로 짧게 입장을 밝혔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사법부 수장이 구속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 뉴시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사법부 수장이 구속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 뉴시스

김명수 대법원장은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전직 사법부 수장의 구속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이날 출근길에서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말씀을 드려야 우리의 마음과 각오를 밝히고, 국민께 작으나마 위안을 드릴 수 있을지 찾을 수가 없다”며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이어 “사법부 구성원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덧붙였다. “그것만이 어려움을 타개하는 유일한 길이고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태 수습에 들어갔지만 법원 내부의 갈등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자성의 분위기 속에서도 ‘사법부의 치욕’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사유 중 하나로 제시된 ‘증거인멸’ 우려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사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방증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법원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왔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원 내부의 갈등 봉합 방안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로써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론이 다시 한 번 부상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원의 증거인멸 등으로 홍역을 치른 그는 이제와 법원 안팎으로부터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 다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사법부 신뢰 회복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는데 법원 내부의 이견은 없어 보인다. 이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법원의 가장 수치스러운 날”이라면서도 “법원이 사법농단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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