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교수와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90%가 한국사회에서 성공하는데 학연과 지연이 중요하다고 봤다. /정책기획위원회 포용국가와 청년정책 자료집
김경희 교수와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90%가 한국사회에서 성공하는데 학연과 지연이 중요하다고 봤다. /사진=정책기획위원회 포용국가와 청년정책 자료집.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정부가 예상치 못한 반응으로 곤욕을 치렀던 현안이 두 가지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이다. 격차해소와 공정성을 위해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오히려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고, 남북 단일팀은 선수들의 출전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전자를 통해 ‘공정’이라는 가치의 본질을 고민하게 됐고, 후자를 통해 20~30대 청년들이 어떤 가치보다 공정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청년층 90% “한국사회는 학벌 좋아야 성공”

역설적으로 이는 청년들이 ‘공정’에 목말랐다는 의미도 된다. 실제 김경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사회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기회를 보장한다’는 명제에 “그렇다”고 답한 20~30대 청년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경제적 부가 공정하게 분배되고 있다’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15%가 채 되지 않았다.

반면 ‘성공하려면 가족배경이 좋아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비율이 88.3%였으며, ‘학벌과 지연이 중요하다’는 주장에는 90.4%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즉, 20~30대 청년들은 대한민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으며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연·지연·혈연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개인과 가족을 우선순위의 가치로 놓고 있는 특징이 나타난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포용국가와 청년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전효관 서울시 전 혁신기획관은 “청년들은 현재 압박감이 아주 심한 상황 속에서 타자를 배려하기 어려운 객관적 위치에 있다”며 “경쟁과 능력을 절대화하는 신자유주의가 내면화되어 있는 상태”라고 해석했다. 특히 “사회적 기준과 정책 방향에 있어 공정함에 대한 강조가 자신들에 대한 차별로 인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런 결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적 재분배 이슈는 결과를 조정하려는 것으로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취급하기도 한다”고 판단했다.

◇ 구조적 해법 위한 공론화장 마련 필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22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포용국가와 청년정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시사위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22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포용국가와 청년정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시사위크

이 같은 성향은 때때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공격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젠더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다수의 청년 남성들은 ‘여성우대’ ‘여성 할당제’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 재생산된다. 정부의 적극적 평등정책은 차별을 받고 있지 않은 현재 여성들에게 혜택을 주는 반면, 잘못이 없는 젊은 남성들이 차별은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담론을 수렴하고 풀어내야할 정치권이 제대로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개별 법안 중심으로 관련 논의가 있지만, 중앙당이나 정부 차원에서 핵심을 관통하는 공론장을 마련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지층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 소재로 악용된 경우가 적지 않다. 청와대 역시 소극적으로 대응할 뿐 제대로 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조적 해법을 모색하기는커녕, 남성 대 여성, 정규직 대 비정규직 등 을과 을의 전쟁만 가속화되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당사자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공론화장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모은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원은 “솔루션은 청년기본법과 같은 입법, 패키지 정책, 콘트롤 타워가 될 수 있는 기구, 청년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대표 등 4가지”라면서도 “청년들이 청년문제에 있어 발화자가 될 수 있는 공론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경지 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도 “정책은 시민초대에서 시작한다”며 “기계적 평등 방식이 아니라 가장 나오기 어려운 사람들이 나올 수 있도록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윤정 민주당 전국위원회 정책위의장은 “모두 다 내가 약자라고 하는 상황에서 갈등의 양상이 수직적 격차 갈등에서 횡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고 여기에 젠더갈등도 놓여져 있다”며 “약자화된 목소리의 총체적 발화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권자의 방식은 통합적이지 못하고 사안별이다. 그래서 권한이 (청년에게) 이양돼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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