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소리가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문소리가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멋짐’의 끝이다. 배우 문소리가 탄탄한 연기 내공과 대체불가 존재감으로 ‘믿고 보는 배우’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을 통해서다. 재판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카리스마, 지적인 매력에 인간적인 면모까지. 스크린 속 문소리는 언제나 그랬듯 반짝였다.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1999)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오아시스’(2002)에서 뇌성마비에 걸려 자기 방 안에 갇혀 사는 한공주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람난 가족’(2003), ‘효자동 이발사’(2004),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스파이’(2013), ‘관능의 법칙’(2014)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아가씨’(2016), ‘특별시민’(2017), ‘리틀 포레스트’(2018) 등을 통해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선보이며 ‘여배우 기근’에 시달리기도 했던 충무로에서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특히 ‘여배우는 오늘도’(2016)를 통해 감독으로도 데뷔하는 등 남다른 행보로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여성 배우로 대중들로부터 깊은 신뢰와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문소리의 다음 행보는 영화 ‘배심원들’이다. ‘배심원들’은 첫 국민참여재판에 어쩌다 배심원이 된 보통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2008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재구성했다.

극중 문소리는 재판장 김준겸으로 분해 매력적이고 선 굵은 여성 캐릭터를 완성, 다시 한 번 자신의 진가를 입증해냈다. 목소리 톤부터 표정, 분위기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활약으로 극을 이끌었다는 평이다.  

문소리가 ‘배심원들’을 향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문소리가 ‘배심원들’을 향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문소리는 “영화가 잘 완성돼서 더 욕심이 생긴다”며 ‘배심원들’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배심원들’을 선택한 이유는.
“영화적으로 굉장히 새로운 시도를 했거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됐거나 독특한 인물이 있거나 그렇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움을 느꼈다. 근래에 볼 수 없었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고, 마지막에는 뭉클했다. 이런 감정이 관객에게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는 ‘배심원들 중심 이야기니까 김준겸 캐릭터가 묻히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하고 (김준겸이) 조금 더 드러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선고까지 영화가 잘 짜여있기 때문에 균형을 잘 유지하면 힘을 가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나만 잘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선택을 했다.”

-완성된 영화는 어땠나.
“늘 영화를 볼 때마다 아쉬운 점만 보이고 걱정이 앞선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그런데 우리가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영화가 나왔다. 좋았다. 다른 길로 안 새고 잘 왔구나 생각했다. 리듬이나 경쾌한 소동극 같은 분위기가 잘 살았고, 음악도 좋았다. 관객들이 극장에 많이 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니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언론시사회 때 본 스태프나 배우들 모두 너무 좋아하더라. 물론 애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작업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더 좋아했다. ‘우리 이런 영화해서 너무 좋지 않아?’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아직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니다. 개봉 첫 주 지나고 다시 기쁜 마음으로 만나자’고 진정시켰다.(웃음)”

-국민의 선택으로 사건이 해결이 되고 일단락된다는 점에서 답답한 현실에 대한 해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부분에서도 영화가 힘을 갖는 것 같다.
“배우들끼리도 왜 새롭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그랬다.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가장 새로운 것은 한국 영화에서 문제를 대화로 해결한다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는 거다. 그동안 영화 안에서 배운 사람·안 배운 사람, 검사·변호사, 형사·조폭 모두 힘으로 몸으로 또 불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지 않았나. 우리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중요한 문제를 대화로 해결한다는 지점이 남다르지 않나 생각했다.”

‘배심원들’에서 매력적이고 선 굵은 캐릭터를 완성한 문소리 스틸컷. / CGV아트하우스 제공
‘배심원들’에서 매력적이고 선 굵은 캐릭터를 완성한 문소리 스틸컷. / CGV아트하우스 제공

-김준겸 캐릭터가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멋있는 여성 캐릭터였다.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홍승완 감독이 김준겸에 대해 정말 멋있는 여성 캐릭터고 멋있게 보여야 한다고 말을 했었다. 나는 ‘멋짐’이라는 것이 멋을 부린다고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김준겸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더 카리스마 있게 등장할 수 있었지만 중요한 건 사건 기록이지 옷차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재판이 중요한 거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회의하면서 일상적인 차림으로 등장하는 걸로 바꿨다. 밤새 재판준비하고 아무거나 걸쳐 입고 나온 느낌, 개인 김준겸이 느껴지길 바랐다. 그녀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전하고 싶었다. 또 마지막까지 카리스마를 휘두르지 말자고 생각했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오히려 참회하고 고개를 숙일 때 훨씬 멋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큰 사람으로서 멋짐이 은근히 베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감독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실제로 재판도 참관했다고.
“많이 참관했다. 판결문도 어떻게 쓰이는지 참고했다. 저희 영화와 상관없는 여러 사건 읽어보려고 했고 어떤 용어를 쓰고 어떤 분위기인지 익숙해지려고 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교양서처럼 쓴 법에 관한 책이 있다. 그것부터 시작했다. 법에 대해 공부하겠다는 심정으로 하하. (김영란 전 대법관을) 만났을 때 그 책에 사인도 받았다. 지난해 촬영 당시 사법부 뉴스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나 공부하라고 우주가 도와주는구나 싶더라. 하하.”

-김영란 전 대법관 외에 모델로 삼은 인물이 있나.
“네다섯 명의 여성 판사들을 만났다. 맥주도 한 잔 하면서 시나리오에 관한 얘기도 하고 사적인 질문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각자 다 사연이 다르더라. 비법대 출신도 있고, 어린아이가 있는 워킹맘도 있었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분들도 있었고 다 다양했다. 제일 크게 느낀 것은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였다. 각자 다 다르면서도 또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김준겸은 그냥 문소리에서 출발해서 접근해도 가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들 공통적으로 뭐든 많이 읽으시더라. 김영란 전 대법관은 소설책을 거의 중독처럼 많이 보시더라. 삶의 대부분을 읽는 것으로 채우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캐스팅되고 크랭크업하는 순간까지 많은 것을 읽었다. 책도 보고 뉴스도 보고 대부분의 시간을 읽으면서 보내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문소리가 ‘배심원들’에서 연기한 김준겸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문소리가 ‘배심원들’에서 연기한 김준겸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김준겸은 일중독이다. 실제 문소리와 닮은 지점이기도 하다.
“맞다.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중독이라기보다 재밌어서 하는 거다. 아직까지 재밌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재밌는 걸 계속 찾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는 것 같다. 다른 걸 하고 노는 것보다 영화 이야기하고 같이 만들고 작업하고 이런 게 재밌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감독 데뷔도 했다. 연출자를 경험한 후 배우로 현장에 섰을 때 나도 모르게 연출 본능이 발휘된 적은 없었나.
“아니다. 오히려 더 조심하게 된다. (홍승완 감독이) 신인 감독이라 더 그렇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자리를 우리가 잘 만들어주고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인도 얼마나 갈등이 되겠나.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나. 본인의 확신과 자신감이 없으면 일이 진행이 안 된다. 그럴 때 자꾸 흔들리게 하거나 기운 빠지게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홍승완) 감독이 모든 배우들의 이야기에 다 귀를 기울이고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래서 캐릭터들이 잘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연출도 하고 연극 무대에도 오른다. 상업영화는 물론이고 저예산 영화에 작은 캐릭터까지 소화한다. 남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나. (문소리는 오는 9월 연극 ‘러브스 엔드’로 무대에 오른다.)
“그런 거 없다. 재밌는 거 찾아다니는 거다. 이제는 탐험의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어디로 가야겠다, 정복해야겠다 이런 생각은 없다. 진짜 재밌는 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다 보면 그게 의미가 생길 때가 있다.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도 재밌다.”

-영화계 선배이기도 하고 충무로 대표 여배우기도 하다. 좋은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낄 것 같은데.
“책임감을 자꾸 느끼게 만들어준다. 하하. 나중에 나의 행보가 어떻게 평가를 받을지는 모르겠는데, 그 평가가 이랬으면 좋겠다 하면서 미리 결정하고 플랜을 짜서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혹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재밌는 것을 찾아다니고 좋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일을 할 거다. 삼대(三代)가 부끄러울 평가만 나오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웃음)”

-예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괜찮은 영화가 나왔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 욕심이 나는 것 같다. 더 많은 관객과 만났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흥행은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니까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아니지만, 그냥 좋은 꿈을 꿔본다. 잘 돼서 우리들이 좋은 마음으로 한 만큼 빛을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