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2 18:31 (목)
[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식량난에 대처하는 북한의 태도와 대북지원 딜레마
[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식량난에 대처하는 북한의 태도와 대북지원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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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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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북녘 땅에서 들려온 식량난 소식에 대북지원 채비를 서두르던 우리 정부와 관련 단체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국제 구호단체들이 밝힌 다급한 사정을 감안할 때 한 톨의 쌀이라도 더 많이, 더 빠르게 챙겨야할 북한 당국이 ‘아닌보살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다.

여기에 북한의 식량 부족 상황이 부풀려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대북지원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여론도 분분해 실제 의미 있는 수준의 식량지원이 이뤄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은 상황이 됐다.

북한은 대북지원에 앞서 연일 “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남조선 당국이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대외선전매체로 알려진 ‘조선의오늘’은 지난 27일 ‘북남관계발전의 지름길’이라는 글을 통해 “그 무슨 인도주의적 지원과 협력교류에 대해 떠들어대며 마치도 선언이행에 관심이나 있는 듯이 생색을 내고 있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대남 비방매체인 ‘통일신보’와 ‘우리 민족끼리’도 각각 지난 26일과 25일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을 비방하면서 남북선언의 성실 이행을 주장하는 쪽으로 선동을 벌였다.

사실 올 봄 들어 정부가 공들여온 대북지원은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쌀을 북한에 보냄으로써 남북관계의 모멘텀 회복을 꾀하겠다는 복안을 가졌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대규모 대북지원을 둘러싼 ‘퍼주기’ 논란으로 국민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은데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직후 지원을 추진하는데 따른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국제사회의 실망감이 깊어지는 국면에서 식량지원이란 당근을 주는 게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이란 비판여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식량 사정 악화에 관심이 쏠린 건 세계식량계획(WFP) 및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발표에 의해서다. 5월 초 WFP와 FAO는 ‘북한의 긴급 식량안보평가’란 보고서를 내고 대북 식량 지원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두 기구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식량 수급이 최근 10년 내 최악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36만 톤의 외부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앞서 4월 북한을 직접 방문한 8명의 국제 실사단에 포함됐던 제임스 벨그레이브 WFP 평양사무소 대변인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인구 2,500만 명 가운데 40%가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식량 실태 관련 보고서 발표 직후 서울을 찾은 데이비드 비슬리 WFP 사무총장은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당초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만나려던 계획을 바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접견한 데서도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북한의 식량 사정 평가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북한 장마당의 쌀 1㎏의 가격이 지난해 말 5,000원 수준에서 올해 4,000원 선으로 떨어졌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북한의 식량사정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아졌다고 밝혀온 정부가 대북지원 계획을 밝히는 것을 두고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체제의 경제상황을 지나치게 낙관 일변도로 평가해버린 후유증이란 관측도 있다.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어려운 조건에서 인민의 삶을 향상시킨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하며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찬사를 던졌다. 정부의 대북기조에 찬동해온 일부 북한·안보 전문가 그룹은 “트럼프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는 끄떡없고 전력이나 식량 사정도 좋아졌다”고 주장했다. 친북 성향의 교포인사나 논객도 평양의 밤거리 사진 등을 내보이며 마찬가지 말을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북한 동포들이 광범위한 기아선상에 놓였다면서 대북지원의 절박성을 호소하고 나서니 국민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런 여건들을 살펴볼 때 정부의 대북지원은 신중하고 전략적인 판단 하에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굶주리는 동포를 그대로 둘 수 없지 않느냐”는 식의 감상적 접근만으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고아원이나 복지시설에 보낸 기부금이나 물품이 원장이나 관리자들에 의해 빼돌려지거나 그들의 배만 채우는 꼴이 된다면 그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 문제를 알면서도 무작정 보내고 보자는 식이라면 지속적인 지원은 어렵다. 무엇보다 도움 받아야 할 이들에게 물품이 전달될 수 없다.

대북지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챙겨야할 대목도 있다. 첫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에 차관 형태로 보낸 240만 톤의 쌀을 비롯한 3조5,000억원어치의 대북지원 처리문제다. 북한은 2012년 6월 첫 상환 기일이 닥쳤는데도 꿈쩍하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혈세가 떼일 위기에 처했는데도 누구하나 책임지려 않는 태도는 문제다.
 
둘째, 식량이나 대북물자 빼돌리기를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 과거에 보낸 쌀은 상당 물량이 군부대로 흘러갔고, 쌀 포장용 마대는 전방 진지 구축용으로 쓰였다. 같은 시기 북송한 4만8,000여 톤의 감귤은 노동당 간부와 평양 특권층의 선물용으로 쓰였다. 어려운 북한 주민에게 비타민 공급원이 될 것이란 바람은 퇴색했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 부처는 이런 정황을 파악하고도 정부 눈치를 보며 쉬쉬하다 정권이 바뀐 뒤에야 앞 다퉈 관련 사실을 언론에 브리핑했다. 

셋째, 북한 당국이 우리 국민의 대북지원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주민이 이를 공감토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과 핵심층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란 점에서다. 아울러 지난해 8·15 상봉행사 이후 중단된 이산가족 해결을 위한 노력도 재개돼야 한다. 북한이 장기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를 비롯한 우리 국민 6명의 송환과 국군포로·납북자의 귀환도 북측에 촉구해야 한다.

대북지원은 선이고, 반대는 악이란 이분법적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의 식량난 실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함께 투명성 있는 대북지원이 성사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여 한다. 북한 당국이 정치공세를 멈추고 진정으로 주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실사구시적 태도로 임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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