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14일 “80년대 피와 땀으로 먼저 민주화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이 그것을 요구하는 홍콩의 목소리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저는 오늘 개인자격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 뉴시스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14일 “80년대 피와 땀으로 먼저 민주화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이 그것을 요구하는 홍콩의 목소리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저는 오늘 개인자격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최현욱 기자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을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로 전 세계의 이목이 홍콩에 집중된 가운데, 우리나라 정부와 여야는 이렇다 할 공식적인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이라 한국 정치권이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문제가 된 ‘범죄인 인도 법안’은 홍콩 정부가 중국을 비롯해 자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홍콩은 1997년 ‘중국과 홍콩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지만 체제는 다르다’는 뜻의 ‘일국양제’의 이념을 바탕으로 자치권을 획득한 이후 홍콩 내 반중 인사나 인권·민주화운동 인사가 중국 본토로 송환되는 것을 철저하게 제한해 왔다.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이 제정되면 이들 인사뿐 아니라 홍콩 사회 전반의 자유가 중국으로부터 침해될 것을 우려해 시위에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도 홍콩의 시위 상황이 실시간으로 보도 되며 관련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여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정치권에서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언주 무소속 의원 등이 방송과 개인 SNS에서 개인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 말고는 공식적인 정당의 입장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14일 당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홍콩 시위지지 결의를 긴급안건으로 상정해야 한다고 요구해 눈길을 끌었다. 이 최고위원은 “작금의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어느 우리 정치권 인사도 뜻을 표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향한 아픔의 상처인 5월 18일을 추념하는 우리 정치권이 5월 35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최고위원이 언급한 ‘5월 35일’은 중국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했던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사태’를 돌려 말하는 단어다.

이 최고위원은 “인구 700만의 홍콩에서 정치적 탄압으로 악용될 수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행동가들의 수가 100만 명을 넘었다. 그들이 느끼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우리가 1980년과 87년에 느꼈던 민주주의의 위기와 상통한다”며 “80년대 피와 땀으로 먼저 그것들을 이루어 낸 대한민국이 그것을 요구하는 홍콩의 목소리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저는 오늘 개인자격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이 최고위원은 “적어도 원내교섭단체 중 바른미래당이 가장 먼저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보낼 것을 제안한다”며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 결의를 하고 대변인 성명으로 발표할 것을 원내대표께 긴급안건으로 상정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후 바른미래당은 이종철 대변인 명의로 낸 논평에서 “홍콩 시민들에게 의사 표현과 집회 결사의 자유는 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다”며 “우리는 홍콩 정부의 탄압으로 인한 일체의 유혈사태를 경계하고 반대하며 홍콩에서 들려오는 호소에 귀를 기울일 것이고 우리에게 소중한 민주주의가 홍콩인들에게도 똑같이 소중함을 기억하며, 홍콩의 상황과 홍콩의 목소리를 주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일각선 '신중한 자세' 필요 의견

바른미래당을 제외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홍콩 시위에 대해 공식적인 논평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거대 양당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중국과의 민감한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정치권 인사 개개인이 본인의 양심에 따라 홍콩 시위를 응원하고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괜찮을 수 있겠지만 정부나 공당이 ‘홍콩 시위의 지지 여부’를 당론으로 이야기하는 건 다른 문제”라며 “외교 비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는 한국의 스탠스에서 굳이 외교적 마찰까지 감수하며 이 사안에 대한 의사 표명을 해야 하느냐는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이 문제가 비단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고 중국이 같이 걸려 있는 문제다 보니 부담이 있을 수 있다. 정부나 여당에서 이 문제를 섣불리 거론했다가 중국이 거세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기에 우려가 될 것이고 한국당도 마찬가지”라며 “만약 심각한 유혈 사태가 확산된다거나 하는 경우에 인권이라는 포괄적인 부분에서 입장을 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중국·홍콩의 내정 문제기에 입장을 내기 적절치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최고위원이 ‘원외’ 신분이라는 점 등이 이런 민감한 문제에서 자신 있게 입장을 표명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는 시선도 제기됐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 최고위원이 현역 의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홀가분하게 본인의 소신을 밝힐 수 있었다고 본다”며 “기본적으로 공당은 정권을 가져오기 위해 존재하는 세력이기에 소속 의원들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외교적으로 민감한 발언은 꺼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고 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날 당의 공식 논평 발표 후 페이스북에 “정치권 전반에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민주화의 가치가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며 “광주에서 공수부대의 부당함과 맞서던 의로운 결기와 우산을 들고 최루탄에 저항하는 홍콩 활동가들의 힘겨운 저항에 ‘옳고 그름과 더하고 덜함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외신 및 해외의 마음과 닿고 싶었던 1980년 5월의 절박함과 어떻게든 나라밖에 자신의 뜻을 알리고 싶어 하는 젊은 홍콩인들의 마음은 어느 것이 더 절박하고 간절한지 우열을 두어서도 안 될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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