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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특종
[단독] 청와대 상춘재서 조선왕실 수호수 '천록' 발견됐다
2019. 08. 14 by 정계성 기자 minjks@gmail.com
청와대 상춘재 돌계단 옆 석조상이 조선시대 궁궐 내 석조문화재 유물로 판정돼 복원과정을 거쳤다. /정보공개청구 문화재청 제공.
청와대 상춘재 돌계단 옆 석조상이 조선시대 궁궐 내 석조문화재 유물로 판정돼 복원과정을 거쳤다. /정보공개청구 문화재청 제공.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상춘재는 청와대 내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 꼽힌다. ‘항상 봄이 머무는 집’이라는 이름으로 한옥양식으로 지어졌다. 한국의 미를 널리 알리기 위한 차원에서 주로 외빈들의 접견 및 차담 장소로 애용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론과의 첫 대담을 한 장소도 상춘재다. 반송이 있는 녹지원의 오른쪽 뒤편 돌계단을 올라가면 나온다.

그런데 상춘재로 올라가는 돌계단의 오른편 잔디에는 가로 1.3m, 높이 0.5m의 석조상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크게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의 위치가 아님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실제 문화재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석조상은 서울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는 경복궁 내 석조조형물과 유사한 암종으로 원래 위치는 경복궁 경내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일제 강점기 총독관저로 옮겨졌을 가능성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청와대 내 문화재 발굴 및 복원과정에서 드러나게 됐다. 지난 4월 문화재청이 청와대의 협조요청에 따라 조사에 착수한 것이 시작이다. 당시 석조상은 상하부 일부에서 고착된 오염물이 있었으며 비늘을 따라 부분적으로 변색이 진행돼 있었다고 한다. 특히 뒷부분이 손실됐고, 하부에는 조류의 서식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국립 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인 천록을 참조해 유사재질의 암석으로 복원 후 접착했고 오염물 제거 및 보존처리를 거쳐 지금은 상춘재 돌계단 옆에 다시 놓이게 됐다. 복원에는 약 1,300여 만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경복궁 영제교 양 옆에 자리한 수호수 천록. 상춘재에서 발견된 천록과 생김새와 재질이 거의 흡사하다. /정계성 기자.
경복궁 영제교 양 옆에 자리한 수호수 천록. 상춘재에서 발견된 천록과 생김새와 재질이 거의 흡사하다. /정계성 기자.

조사결과 석조상의 명칭은 ‘천록’(天祿)으로 확인됐다. 전체적인 형상은 노루를 닮았지만 머리에 뿔이 있고 전신이 비늘로 덮여 있으며 다리는 갈퀴가 나 있는 상상 속 동물이다. 잡귀나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성스러운 짐승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주로 왕실의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궁궐에 많이 설치돼 있다. 경복궁 영제교 좌우에서 볼 수 있는 석조상 4개가 바로 천록이다. 노려보는 듯한 인상이 특징인데, 경복궁 입구를 거쳐 근정전으로 입궐하는 대신들의 삿댄 마음을 경계하고, 물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악한 기운을 감시하는 토템적 의미가 있다.

◇ 청와대 경내로 들어온 경위 '오리무중'

형태와 용도, 재질 등을 감안했을 때 상춘재의 천록은 경복궁의 천록과 동종의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경복궁 보수 과정에서 입지 변경이 있었기 때문에 경내라는 점 외에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어떤 경위로 상춘재 앞에 놓여 졌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청와대 수궁터, 녹지원, 상춘재 등이 과거 조선총독부 총독관저 위치였다는 점에서 일본 총독의 수집품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되는 정도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4일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조선시대 궁궐 내 석조문화재 유물로 판단이 되고 있다. 유사한 유물을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보관을 하고 있었다”며 “데라우치 총독에게 지방에서 일종의 상납 형태로 문화재 수집이 이뤄졌다. (정부 관계자로서) 확답을 하기는 힘들지만 총독 관저 자리라고 한다면 수집 목적으로 모아졌을 (수 있다)”고 했다.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 근정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록 4마리가 수호하는 영제교를 건너도록 설계돼 있다. 관리들의 삿댄 마음을 경계하고, 혹여 물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악한 기운을 차단하기 위한 토템적 목적으로 해석된다. /정계성 기자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 근정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록 4마리가 수호하는 영제교를 건너도록 설계돼 있다. 관리들의 삿댄 마음을 경계하고, 혹여 물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악한 기운을 차단하기 위한 토템적 목적으로 해석된다. /정계성 기자

미남불이라는 명칭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청와대 석불좌상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9세기 경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불상은 사각연꽃문양대좌 위 결가부좌한 항마촉지인의 여래좌상이다.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형태로 양감이 풍부해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위상을 보여주는 문화재로 인정받아 지난해 보물로 승격됐다. 당초 경주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청와대 경내에 위치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도 경주의 원위치를 정확히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로 광복 74주년,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했지만 일제에 의해 파편화된 문화재 복원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강제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범정부 차원에서 파편화된 문화재 발굴과 복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에 복원된 천록의 경우만 하더라도 문 대통령의 관심이 없었다면 문화재로서 평가될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잊혀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라는 것이 원래 위치에 있을 때 문화재적 가치를 살리고 더 큰 관심을 받는 것이지, 원래 자리를 떠나 있을 때는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문화재 발굴과 원위치 복원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