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한일관계 악화가 9월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에 대해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인 6월이 그 시작이니, 어느덧 두 달을 훌쩍 넘겼다.

한일 양국이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갈등은 더욱 악화됐다. 일본 정부는 핵심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 강화에 이어 우리나라를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에 맞서 우리 정부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을 뿐 아니라,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강수를 뒀다.

이 같은 갈등은 경제·산업부문 전반에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일본에서 핵심 소재를 공급받아온 우리 기업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에 진출해있던 일본기업은 물론 일본과 관계된 기업들은 싸늘한 시선에 직면했고, 불매운동을 피할 수 없었다. 경영진의 발언이나 홈페이지 내 ‘일본해 지도’ 사용 등 뜻밖의 논란에 휩싸여 홍역을 치른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일본기업 또는 전범기업이라는 이유로 ‘노노재팬’의 타깃이 된 기업들의 대처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따가운 지적을 그저 꿋꿋이 외면하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불매운동 대상이 된 기업들 중엔 일정 부분 합당한 이유가 있는 곳도 있고, 다소 오해가 있거나 과도한 측면이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사과나 유감을 표하거나, 해명에 나선 곳을 찾아보긴 어렵다. 대부분 군색한 수준의 ‘회피성 답변’ 뿐이다.

일본기업 지적과 함께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른 한 기업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작 스위스에 있다는 그 본사는 일본기업의 자회사였다. 눈 가리고 아웅 식 해명이었던 셈이다.

전범기업 리스트에 오른 또 다른 기업의 경우 “정치적 사안에는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전범기업이란 지적을 ‘정치적 사안’으로 규정한 것이다. 물론 한일 양국 사이에서 민감한 정치적 사안인 것은 맞다. 하지만 넓은 관점에서 궁극적으로 보면, 정치적 사안이기 이전에 인권의 문제다. 또한 자신들의 행적에 따른, 움직일 수 없는 과거의 문제다. 이를 두고 정치적 사안이라 하는 것은 적반하장식 태도에 가깝다.

더욱 씁쓸한 것은 이러한 논란과 행태가 거듭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반일감정이 고조되고 일본 불매운동이 벌어진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과거에도 독도나 위안부 등 양국 사이에 민감한 사안이 화두로 떠오르면 이 같은 움직임이 일었다. 그때마다 해당 기업들은 시간이 지나 잠잠해지기만을, 거센 비바람이 물러가기만을 기다렸다. 논란이 다시 불거지면, 해당 기업들도 그대로 다시 소환됐다. 그때마다 엉뚱하게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제는 악순환의 도돌이표가 끊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본기업인 것은 맞지만 그저 일개 기업일 뿐 어떠한 정치적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거나, 과거 행적으로 상처를 준 국가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최소한 유감을 표하거나 하는 등의 목소리를 낼 순 없을까. 적어도 시간의 뒤에 숨어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다소간 논란에 휩싸일 수는 있다. 하지만 동시에, 반복돼온 논란을 해소시켜나가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그래서 시간은 약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은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과거와 현재를 회피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돌아온다. 때문에 시간은 만병을 완치시켜주는 약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넘어야할 산은 높아만 진다. 무엇보다, 언제까지나 시간의 뒤에 숨기만 할 수는 없다. 시간낭비를 끝내고, 반복되는 도돌이표를 지우고, 보다 생산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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