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계급론’은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상징하는 신조어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슬픈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헌법엔 계급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겨있지만, 현실에선 모두가 수저계급론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에서도 ‘주식금수저’는 꼼수 승계와 같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식금수저’ 실태를 <시사위크>가 낱낱이 파헤친다.

황우성 서울제약 회장의 두 자녀는 각각 현 시세 기준 20억원대 서울제약 주식을 보유 중이다.
황우성 서울제약 회장의 두 자녀는 각각 현 시세 기준 20억원대 서울제약 주식을 보유 중이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미성년자인 오너일가가 일찌감치 적잖은 규모의 주식을 보유하는 이른바 ‘주식금수저’ 실태는 비단 굵직한 재벌 대기업 및 중견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비교적 작은 기업에서도 이 같은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제약은 창업주 황준수 명예회장이 1976년 설립한 중소 제약회사로, 2000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독자적인 스마트필름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자 장점으로 꼽힌다. 알약 형태가 일반적인 의약품을 필름 형태로 제조해 보관과 휴대, 복용이 편리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 같은 경쟁력을 갖춘 서울제약은 연 매출이 400억원대이며, 3분기 기준 직원 수는 200여명이 채 되지 않는다.

서울제약은 주식금수저 논란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곳이기도 하다. 회사 규모는 중소기업일지 몰라도, 주식금수저 실태만큼은 대기업·중견기업 뺨친다.

서울제약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명단에 등장하는 미성년자는 총 3명. 이마저도 2000년생인 1명이 최근 성인이 되면서 줄어든 숫자다. 원래는 오너일가 3세 4명이 줄곧 주식금수저로 이름을 올려왔었다.

이들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황우성 서울제약 회장의 쌍둥이 아들인 A군과 B군이다. 2004년생인 이들 형제는 각각 31만2,500주의 서울제약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로는 3.68%에 해당한다.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중에서도 아버지인 황우성 회장(20.44%)과 어머니(7.67%)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규모다. 단순히 현재 시가로만 따져 봐도 20억원이 넘는다.

이미 성인이 된 2000년생 C씨와 2006년생 D군은 이들과 사촌관계로, 서울제약 주식 18만7,500주를 보유하고 있다. A군과 B군에는 미치지 않지만, 이 역시 10억원이 훌쩍 넘는 상당한 규모다.

이들이 주식을 처음 취득한 시점은 더욱 놀랍다. 2004년생인 A군과 B군, 2000년생 C씨는 2006년 3월 할아버지인 황준수 명예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증여받았다. 이를 통해 A군과 B군은 각각 15만6,250주, C씨는 18만7,500주를 처음 취득했다. 당시 기준으로 2.5%, 3%에 해당하는 주식이었다.

이듬해인 2007년 10월에도 황준수 명예회장에 의한 증여가 이뤄졌다. A군과 B군은 이때도 나란히 15만6,250주를 증여받았고, D군이 18만7,500주를 증여받았다. 현재 서울제약 오너일가 3세들이 보유 중인 주식은 모두 이렇게 형성됐다. 다만, 유상증자 등으로 인해 지분율에만 변화가 있는 상황이다.

A군과 B군이 처음 주식을 취득한 시점은 두 돌이 되기도 전이다. D군은 아예 첫 돌이 되기도 전에 주식금수저가 됐다.

이들이 증여를 통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정의와 공정이 화두로 떠오른 시대정신에 반할 뿐 아니라, 일반 서민·청년들에게 상대적 박탈감 및 위화감을 안겨줄 수 있다.

또한 증여 및 승계 비용 절감이나 주가상승·배당 등을 통한 자산증식에 활용될 여지도 적지 않다. 서울제약 주식금수저들은 이미 주가상승에 의한 자산증식 효과를 쏠쏠하게 보고 있다. 증여가 이뤄졌던 2006년과 2007년 당시 서울제약 주가는 2,200원, 3,000원 수준이었다. 현재 주가는 2~3배 수준인 6,350원이고, 주가가 한창 높았던 2015년엔 10배 안팎인 2만7,800원에 달하기도 했다.

특히 서울제약에서 나타난 ‘할아버지→손자 증여’ 특징은 최근 ‘건너뛰기 증여’로 불리며 새로운 절세방식으로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1세대에서 2세대, 3세대를 모두 거쳐 증여할 경우 그만큼 증여 비용이 많이 드는 점을 고려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무엇보다 씁쓸함을 안겨주는 대목은 서울제약이 유명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소기업에서 조차 수십억대 주식 자산을 보유한 미성년자가 오너일가가 포착되는 실태는 공정사회로 가기 위한 길이 여전히 멀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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