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4 10:08
[김재필 '에세이']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과 빈부격차
[김재필 '에세이']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과 빈부격차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0.02.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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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작년에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4관왕이라니! 세계 최고의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환호를 지를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기쁨은 여기까지야. ‘기생충’이 어떤 영화인가?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와 양극화 현상을 풍자적으로 고발하는 블랙코메디(black comedy)일세. 블랙 유머(black humor)가 많아서 마냥 웃고 즐길 수만은 없는 영화야. 나도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프(motif)인 냄새와 관련된 장면을 볼 때마다 좀 움찔했네. 나이든 사람인지라 누군가에게는 노인 냄새를 풍길 수 있거든. 지하철이나 반지하에서 나는 냄새는 나도 직접 겪어서 아네. 서울 지하철의 노선별 냄새가 다르다는 사람도 있어. 암튼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일세. 그러니 아무리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 할지라도 극장을 나올 때 좋은 영화 재미있게 봤다고 마냥 희희낙락할 수만은 없었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담은 영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을 받았다면, 정치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게 상식일까? 상을 받은 것 자체는 축하한다 할지라도 영화 속 현실에 대해서는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하루 종일 어두컴컴하고 습기가 많아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반지하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이 100만 가까이 된다는 사실에 정치인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국가통계포털(KOSIS)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2015년 현재 반지하와 지하에 거주하는 가구수가 36만 3,896 가구였다는군. 당시 가구당 평균 인원이 2.5명이었으니 90만 명이 넘는 거지.

요즘 봉준호 감독의 고향인 대구에 출마한 자유한국당 예비후보자들이 쏟아내는 공약들을 보면 저절로 실소가 나오네. 봉준호 생가 터 복원, 봉준호 기념관 건립, 봉준호 공원, 영화의 거리, 카페거리 조성 등이 공약이네. 봉준호 동상을 만들어 세우겠다는 공약에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자기들이 집권여당이었던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 좌파 감독으로 낙인찍어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사람을 갑자기 보수의 텃밭인 대구의 영웅으로 만들고 있으니 쓴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지. 우리나라 보수의 민낯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참 민망하네. 보수의 수준이 올라가야 진보도 건강해지는 법인데 보수 진영 전체가 점점 더 퇴행적인 행동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안타까워. 그렇다고 진보 진영이 다 잘 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는 말게.

한국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균열구조는 이미 지역이나 계급 요인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네. 우리는 이미 지역뿐만 아니라 계급과 계층, 세대, 성별, 교육, 성적 취향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다중균열 사회에서 살고 있어.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정치구조는 이런 사회균열을 반영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다중다층균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네. 그러니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어.

정치사회적 균열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없어. 하지만 정치적으로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그 균열과 갈등을 무시하거나 은폐하려고 애쓰지 않네.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내서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승자독식의 소선거제도로는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문제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네. 왜냐하면 유권자들의 선택이 고스란히 선거결과에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야. 의제정당 같은 소수정당을 선택한 사람들의 표가 사표가 되어버리니 지역기반의 큰 정당들만 살아남게 되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야. 국회 진입 문턱을 낮추어 다양한 집단들이 정치의 장으로 들어와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자는 거였지.

그런데 그런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막았던 사람들이 누구인가?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독일식 정당명부제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무력화하기 위해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치개혁을 가로막고 정치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기생충은 ‘다른 동물체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벌레’이며,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네. 그럼 우리 정치의 장에서 기생충은 어떤 사람들일까? 스스로 노력해서 시민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공에 숟가락 얹어 기생하는 사람들 아닐까?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서, 영화 ‘기생충’을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그랬던 것처럼, 답답함과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거라고 믿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