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정숭호</strong>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모든 게 ‘기-승-전-선거’다. 4·15 총선까지는.

TV에 눈을 박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물론 코로나19, 우한 바이러스 때문이다. 뭘 볼 것이냐, 결정권은 나에게도 없지 않지만 건강 프로그램이나 쿡방은 아니다. 그런 게 시작되면 리모컨은 아내 손에서 나오지 않는다. 빼앗아 올 수 없다. 건강과 요리는 아내의 ‘최애’ 프로그램이다. 맛있고 볼품 있는 음식은 나도 좋아하니까 쿡방은 군소리 없이 따라 보는데, 몸에 좋은 음식과 운동으로 짜인 ‘건방(건강 프로그램)’은 그렇지 않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목숨, 운동하고 음식 가린다고 달라지냐, 열심히 운동하고 좋은 것만 찾아 먹던 사람도 갈 때는 순간이더라, 그러니 아무거나 먹고 살다 탱 갈래 라는 입장이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면 아내 목소리는 훨씬 더 높아지고 길어진다. 한순간에 탱 가는 게 마음대로 되냐, 병에 걸려 처자식 십수 년 고생시키다가 가는 사람 많더라, 난 그 고생 안 할란다, 누워서 오래도록 기신기신 골골 앓지 않으려면 주는 대로 먹어라, 아니면 나보다 오래 살든지 라면서 각종 견과 강황 사차인치 아로니아 블루베리 도라지물 쑥차 등등, 이것저것 들이댄다. 양 작은 사람은 그것들로만 배를 채울 수도 있을 정도다. 그게 다가 아니다. 여러 종류의 비타민 루테인 글루코사민 칼슘 따위를 작은 접시에 담아준다. 나는 비둘기 콩 쪼아 먹듯 그것들을 주워 먹어야 한다.

건방 때 아내 말이 길어진다 싶으면 나는 방으로 들어간다. 건강염려증 환자 옆에 앉아있기 싫어서다. 매번 되풀이되니까 아내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도 다 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옆에 앉아 끝까지 건방을 볼 때도 있다. 운동법을 가르칠 때다. TV에서 보여주는 운동은 대체로 스트레칭이다. 관절을 꺾고 늘이고, 몸통을 뒤틀었다가 펼치고, 상체와 하체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해서 몸을 살짝 괴롭히는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시원하고 개운해진다. 방콕, 집콕의 스트레스를 잠시는 풀어준다.

TV에서 여러 스트레칭을 배워서 따라했지만 뒤틀린 골반을 바로잡는 스트레칭이 제일 쉽고 효과적이었다. 그날 출연한 강사는 패널들에게 눈을 감고 제자리걸음을 쉰 번 시켰다. 제대로 걷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제자리를 벗어났고, 서 있던 방향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쉰 걸음 다 걷고 나니 한 명도 빠짐없이 방향과 위치가 원래에서 크게 달라져 있었다. 심한 사람은 왼쪽으로 90도까지 방향이 틀어져 더 걸으면 완전히 거꾸로 걸어갈 것 같았다.

강사는 골반이 뒤틀린 게 이유라고 설명했다. 골반이 왼쪽으로 내려가 있으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내려가 있으면 오른쪽으로 방향이 틀어지고 위치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틀어진 골반의 부작용도 설명했다. 척추 불균형, 척추 측만증, 허리디스크는 물론이고 얼굴 비대칭, 하체 비만, 피부 탄력 저하, 쉬 피로해지는 것 등등 꽤 많았다. 골반이 뒤틀리는 건 다리를 꼬고 앉는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여성들은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하이힐을 자주 신거나, 한쪽 어깨에만 가방을 메고 다녀도 골반이 뒤틀린다고 했다.

지하철에서도 덜 붐빈다 싶으면 주위 눈치 슬쩍 본 후 다리를 꼴 정도인 내 골반은 얼마나 뒤틀렸을까, 곧바로 일어나 눈감고 제자리걸음 50회를 실시해봤다. 역시였다. 45도쯤 왼쪽으로 몸이 돌아가 있고, 서 있던 곳에서도 멀리 벗어나 있었다.

뒤틀린 골반을 바로잡기는 쉽다. 방향이 틀어진 건 골반이 뒤틀려 다리가 한쪽은 짧고 한쪽은 긴, 컴퍼스처럼 되었기 때문이니 그걸 잡으면 되는 거다. 왼쪽으로 틀어진 사람은 왼쪽 다리가 짧아진 것이니 오른쪽 무릎을 굽히고 왼쪽 다리를 뒤로 쭉 뺀 채 1분 이상 서 있으면 된다. 오른쪽으로 틀어진 사람은 반대로 하면 되고. 강사가 시킨 대로 스트레칭을 한 후 눈감고 제자리걸음을 하니 방향이 훨씬 덜 틀어지고, 벗어난 거리도 전보다 줄었다. 그 이후 이 스트레칭을 자주 하고 있다. 뒤틀린 골반이 이제 곧 바로잡힐 것이다. 자세가 곧아졌다는 말도 종종 들을 것 같다.

뜬금없이 골반 뒤틀린 이야기는 왜 하나? 내일 모레 선거 때문이다. 너무 오래 눈감고 걸었나, 대한민국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라의 골반이 크게 뒤틀린 거다. 가만두면 앞으로 가기는커녕 제자리걸음도 못하고 180도 뒤돌아가다가 절벽에 부딪히거나 낭떠러지에서 천길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내일모레 투표는 대한민국의 뒤틀린 골반을 바로잡는 스트레칭이다. “투표 잘 해서 대한민국이 뒤로 돌지 않고 앞으로 가게 합시다. 어느 쪽을 찍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면 눈감고 제자리걸음 하면서 이 나라가 지금 어느 쪽으로 뒤틀렸는지 생각해본 후 결정하세요. 뒤틀린 쪽의 반대에 찍으면 됩니다. 그게 뒤틀린 대한민국 바로잡는 길입니다.” 모든 게 ‘기-승-전-선거’다. 내일모레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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