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성찰배경: 지난 2020년 2월 초 대한적십자사에서 대국민 헌혈(獻血) 참여 호소문을 다음과 같이 내보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헌혈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혈액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국민여러분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를 호소합니다.” 그러자 곧 이에 부응해 각계각층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져, 우리는 지난 3월 17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발표한 공지문을 통해 적정 혈액 보유량인 5일에 근접한 4.8일분을 달성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태원 감염 사태 이후 필자가 헌혈한 날인 5월 13일에는 다시 주의 단계인 평균 2.7일분으로 떨어졌다가 5월 27일 현재 약 5.2일분으로 회복되었네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널뛰듯 하는 혈액 보유량의 안정화에 도움이 될까해 57세부터 재개한 필자의 간헐적인 헌혈 체험을 바탕으로 적정 혈액 유지를 위한 단상(斷想)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헌혈 기사를 소개하다

필자는 2010년 10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만 70세까지 지속적인 헌혈을 통해 사랑 나눔을 실천할 것”이란 인터뷰가 담긴 ‘헌혈 200회 강현문 씨 사랑 나눔’(연합뉴스)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 직후 선도회 토요일 참선모임에서 이 기사를 소개드리면서 “나눔 실천의 한 방안으로 정기모임 후에 건강하신 회원들의 경우 단체로 헌혈하는 전통을 세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 단체로 헌혈을 하기로 하고 총무님께 헌혈할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모임 때 총무께서 ‘알아보니 토요일에는 헌혈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고 하셔서 회원 분들께 각자 건강하신 날을 잡아 헌혈하실 것을 권해드렸습니다. 사실 선가(禪家)에는 ‘선우(善友, 좋은 벗)’란 선어(禪語)가 있는데, 이제 피가 매우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도 피를 나눌 수 있는 친구란 뜻의 ‘혈우(血友)’도 새롭게 널리 알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한편 이날 법문 주제가 마침 육조혜능 선사가 제창한 <무문관(無門關>에 나오는 ‘불사선악(不思善惡)’이었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착하다느니 악하다느니 하는 분별을 일으키지 않을 때의 인간의 참 본성을 온몸으로 체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헌혈을 포함해 착한 일 했을 때도 착한 일을 했다는 우쭐함도 일어나지 않는 경지까지 마음공부를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 사십년 만에 다시 헌혈하다

그 후 필자도 개인적으로 직장에서 가까운 신촌지역 헌혈의 집을 물색해 놓고는 있었으나 이런 저런 핑계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거의 1년 후 점심식사를 하러 가다가 서강대 교정에 붉은 글씨로 ‘급구’라는 글을 붙여놓은 적십자사 헌혈버스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이날 강의도 없고 오후 몸 상태도 가볍고 해서 학창시절 이후 수십 년 만에 1차 헌혈을 재개하였습니다. 그런데 관계자분 말씀이 혈액 비축분이 평균 2일 분량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시네요.

한편 헌혈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필자는 저체중(56kg)을 고려해 320ml를 했습니다만 보통은 400ml를 헌혈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헌혈 시간은 10분 정도이고 누워서 회복하는 시간이 5분 정도로 그 후 천천히 일어나는데 별로 이상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헌혈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하던 하루 일과를 별 무리 없이 진행했습니다. 아무튼 회원들께 권해드렸던 헌혈에 대한 짐을 덜고 나니 매우 홀가분한 하루였습니다. 덧붙여 2011년 당시 헌혈을 마치면서 서강대 교내에서 하루 대개 몇 사람 정도 헌혈을 하게 되냐고 물으니 평균적으로 20여명 정도라고 하네요. 서강공동체 구성원은 학부생이 7,500명, 대학원생이 3,000명, 교직원이 수백명 정도이니 당시 헌혈의 필요성을 아직은 대부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헌혈한 후 하루가 지나면 조혈세포의 활발한 작용으로 대부분 원래 상태로 혈액량이 거의 회복된다는 점과 건강한 분들의 경우 1년에 3번 정도 무리 없는 전혈이 가능하다는 점 등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 박영재 제공
헌혈한 후 하루가 지나면 조혈세포의 활발한 작용으로 대부분 원래 상태로 혈액량이 거의 회복된다는 점과 건강한 분들의 경우 1년에 3번 정도 무리 없는 전혈이 가능하다는 점 등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 박영재 제공

◇ 헌혈 이후의 일상

그리고 헌혈 후 며칠 뒤 9가지 항목에 관한 헌혈 결과 자료 및 헌혈 상식에 관한 자료를 받았는데 당시 제 혈액에 관한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네요. 그런데 수혈이 시급한 이웃을 위한 이타행(利他行)인 정기적인 헌혈은 사실 평소 건강했던 시민의 경우 따로 피검사 비용을 들이지 않더라도 다음 헌혈시 건강 수치의 변화를 잘 살필 수 있기 때문에 본인에게도 이로운 자리행(自利行)입니다. 또한 이번 헌혈을 통해 헌혈한 후 하루가 지나면 조혈세포의 활발한 작용으로 대부분 원래 상태로 혈액량이 거의 회복된다는 점과 건강한 분들의 경우 1년에 3번 정도 무리 없는 전혈이 가능하다는 점 등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 어떤 분들께는 규칙적으로 하는 수혈이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수행자가 지켜야할 계율 수행과도 같습니다. 그 보기로 한국인 가운데 약 0.5%가 Rh-형인데, 이런 분들의 가족들끼리는 늘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며 서로를 치열하게 돕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4개월에 한 번씩 헌혈을 하기로 작정한다면, 수행자적인 자세로 늘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즉, 준비기간 동안 좋은 식습관, 절주, 금연 및 적당한 운동 등의 좋은 생활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고, 이렇게 하여 몸이 건강해지면 이는 곧 맑은 영성을 체득할 수 있는 수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분들은 삶을 보다 넓은 안목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고, 그 결과 비단 헌혈뿐만이 아니라 여건이 허락하는 한, 다른 제반 문제들도 나와 남의 분별없이 함께 더불어 해결하고자 애쓰면서 남은 삶을 참으로 멋지고 가치 있게 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 3달 반 만에 헌혈을 하다

그 후 3달 반이 지난 2012년 2월 필자와 공동연구 중인 후배 교수님과 함께 서강대 체육관 앞에 대기 중인 헌혈버스로 가서 2차 헌혈을 했습니다. 그리고 헌혈증서 2장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역시 선도회를 통해 언젠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해 쓰도록 총무님께 드렸습니다. 헌혈 후 열흘 뒤 역시 헌혈에 대한 검사결과가 도착해 있었는데 1차 때처럼 정상이라는 통보였습니다.

사실 헌혈은 무심히 피를 나눈다는 이타행(利他行)의 뜻이 가장 중요하지만, 부수적으로 지난 헌혈 이후 일상의 삶에 기복이 없었다는 점검도 됩니다. 아울러 결과적으로 이렇게 무료로 건강과 수행 점검을 해주는 점에 대해 당시 대한적십자사에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 헌혈을 위한 체력단련

그리고는 헌혈버스가 서강대를 방문한 날이 필자가 강의가 있는 날이나 몸살 기운이 있는 날인 경우 헌혈 기회를 미루다 보니 2년 반이 지났다는 것을 어느 날 문득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이날 이후 먼저 외부 여건에 관계없이 헌혈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체력단련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5회까지 했었는데 2014년 7월 당시 체육관을 오랜만에 들리니 턱걸이를 1개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2주간 집에서도 틈틈이 기초 운동을 병행하며 일주일에 2-3번 체육관에 들려 근력을 끌어 올리고 나니 3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몸 상태가 시원치 않아 중단했던 헌혈도 보다 건강해진 몸으로 헌혈을 재개하려 다짐했습니다.

한편 일상 속에서의 자기성찰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늘 꾸준히 하루하루를 돌아보다가도 어느 순간 게을러지다 보면 내면(內面)을 들여다보기를 포기하고 밖으로만 겉돌며 헛것을 쫓곤 하지만 그러다가도 그런 자신을 문득 인득(認得)하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이때 다시 놓치지 않고 ‘정신차려!’ 일상 속에서 함께 더불어 자기성찰의 삶을 이어가기만 하면 되겠지요.

◇ 헌혈을 재개하다

비단 체력단련뿐만 아니라 2014년 가을 학기 개강 직전까지 6일간의 참선수련회를 통해 피가 좀 맑아졌다고 판단되어, 개강 후 3차 헌혈을 위해 헌혈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조만간 틈을 내어 신촌 헌혈의 집을 방문하고자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2014년 10월 점심식사를 하러 교직원 식당에 가다가 ‘헌혈을 위한 1초의 찡그림! 누군가의 생명을 살립니다.’라는 구호가 붙은, 체육관 앞에 정차되어 있는 헌혈버스가 한 눈에 들어와 점심식사를 하고 헌혈을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대기하고 있는 여러 명의 학생들을 보고, 가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헌혈하던 3년 전에 비해 학생들의 참여도가 꽤 높아진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 무한경쟁시대임에도 헌혈에 함께 동참하며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적정혈액 보유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비단 기관 차원의 헌혈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개인 차원의 헌혈 참여도 중요하기에 뜻 있는 분들의 헌혈체험기 발굴을 포함해 다각적인 헌혈 홍보를 통해 널리 알리면 그 효과가 클 것 같습니다. / 박영재 제공

◇ 헌혈 자격은 특권

또 미루다가 4년이 지난 2018년 2학기 개강 당일에 점심식사를 마치고 교내 산책을 하다가 헌혈버스를 발견하고 연구실로 돌아와 급한 일을 마치고 헌혈버스에 올랐습니다. 예전에는 종이문진표로 간단히 확인하고 헌혈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태블릿에서 매우 세밀히 항목들을 체크하고 비로소 4차 헌혈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그 다음날 헌혈증을 기증했던 후배 교수께서 필자를 방문해 헌혈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는 수 년 전부터 혈압약 등 두루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이제는 헌혈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당시 63세이면서도 ‘오늘의 나’가 있기까지 두루 모든 분들의 도움으로 아직까지는 지속적으로 복용해야하는 약은 없기 때문에 ‘아! 헌혈을 할 수 있는 것도 내가 아직까지도 누릴 수 있는 특권(特權)이구나!’ 하는 감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필자는 체력이 약해 지난 4년간은 헌혈버스가 공교롭게도 강의가 있는 날이나 몸살 기운이 있는 날에 서강대를 방문하곤 해서, 마음은 있었으나 헌혈을 하지 못하곤 하다가 이날은 마침 강의가 없는 날이라 헌혈을 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참고로 헌혈버스에서 내리면서 담당 선생님께 언제까지 헌혈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꾸준히만 하면 70세까지는 가능하다고 하네요.

◇ 헌혈을 촉진하는 헌혈 안내문

필자는 1년 뒤인 2019년 10월 2일에 다음과 같은 문자를 받았습니다. ‘박영재님, 당신은 1년 전 소중한 생명을 살린 영웅입니다. 10월 2일 현재, 수많은 환자들에게 수혈이 필요하지만 공급할 수 있는 전혈 혈액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다시 한 번 기적을 만들어주세요. * 본 문자는 혈액적정재고(5일분) 부족에 따라 발송되었습니다.’ 이 문자를 받고 다시 체력단련을 시작하면서 다음 학기 개강하면 꼭 헌혈을 하기로 다짐을 했습니다. 그 후 코로나 여파로 개강은 연기되고 비대면 강의로 학기가 시작되자, 집 근처 헌혈의 집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5월 11일 오전에 또 다시 똑 같은 문자를 받게 됩니다. 마침 이날 오후 참선모임이 있어 회원 분들께 체력단련 중인데 조만간 헌혈을 할 예정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비교적 건강하신 보회(布廻) 거사(69세)께서 이틀 후 점심 무렵 최근 본인의 헌혈 불가 판정에 관한 소감문을 보내주셨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많은 분들이 다방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조금은 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데 수혈할 피가 부족하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래서 법경(法鏡) 법사님께서 평소 ‘헌혈’에 대해 법문을 하시면서 ‘70세까지는 가능하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라 내 인생여정에서 더 늦기 전에 마지막으로 헌혈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에 4월 중순 경 2호선 구로디지털역 헌혈의 집을 방문해 상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65세쯤에 헌혈을 하신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없습니다.’라고 답하자, 꾸준히 해오신 분들은 70세까지도 가능하나 ‘선생님은 해당이 안됩니다.’라는 헌혈 불가(不可) 판정을 받고 섭섭함을 삼키며 돌아오는 길에 ‘삶은 꾸준한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구나.’라고 새삼 깊게 느꼈으며 신체의 한계를 느낀 오후였습니다.”

◇ 누구나 하는 헌혈

사실 필자는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다음 주쯤 틈을 내어 헌혈을 하려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이 소감문을 받기 직전 가장 시급한 비대면 동영상 자료 준비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던 때였습니다. 즉시 헌혈하며 휴식을 취하기로 작정하고 집 근처인 강변역 헌혈의 집을 방문해,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녀노소들이 참여하는 헌혈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며 필자도 5차 헌혈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한편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헌혈 후 영화관람권 등을 선택해 받았었는데, ‘소아암 및 희귀난치성 혈액질환자 치료비 및 심리치료 지원’을 위한 ‘헌혈기부권 사업’이라는 것이 있어 헌혈 후 그 자리에서 이를 선택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적정혈액 보유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비단 기관 차원의 헌혈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개인 차원의 헌혈 참여도 중요하기에 뜻 있는 분들의 헌혈체험기 발굴을 포함해 다각적인 헌혈 홍보를 통해 널리 알리면 그 효과가 클 것 같습니다.

덧붙여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레더만 교수께서는 빈민가의 아이들 가운데 아인슈타인처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할 경우 인류의 과학 발전에 큰 손실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틈만 나면 주말에 뉴욕 맨해튼의 빈민가를 돌며 이런 아이들 발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분야에서든지 대한민국, 아니 지구촌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수혈을 제때 받지 못해 세상을 일찍 떠난다면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손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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