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한비자’의 유로(喩老)편에는 공자의 제자들인 자하(子夏)와 증자(曾子)의 이야기가 나오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자하를 만난 증자가 묻지. “이전에 만났을 때는 뼈만 앙상하더니 지금 살이 찐 이유가 뭐요?” 자하는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라면서, 의아해하는 증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네. “집에 들어앉아 있을 때는 요 순 우 탕과 같은 선왕들의 가르침을 읽고 거기에 마음이 끌리다가도, 거리에 나가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보면 거기에도 마음이 끌려 밥맛이 떨어지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네. 그러니 마를 수밖에. 하지만 이제 선왕들의 가르침만 따르기로 결심했어. 그랬더니 이렇게 몸이 좋아지더군.”

백수가 ‘신수가 훤한’비결이 뭐냐고 친구들이 농반진반으로 물을 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야.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면 자하처럼 마음이 편해져 건강도 좋아진다고. 그러니 그대들도 공식적인 노인이 되어서까지 더 부자가 되려고 끙끙거리지 말고 소욕지족하는 삶을 살라고. 그러면 하루하루가 싱글벙글 즐거울 수밖에 없다고 큰소리치지. 또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세속적인 욕망이 충돌할 때도 자하의 선택을 떠올리곤 해. 돈이 모든 가치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다보면 유혹이 많거든. 늙었다고 성적 욕망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뭇사람들의 많은 존경을 받던 분들이 세속적이거나 육체적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순식간에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을 지키며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하고 있네.

‘노자’33장에서도 자기를 지키면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고 있어. “남을 아는 것이 지혜(智)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明)입니다. 남을 이김이 힘있음(有力)이라면, 자기를 이김은 정말로 강함(强)입니다.” 많은 공부를 해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고 지혜가 넘쳐도 자기 자신을 아는 게 쉽지 않다는 거야. 그렇게 쌓은 지식으로 남을 이길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이기기는 더 어렵고. 그래서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거지. 자승자강(自勝者强). 이런저런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면서 즐겁게 살고 싶은 사람이 꼭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일세.

그러면 왜 자기를 이기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자유주의자들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이기심 및 정보와 사고능력의 부족 등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잘못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이나 제도로 권력을 상호 견제하는 삼권분립의 확립, 비판의 자유, 관용정신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 성선설을 믿었던 젊었을 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간이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존재라는 그들의 주장이 맞는 것 같네. 이번 서울시장 경우를 보면, 아무리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벽해 질 수는 없는 것 같아. 인간은 근본적으로 연약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줬다고나 할까.

다시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라는 시가 생각나는구먼. 자신을 알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누구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네. 오늘 걷는 길은 어제와 달라야 해. 날마다 같은 길만 걷는 자는 게으르거나 이미 죽은 사람이야.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길에만 안주하려고 해서는 안 되네. 자전거가 계속 가지 않고 멈추면 넘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변하지 않으면 쓰러지네. 쉽게 세속적인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어. 한 번 굳어지면 유연성을 회복하기 어려운 게 우리들 머리야. 대다수 노인들이 만사에 보수적으로 변하는 이유이기도 해. 그러니 넘어지지 않으려면 날마다 새로워지려고 애써야 하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계속 자기 성찰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나야만 세속적, 육체적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게. <새로운 길> 전문일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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