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권력 잡은 자들이 한 번은 인용했을, “결정은 내가 한다(The buck stops here)”는 미국 33대 대통령 트루먼의 명언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트루먼은 이 말 저작권자가 아니다. 트루먼의 고향 후배이자 1차 대전 때 트루먼 대위의 졸병으로 참전했던 프레드 캔필이 1946년 초 미국 오하이오주 소년원 원장실에서 이 말이 새겨진 책상용 명판(panel)을 보고 똑같은 것을 만들어 대통령 트루먼에게 바쳤다. 트루먼이 포커(카드게임)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포커꾼들은 포커 테이블에 올려놓은 ‘buck(사슴뿔 조각)’으로 그 판의 딜러가 누구인지를 알렸다. 앞에 사슴뿔이 놓인 사람이 딜러였다. 딜러는 카드를 나눠주면서 새 판에서 무슨 게임을 할지, 판돈은 얼마에서 시작할지 같은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포커 판에서 “The buck stops here”라고 말하면, “그 사슴뿔, 여기 갖다 놔. 내가 딜러란 말이야. 뭐든 내가 결정하겠다구”라는 뜻이 됐고, 테이블에 사슴뿔이 없더라도 딜러는 그렇게 말하면 됐다.

캔필은 트루먼이 대통령이 되자 워싱턴으로 따라 올라와 “대통령 집무실이나 거실 문고리는 언제나 잡아보나” 생각도 했던 사람인데, 트루먼은 그를 가까이에는 뒀으나 문고리를 잡게 하지는 않았다. 반면 포커 판이나 술자리처럼 걸쭉하고 걸걸한 농담이 오가는 곳에는 그를 데리고 다녔다. 공적(公的) 자질과 경험이 부족한 캔필이 트루먼의 절친이 모인 포커 판이나 술자리에서는 자신의 특기, 즉 재담이나 농담, 음담 따위 주워섬기기 같은 것을 십분 발휘, 나름 최선을 다해 트루먼을 보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문고리를 잡지 못한 캔필과는 달리 그가 바친 명판은 포커 판이 아니라 대통령 집무실 문고리 안쪽 깊이, 대통령 책상 위에 자리 잡았다. 트루먼은 그 명판을 쳐다보면서 대통령으로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를 생각했다. 결정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던 때였다.

이 명판이 대통령 집무실에 나타났던 1946년 초 미국은 ‘승자의 저주’에 걸려 있었다. 바로 전 해 8월에 일본의 항복을 받아냄으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됐지만 기쁨은 잠깐, 금세 혼란과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됐다. 전시동원체제가 종료되면서 극심한 생필품 부족 현상과 이에 따른 인플레가 경제를 위기에 빠트렸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의 일자리와 주택 문제도 심각했다. 모든 노조가 파업하거나 파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흑백 인종차별 문제에도 현명한 대처가 필요했다. 국제적으로는 스탈린 소련의 세력 팽창을 막아야 했으며, 장차 중동의 화약고가 될 터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쉬운 게 하나 없었다.

전쟁을 승리로 끝낸 덕에 대통령 지지율이 아직은 80%대였지만 이 모든 문제에 슬기로운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인기는 순식간에 급락하고 말 것임을 트루먼은 알고 있었다. 트루먼의 생각에, 이제 막 시작된 ‘미국의 영광’도 찰나의 거품에 불과해질 것이었다. 그러니 트루먼으로서는 1946년 초 라디오 연설에서 “올해는 우리 모두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라고 앞으로 자신이 내릴 결정에 국민의 인내와 지지를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집무실에서는 캔필의 명판을 쳐다보며 마음을 다잡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매컬로우가 쓴 트루먼 전기에 실린 트루먼의 회고를 보면 이 무렵 그는 “결정은 내가 한다”보다는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생각으로 이 명판을 쳐다본 것 같다. “책임감을 가져 본 적 없는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을 묶어놓은 책임감의 사슬에는 끝이 없다.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임을 한순간이라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David McCullogh, Truman)

트루먼은 “결정을 하기 전에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 책임은 어떻게 질지를 끝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재선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1952년 말 3선에 도전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결정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졌다.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했지만 일찍 끝낼 수 있었던 전쟁을 일찍 끝내지 못했으며, 국론이 분열된 책임을 그렇게 진 것이다. 80%였던 인기는 바닥을 쳤지만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을 최대한 이용하면 3선이 가능했던 상황이었으나 나라의 혼란이 더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출마를 접은 것이다. 트루먼의 3선 포기로 대통령은 재선까지만 하는 것이 미국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트루먼의 결정과 책임을 살피다 보니 “The buck stops here”는 “결정은 내가 한다”가 아니라 “책임은 내가 진다”라고 번역했어야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결정을 내리는 ‘쾌감’보다는 책임 질 때의 ‘엄숙’을 느끼도록 번역됐어야 했다는 말이다. 지금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와 의회에는 ‘결정하는 자’만 있고 ‘책임지는 자’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트루먼의 ‘명언’을 “결정은 내가 한다”가 아니라 “결정만 내가 한다”라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라에 혼란과 분열이 지겹도록 증폭되더니 마침내 나라가 물에 떠내려갈 지경이 됐다. 책임지는 자는 없고 결정만 내리는 자들이 장마철 버섯처럼 수북하게 생기고 있다. 해가 나는 순간 즉시 녹아내리고 말 독버섯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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