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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한예리가 완성한 ‘공감의 힘’
2021. 03. 02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한예리가 영화 ‘미나리’(감독 리 아이작 정)로 관객 앞에 선다. /판씨네마
배우 한예리가 영화 ‘미나리’(감독 리 아이작 정)로 관객 앞에 선다. /판씨네마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자신보다 자식이 먼저였던, 어려운 살림 속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고군분투했던, 낯선 땅 외로움과 싸워야 했던,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해 온, 그 역시 누군가의 딸이었을… 배우 한예리가 그 시절, ‘나의 어머니’의 모습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냈다. 영화 ‘미나리’(감독 리 아이작 정)를 통해서다.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따라 미 아칸소주의 농장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미국 이민 1세대 이야기를 그렸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이 주연뿐 아니라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한국배우 한예리‧윤여정 등이 열연했다. 

북미 배급사 A24가 투자를 맡고,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제작사 플랜 B가 제작한 ‘미나리’는 제36회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기점으로, 지난 1일 열린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까지 휩쓸며 전세계 75관왕을 기록,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또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 유력 후보작으로 꼽히고 있어 전 세계 영화인의 이목이 쏠린다.

팀 ‘미나리’(스티븐 연‧한예리‧윤여정‧앨런 김‧노엘 케이트 조)를 향한 관심도 뜨겁다. 한국적인 정서와 미국의 삶을 담은 특별한 가족을 환상적인 연기 호흡으로 사랑스럽게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라는 틀 안에 ‘한국적인 정서’를 이질감 없이 녹여내 보다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인데, 그 중심엔 엄마 모니카를 연기한 한예리가 있다.

‘미나리’에서 엄마 모니카를 연기한 한예리 스틸컷. /판씨네마
‘미나리’에서 엄마 모니카를 연기한 한예리 스틸컷. /판씨네마

모니카는 낯선 미국에서 가족을 이끌며 다독여주는 인물. ‘미나리’를 통해 첫 할리우드 진출에 나선 한예리는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누구나 공감할 반한 보편적인 엄마의 모습을 따뜻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내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낯선 땅에서 쉽게 뿌리 내릴 수 없었던, 고단한 일상을 견뎌야 했던 이민자 1세대의 삶을 진정성 있게 담아낸 것은 물론,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으로 영화의 정서를 충실히 전달하는 역할을 해냈다. 

미국 영화 전문 매체 <골드 더비(Gold Derby)>는 “‘미나리’의 성공 열쇠는 한예리”라고 극찬했고,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와 <콜라이더(Collider)>에서는 ‘오스카 여우주연상 예상 후보’, ‘2020년 위대한 연기’로 한예리를 선정했다. 또 2021 골드리스트(Gold List)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데 이어, ‘독립영화계 오스카’로 불리는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FISA) 여우조연상 부문 후보에 올라 주목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접 가창에 참여한 ‘미나리’ OST 한국어 엔딩곡 ‘RAIN SONG’은 제93회 아카데미상(OSCAR) 예비후보의 음악상, 주제가상 2개 부분에 1차 노미네이트되며 오스카 입성 가능성을 높였다.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한예리는 오는 3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높아진 기대치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놔 이목을 끌었다. 그러면서 “‘미나리’를 통해 자신을 보듬을 수 있는 순간이 잠시라도 생긴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미나리’로 호평을 얻고 있는 한예리. /판씨네마
‘미나리’로 호평을 얻고 있는 한예리. /판씨네마

-계속해서 좋은 소식이 들리고 있다. 국내 개봉도 앞두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
“정말 좋다. 감사드리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그런데 국내 관객을 만나기 전부터 크게 이슈가 되고 있어서 걱정도 된다. ‘뭐 이렇게 심심해’라고 할까봐… 이 영화를 ‘기생충’ 같은 작품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은데, 다른 결의 영화다. ‘미나리’ 역시 주어진 예산 안에서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다. 또 한국에서 많이 다뤄진 이야기라,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더라. 하지만 아이작 감독의 방법으로 표현해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좋으면서 긴장도 되는 마음이다.”

-해외에서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평가나 반응이 있다면.
“우선 너무 좋은 얘기를 해줘 감사하다. 잘 봐준 것도 고맙다. 특히 본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는 것 같더라. 미국이라는 땅에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와서 미나리처럼 뿌리를 내리고, 가족들의 희생으로 자라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힘이 뭔지 잘 알고 있는 분들이라 이 영화를 특히 더 좋아해주고 언급해주는 것 같다. 공감 때문에 이 영화가 미국 안에서 더 크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자의 이야기 외에도 누구나 인생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잖나. 그런 부분을 이 영화가 꺼내보게 하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배우 산드라 오가 얘기한 부분이다. 이 영화를 보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하더라. 본인이 어렸을 때 현실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부분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고, 상처를 건드리게 될까봐 주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 영화로 인해 많은 부분 치유 받았다고 했다. 정말 좋았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불안감을 떠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부모님 세대와 이민 2세대는 또 다른 것 같았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되지 못하는 그 어중간한 섬에 위치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 영화가 잘 보듬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아이작 감독에게도 고맙더라. 용기를 내서 이 영화를 봐준 사람들에게도 고마웠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촬영한 스티븐한테도 정말 고마웠다.”

-리 아이작 정 감독이 한예리를 처음 본 순간부터 모니카였다고 했는데, 어떤 면을 보고 확신했을까.
“나도 궁금하다. 아이작 감독이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처음 만난 다음 아이작 감독이 나를 소개해준 분에게 ‘그냥 걸어들어오는데 모니카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했다더라.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였을까 싶기도 하고, 얼굴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감독이랑 나, 아역배우들까지 모두 다 닮았다.(웃음) 나도 아이작 감독을 만나고 잘됐으면 좋겠고, 뭐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모니카를 하겠다고 했다. 당시 드라마 촬영 일정 때문에 언제 합류할지 확실히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믿고 끝까지 기다려줘서 정말 감사했다.”

‘미나리’에서 이민자 1세대의 고단한 삶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한예리(앞). /판씨네마
‘미나리’에서 이민자 1세대의 고단한 삶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한예리(앞). /판씨네마

-시나리오를 보고 모니카라는 인물이 막연하게 느껴졌다고. 감독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나.
“시나리오 안에서 모니카의 성격이 묻어나는 부분이 적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해 생각을 했다. 감독과 모니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시절 여성, 어머니일 수 있겠고 이모님이나 고모님일 수 있겠고 할머니일 수 있겠고, 다양한 여성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사람들이 화를 낼 때 모습이나 울 때, 누군가를 챙기는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과정에서 모니카를 조금씩 찾아갔다. 가장 한국적이고 보편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모니카일 거라고 생각했다. 순자(윤여정 분)와 제이콥(스티븐 연)은 재밌고 특별하고 반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니카가 갖고 있지 않은 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또 한국 가정의 정서를 드러내주는 사람이 모니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장 전형적인 타입의 사람이지만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모니카가 가장 한국적이고 전형적인 모성을 보여줬는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조금 더 전형적이어야만 미국 관객들이 봤을 때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기를 하긴 했지만, 어려웠다. 모성이라는 것이 꼭 아이를 낳아야만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를 기르면서 생기는 사람도 있고, 사람마다 표현해내는 방식이라든지 방법이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모니카가 표현해내는 모성애는 ‘희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모니카와 제이콥, 두 부부가 본인의 꿈도 있겠지만 보다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싶고, 교육이 주는 힘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선택들을 아이들이 할 수 있게, 미국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희생이 모성 그리고 부성애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공감의 힘을 보여준 한예리 /판씨네마
공감의 힘을 보여준 한예리 /판씨네마

-모니카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이 있다면.
“이해 받고 싶었다. 모니카가 나쁘게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가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가졌으면 했고,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어머니 같은 모습이 보였으면 해서 그런 장치를 뒀다. 멸치나 고춧가루를 받을 때, 한약을 짤 때라는지 그런 모습들이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순자를 만났을 때 안정감이 잘 보였으면 했다. 또 침묵에 대한 생각도 했다. 처음엔 제이콥도 모니카도 말이 많았을 거다. 그런데 계속 싸우다 보니 말이 없어졌을 거다. 그 침묵이 제이콥에게는 벌처럼 느껴졌으면 했다. 모니카의 무서움이 표현되는 게 없는데, 침묵을 하는 순간 제이콥이 무서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장치들이 모니카의 성격을 대변하면서도 부부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표현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고, 모니카는 감독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부담도 있고,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이작 감독이 어머니를 연기해달라고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만약 그렇게 말했다면 정말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그랬다면 (감독의) 어머님을 만나서 그 시절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고, 옷이며 어머님의 습관을 흉내 내려고 애썼을 거다. 그런데 다행히 감독이 전혀 바라지 않았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됐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모니카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편하게 새로운 모니카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작 감독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함께 만들어갔다. 또 신기한 건 제이콥과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신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톤이 맞춰지더라. (감독이) 뭔가 더 요구하지 않았고, 배우의 그 감정에 충실할 수 있게 몰입할 수 있게 많은 부분 열어주고 집중하게 해줬다. 아이작 감독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니카가 엄마 순자를 만나는 장면에서 ‘아이고, 아이고’라는 굉장히 한국적인 추임새를 넣는다. 연출자의 의도였나, 배우의 아이디어였나.
“내가 그냥 한 거다. 순자와 모니카가 되게 친밀한 관계고, 이들이 거의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말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엄마와 생이별을 하듯 떨어져서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모니카가 왔던 길을 순자가 다시 온 건데, 그 순간순간들이 어땠을지 생각했다. 딸 주겠다고 그 많은 짐을 이고 온 거잖나. 제일 좋은 옷을 갖춰 입고.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줄 것 같고, 가장 내 편인 사람을 만나는 감동이 클 거라고 생각했고, 한국적 추임새를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는 실제 나의 부모님이나 할머님이 잘 쓰는 말이기도 하다. 기쁠 때도 쓰고, 슬플 때도 쓰고 다양하게 쓰인다. 숨을 고르는 형태로 쓰기도 한다. 그런 마음에서 ‘아이고’를 쓰게 됐다.”

-병아리 성별을 감별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촬영 에피소드가 궁금하고, 지금도 병아리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지.
“재밌었다면 다행이지만,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했다. (병아리가) 작고, 뼈가 없는 것처럼 말랑말랑하다. 쥐었을 때 손에 쏙 들어올 정도라 혹여 떨어뜨릴까봐 무서웠다. 잘못될까봐 걱정돼서 연습할 때도 노력을 많이 했다. (병아리를) 어떻게 잡는지, 배설시키는 방법을 배우고, 감별을 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아무라 봐도 모르겠더라. 하하. 도대체 어디를 보고 구분하는지 모르겠다. 그분들은 딱 보고 아시더라. 내가 보기엔 다 똑같아서 신기했다. 그래서 페이도 많이 받고, 훈련된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걸 알게 됐다. 나는 못한다.(웃음)”

직접 OST에 참여하며 영화에 힘을 보탠 한예리. /판씨네마
직접 OST에 참여하며 영화에 힘을 보탠 한예리. /판씨네마

-메인 OST ‘RAIN SONG’을 직접 불렀다.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1차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아이작 감독이 노래를 하나 불러줄 수 있겠냐고 제안을 했고, 영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는 마음이라 그러겠다고 했다. 모니카가 데이빗(앨런 김 분)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엔딩크레딧에 올라가는 곡이라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가 묻어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잘 부를 필요가 없었다. 잘 불러야 했다면 가수를 섭외하지 않았겠나. 하하. 그래서 나도 편하게 불렀다. (아카데미 1차 후보에 오른 것은) 너무 신기하다. 동양인이 부르고, 유명하지 않은 가수가 부른 곡이 1차 후보에 들어간 경우가 처음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뜻깊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가서 노래를 부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쑥스럽다. 음악 감독님에게도 너무 감사하다. 가수도 오르기 힘든 후보에 오른 것 같아 신기하고 쑥스럽고 그렇다.”

-미국 이민 1세대의 고단한 삶을 담은 작품이다. 아버지나 아버지 세대에 대한 생각이나 관념에 변화가 생긴 게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 스티븐 연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의 부모님, 감독의 부모님, 스티븐의 부모님 모두 되게 어린나이에 결혼을 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아이들을 기르면서, 그들도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든지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오는 성장통이 분명히 있었을 거다. 아이들 역시 커가면서 성장통이 있지 않나. 그 안에서 함께 부딪히면서 조율해나가는 게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런 상황에서 자랐다. 세대 간의 소통의 부재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고, 그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이들이 물론 선택한 길이지만, 너무 어렵고 알 수 없었겠구나 싶더라.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했을 때는 더 힘들게 작용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이 와중에 우리가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영화에서 데이빗과 앤(노엘 조 분)도 그렇잖나.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눈치를 보는 와중에도 건강히 잘 자란다. 그런 가정이 나의 어릴 때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과정에서도 모두 그 시간을 견디고 미나리처럼 자란 거다. 가족이란 그런 거구나 싶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제이콥이 돼보기도 하고 모니카가 되기도 하고 데이빗이 돼보기도 하고 앤이 되기도 하면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가진 것 같다.”

-‘미나리’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의미가 전해지길 바라나.
“자신을 위한 좋은 시간, 따뜻한 시간, 위로받는 시간이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어린 시절 상처나 아픔이 있다면, 자신을 보듬을 수 있는 순간이 잠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나서 타인까지 보듬을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더없이 감사할 것 같다. 그저 아무생각 없이 이 영화를 느꼈으면 좋겠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여름의 뜨거움과 풀의 초록을 눈에 시원하게 담아갔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