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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배우 강길우의 깊이
2021. 04. 07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강길우가 영화 ‘더스트맨’(감독 김나경)으로 관객 앞에 섰다. /트리플픽쳐스
배우 강길우가 영화 ‘더스트맨’(감독 김나경)으로 관객 앞에 섰다. /트리플픽쳐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숨겨왔던 성 정체성이 드러나면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성소수자부터 발달장애로 12세 연령을 가진 노숙인까지, 배우 강길우는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들키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법한 인물 그 자체로 분해 ‘진짜’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인물로 살아 숨 쉬고자 하는 그의 ‘진심’ 때문이다.

강길우는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뒤, 이홍매 감독의 단편 ‘명태’(2017)를 통해 스크린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극 중 조선족 김수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로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단편 ‘시체들의 아침’(2018)을 통해 제5회 가톨릭영화제 스텔라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가능성을 입증,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한강에게’(2019)에서 오랜 연인 진아(강진아 분)의 추억과 일상을 잠식한 길우 역을 맡아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존재감을 뽐냈고, ‘파도를 걷는 소년’(2020) ‘마음 울적한 날엔’(2020) 등 다수의 작품에서 활약하며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강길우는 최근 ‘정말 먼 곳’(감독 박근영)과 ‘더스트맨’(감독 김나경)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또다시 확장했다. 전혀 다른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고 배우 강길우의 진가를 제대로 증명했다.

먼저 퀴어 소재를 다룬 영화 ‘정말 먼 곳’에서 그는 성소수자 진우 역을 맡아 깊은 감성 연기를 보여주며 극을 이끌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수염 등 외적 변신은 물론, 캐릭터의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로 표현, 호평을 이끌어냈다.

‘더스트맨’(위)와 ‘정말 먼 곳’(감독 박근영)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 강길우. /트리플픽쳐스, 그린나래미디어
‘더스트맨’(위)와 ‘정말 먼 곳’(감독 박근영)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 강길우. /트리플픽쳐스, 그린나래미디어

오늘(7일) 개봉한 영화 ‘더스트맨’에서는 길에서 생활하는 발달장애인 도준 역을 맡아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더스트맨’은 스스로 떠도는 삶을 선택한 태산(우지현 분)이 먼지 위에 그림을 그리며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강길우는 길에서 만난 태산을 가족처럼 의지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도준으로 분해 그동안 보지 못한 사랑스럽고 귀여운 매력을 보여준다. 상처가 많지만 따뜻한 본성을 지닌 면모부터 태산에게 의존증을 보이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인물의 성장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최근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강길우는 ‘정말 먼 곳’에 이어 ‘더스트맨’까지 연이어 관객과 만나게 된 것에 대해 “본의 아니게 가까운 시기에 개봉을 하게 돼서 바쁜 배우인 것처럼 포장이 잘 된 것 같다”며 재치 있는 소감을 전했다. 또 “캐릭터를 희화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서 장애를 가진 인물을 구현하는데 남다른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전했다.

‘더스트맨’에서 발달장애를 지닌 노숙인 도준을 연기한 강길우. /트리플픽쳐스
‘더스트맨’에서 발달장애를 지닌 노숙인 도준을 연기한 강길우. /트리플픽쳐스

-더스트 아트라는 소재부터 노숙인까지, 신선하고 새로운 매력을 느꼈을 것 같은데.
“정말 색달랐다.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든 걸 본 적이 없었고, 시나리오를 보면서 먼지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궁금했는데, 영화에 잘 붙어있는 느낌이 들더라. 처음 하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어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준이 장애를 가진 인물이라기보다 특징을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고.
“처음에 감독님이 ‘장애가 있는 캐릭터인데,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잘못 표현하면 나쁜 의미로 부각될 수 있고, 희화화될 수 있으니 그렇게 표현되지 않게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했다. 특히 감독님이 논문도 찾아보고, 참고할 만한 영상도 찾아줬다.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셨는데, 그 특성을 도준에게 잘 심어주기 위해 고민을 했다. 또 그 특징을 흉내 내기보다는 그 사람 자체가 사랑스러웠으면 좋겠고, 희망찬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표현하고자 했다.”

-의도한 대로 도준은 굉장히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아 더 좋았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적정한 선을 지키기 위해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
“도준으로서 말을 하고 연기를 하다가도 컷하고 돌아왔을 때는 내 연기가 지나치진 않았나, 모자라진 않았나 계속 신경 써야 했다. 너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가 캐릭터가 희미해지면 안 되고, 그렇다고 과감하게 연기했다가 의도하지 않게 희화화될 것 같아서 줄타기를 하는 게 어려웠다. 나는 내 연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으니, 제작진이나 감독님에게 의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현장에서 모두 도준을 좋아해 주고 사랑스럽게 봐주셨다. 그것에 힘을 얻고 잘 지켜낼 수 있었다.”

-길에서 만난 태산을 믿고 의지하던 도준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용기를 내는 모습이 뭉클하더라.
“김씨 아저씨의 죽음과 자신이 좋아하는 형이 상처를 극복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도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태산에게 의존증을 보이는 인물이지만, 태산이 없는 낯선 곳에서도 혼자 일어나 보려고 용기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끝으로 갈수록 도준이 의존증을 극복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태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그 사람이 없으면 혼자 살 수 없을 것 같던 도준이 춘천에 혼자 간다고 했을 때 그 용기가 더 대단해 보이고 응원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과 끝의 차이를 크게 보여주고자 했다.”

-우지현의 추천으로 캐스팅됐다고. 평소 좋은 시너지를 주고받는 동료이자 친구일 것 같은데.
“‘더스트맨’을 하면서 더 친해졌다.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연기하면서 얻는 생각과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다. 많은 부분이 달라 더 잘 맞는 것 같다. 부딪히는 부분이 없다. 좋아하는 연기도 다르고, 연기에 접근하는 형식도 다른 거 같다. 고민하는 지점들도 다르다. 지금 해나가고 있는 속도와 지점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현이가 나보다 1,2년 먼저 앞서서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보고 배울 게 많다. 나 대신 실수도 해주고, 먼저 부딪혀주고 그 과정에서 얻은 방법을 내게 알려주기도 한다. 반대로 지현이는 나를 보며 과거 자기가 생각했던 것들을 상기하면서 초심을 찾기도 한다더라. 그런 부분에서 서로 도움이 잘 되는 것 같다.”

매 작품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강길우. /트리플픽쳐스
매 작품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강길우. /트리플픽쳐스

-매 작품 모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좋아하는 연기 방식 때문일까. 
“아예 나와 비슷해서 시나리오에 나와 있지 않은 부분을 내가 갖고 있는 것에서 많이 넣을 수 있는 인물을 연기하거나, 아니면 아예 창조해야 하는 도준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게 좋다. 애매하게 비슷하거나 캐릭터가 약한 것보단 양극의 캐릭터를 좋아한다. 인물을 만들 때 다른 모습을 보여야지 의도를 갖고 하진 않지만, 극 안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다른 캐릭터들이 나온 것 같다.”

-그렇다면 본인의 모습이 가장 많이 투영된 캐릭터는 무엇인가.
“‘한강에게’ 길우일 거다. 이름도 같고. 그 작품 촬영할 때 대본을 다 지우고 했다. 현장에서 (박근영) 감독님이 ‘누가 어떤 말로 이 장면을 시작한다’ 정도면 던져주면 서로 듣고 보고 반응하면서 흘러갔던 촬영이다. 물론 서로 공유된 게 없으면 절대 그런 작업을 할 수 없다. (강진아와) 영화를 찍기 반년 전부터 2주에 한 번씩 늘 한강에서 만나 맥주마시면서 인물의 전사를 공유하는 과정이 있었다. 정해진 대사가 없다보니 아무래도 내 안에서 내가 가진 모습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강에게’ 길우가 나와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면 전혀 다른 ‘더스트맨’ 도준을 통해 배우 강길우가 채워진 부분이 있다면.
“내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구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연기적으로 채워진 게 있다. 사실 (도준이) 나와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다. 왜 이 역할을 내게 맡겨서 도전을 해야 할까 생각도 했다. 감독님은 계속 사랑스러움을 요구했는데, (느낌이) 잘 안 오더라. 기준이 달랐던 것 같다.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더스트맨’과 도준은 더 다양한 걸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준 영화이자, 인물이다.”

-원래 미술을 공부하다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로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
“내 기준으로 그림을 너무 오래 그렸고, 흥미가 떨어졌다. 유치원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어릴 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화가였다. ‘화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그랬다. 그래서 당연히 미대에 갔다. 제대하고 복학하려는데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건가’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새로운 뭔가를 하기엔 정보도 없고 꿈도 없었다. 그래서 완전한 우회는 못하고 조금 돌아간 게 영화 미술이었다. 학교에 다시 갔고, 1학년 때 무대 작업을 하고 객석에 내려와서 배우들을 보는데 되게 새로운 분야다 재밌겠다 생각이 들더라.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잘 하지도 못하는데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박수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한 번 해봐야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후 첫 연극의 경험이 너무 좋았던 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다.”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강길우. /트리플픽쳐스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강길우. /트리플픽쳐스

-실제 경험한 연기는 어떤 매력이 있었나.
“일단 내가 아니잖나.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탈을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 거에 있어서는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부분이 있더라.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 인물의 탈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고 연기도 그렇게 녹아지는 것 같다.”

-반대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은 언제인가.
“추울 때? 하하. 현장에서 내 책임을 다하고 싶은데 너무 춥거나 몸이 힘들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연기적으로 힘들거나 그런 건 아직까지 없는데 환경이 힘든 건 힘들다.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연극으로 시작해 영화까지 활발히 활동 중인데, 각 매체별로 얻는 에너지가 다를 것 같다.
“연극은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하루하루 똑같은 내용의 연극을 하는데, 시작과 끝이 하루에 다 있다. 그래서 작품을 다 하고 내려오면 싹 비워진 느낌이 든다. 에너지적인 면에서 연극이 되게 도움이 된다. 영화를 하면서도 연극을 했던 기억들이 크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극단이 있다. 극단을 처음 만들 때 기분이나 각오를 상기하면서 내 초심을 다지기도 한다. 영화는 현장이 너무 좋다. 현장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하나의 작품을 위해서 각자의 역할을 분주하게 해내는 걸 보면 정말 멋있다. 그래서 나중에 완성된 영화가 스크린에 걸릴 때 자랑스럽기도 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관객들에게 어떤 배우로 각인되고 싶나.
“‘눈’이 진짜였으면 좋겠다. 표정이나 말, 행동은 꾸며낼 수 있지만 눈은 내면에서 진실 되게 연기해야 진짜가 나온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그렇게 작업을 해나간다고 했는데, 눈에 관한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영화는 사실 다 가짜다. 가짜인 걸 알고 보는데, 그 세계가 진짜인 것처럼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 그 점에 있어서 ‘진짜 같다, 진실되게 연기한다’는 말을 듣는 게 가장 좋다. 들키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으로 만날 텐데, 어떻게 쌓아나가고 싶은지.
“다양하게 하고 싶다. 비슷하거나 겹치지 않는 필모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있고, 그래서 해보지 않은 것들에 도전도 할 거다. 또 작품에 해가 되지 않는 기본 값은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이기도 하지만 사람이잖나. 주변 분들에게도 자랑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연기도 사는 것도 건강하게 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