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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저항보고서
[멸종저항보고서⑯] 코끼리, ‘상아의 저주’에 갇히다
2021. 08. 25 by 박설민 기자 ihatefree1@sisaweek.com
인간들에게 가까우면서도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는 동물 코끼리는 자신의 상징인 아름다운 ‘상아’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흔히들 ‘동물의 왕’이 누굴까 하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사자나 호랑이를 말하겠지만, 만약 ‘동물들의 신’을 꼽으라면 단연 ‘코끼리’가 아닐까 싶다. 거대한 몸집과 입 주위에 길게 자란 상아, 뱀처럼 긴 코를 보면 코끼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보다는 신화 속에 등장할만한 존재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이것은 인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코끼리는 신성하면서 동시에 무시무시한 동물로 인식되곤 했다.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코끼리를 매우 신성시하는데, 코끼리의 형상을 한 가네샤가 신들 중 하나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혜와 행운의 신인 가네샤는 갖가지 장애를 걷어내는 슬기로 학문과 상업의 성취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서양 문화권에서는 코끼리를 굉장히 무서운 존재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는 기원전 218년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한 카르타고의 위대한 장군 ‘한니발’의 코끼리 기병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로마인들에게 한니발 군대의 코끼리 기병은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훗날 J.RR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 군대의 ‘무마킬’의 모습으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 역사와 신화 속에서 신성하고 강력한 존재로 나타났던 코끼리는 이제 인간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해 멸종의 절벽 끝자락까지 몰려있는 상태다. 바로 ‘상아의 저주’ 때문이다.

상아는 코끼리의 위턱에 길게 자라나는 송곳니로 땅을 파거나 자신을 지키는 무기로, 코끼리에겐  매우 중요한 신체의 일부다./ 사진=픽사베이

◇ 아름다운 ‘상아’, 코끼리를 멸종위기로 몰아넣다

포유류 장비목에 속하는 초식동물인 코끼리는 약 8m의 몸길이(아프리카 코끼리 기준)에 육박하는 거대한 몸집, 근육질로 이뤄져 손처럼 사용할 수 있는 큰 코를 가진 것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이다. 

코끼리는 이름 그대로의 ‘코’ 뿐만 아니라 약 6피트(1.8m)길이로 길게 자라나는 거대한 ‘상아’로도 유명하다. 상아는 코끼리의 위턱에 길게 자라나는 송곳니로, 코리끼들은 땅을 파서 지하수를 구하거나 자신을 지키는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는 등 매우 중요한 신체 부위다. 상아는 곧 코끼리들의 무력을 뜻하는데, 가장 길고 튼튼한 상아를 가진 수컷 코끼리가 보통 무리의 우두머리를 맡곤 한다.

문제는 이 코끼리의 상아가 인간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은 ‘보석류’라는 것이다. 상아를 다듬어 만든 목걸이, 귀걸이 등의 장신구는 노란빛이 도는 아름다운 흰색 광택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패션 분야에서 인기가 높은 ‘아이보리(Ivory)’ 색상도 상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처럼 패션·디자인 분야에서 상아를 이용한 장식품들은 매우 값비싸게 판매됐고 이는 곧 ‘밀렵’으로 이어지게 됐다. 아프리카와 인도를 비롯해 코끼리의 주요 서식지에서 수많은 코끼리들이 상아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코끼리의 밀렵이 가장 심각한 곳은 아프리카다. 전 세계에서 ‘상아 대박’을 노리고 몰려온 밀렵꾼들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내전으로 인해 경제 상황이 피폐해진 다수의 아프리카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아를 노린 코끼리 불법 사냥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란빛이 도는 아름다운 흰색 광택을 지닌 코끼리의 상아는 장식품으로 매우 인기가 높아 값이 매우 비싸다. 이로 인해 1970년대 코끼리의 밀렵은 급격히 증가했고, 이는 코끼리의 멸종위기로 이어졌다./ 사진=AP, 픽사베이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걸쳐 아프리카 숲 코끼리 개체수는 지난 31년간 86% 이상 감소했다. 또다른 아프리카 서식종인 아프리카 사바나 코끼리의 개체수 역시 지난 50년간 최소 60%는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IUCN에서는 현재 대표적인 코끼리 3가지 종에 △아프리카 숲 코끼리: CR(절멸 위급) △아프리카 사바나 코끼리: EN(절멸 위기) △아시안 코끼리: EN(절멸 위기)의 등급이 부여한 상태다. 여기서 CR등급과 EN등급의 경우 각각 ‘야생에서 절멸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음’과 ‘야생에서 절멸할 가능성이 높음’을 뜻하며, 사실상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멸종할 수밖에 없는 종이라는 뜻이다.

IUCN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코끼리 두 종 모두 긴 시간 동안의 밀렵 증가로 인해 급격한 개체수 감소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지난 2008년 이후 급격한 숫자 감소를 보이기 시작한 이후, 2011년 개체수 감소의 정점을 보였다”고 우려했다.

이어 “밀렵뿐만 아니라 농업과 토지 개간으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는 것도 또다른 위협 중 하나”라며 “2016년 기준 IUCN에서 조사한 아프리카 코끼리 현황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 생존한 코끼리는 약 41만5,000마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불법 사냥으로 획득된 코끼리의 상아들. 1kg에 2,000달러(한화 약 233만원)를 호가할 정도로 값이 비싸다./ 사진=AP

◇ ‘잔인한 진화의 현장’… 살아남기 위해 상아가 짧아지는 코끼리들

이처럼 코끼리의 멸종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다소 ‘섬뜩한’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상아를 노린 인간의 밀렵이 극심해지면서 길고 튼튼한 상아를 가졌던 코끼리들의 씨가 말랐고, 이로 인해 상아가 없는 코끼리들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영국 켄트대학교 연구진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근 아프리카 동남쪽에 위치한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에서는 상아가 없이 태어나는 암컷 코끼리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켄트대학교 연구진은 “과거 상아가 없이 태어난 코끼리의 숫자는 전체 개체수의 4% 미만 수준이었으나 현재 상아가 없는 코끼리의 숫자가 급증해 전체 무리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은 지난 1970년대말부터 16년이 넘게 진행된 아프리카 내전 당시 코끼리의 90%가 밀렵으로 사라진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아프리카 내전 당시 밀렵이 급증하면서 상아가 없거나 작았던 소수의 코끼리들만이 살아남았고, 이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코끼리 새끼들이 태어난 후 번식하면서 상아 없는 코끼리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는 것이다.

밀렵으로 인해 코끼리 상아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미국 듀크대학교 생물학과 패트릭 I. 치요 박사 연구팀이 발표한 ‘불법 상아 수확과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 크기의 감소: 2015)’ 논문에 따르면 1970~1980년대 밀렵에서 생존한 늙은 코끼리들의 평균 상아 길이에 비해 2013년 기준 수컷 코끼리들의 평균 상아 길이는 22%, 암컷 코끼리는 3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패트릭 I. 치요 박사 연구팀은 “해당 연구 결과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 크기 감소 추세가 밀렵꾼에 의해 상아의 ‘진화’의 일환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결과”라고 밝혔다. 코끼리들이 밀렵에서 살아남기 위해 5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상아의 길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니, 슬프기도 하지만 다소 소름끼치는 연구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의 켄트대학교,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진들에 따르면 과도한 밀렵으로 인해 최근 코끼리들은 상아가 없이 태어나거나 길이가 짧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사진=픽사베이

◇ 밀렵은 크게 감소했지만… 온라인상에선 여전히 불법 상아 판매 ‘기승’

이처럼 심각한 코끼리들의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는 상아 무역 금지 등의 다양한 조취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6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상아 시장이 운영되던  중국의 경우, 지난 2017년 정부 성명을 통해 상아 산업을 점진적으로 폐쇄할 것이라는 선언을 했었다. 홍콩 당국도 올해 말까지 전국의 상아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2016년 불법 밀렵으로 생산된 코끼리 상아 105톤이 소각됐다. 이는 코끼리 8,000여마리분에 달하는 상아의 양으로 시가 1,000억원이 넘는 가격이다. 하지만 케냐 정부는 “상아 거래 전면 금지와 밀렵을 막기 위한 정부의 굳은 의지”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현재 케냐 정부는 국내외 밀렵꾼들을 단속하고, 검거 시 강력한 처벌을 가하는 등 밀렵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코끼리의 밀렵이 심각한 상태가 이어지면서, 각국은 상아 무역을 금지하고 불법 사냥을 단속하는 등 애를 쓰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케냐에서 불법 수거된 코끼리 상아를 소각하는 모습./ 사진=AP

다행히 이런 국제 사회의 노력이 이어지면서 코끼리 밀렵도 크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19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저널에 게재된 ‘African elephant poaching rates correlate with local poverty, national corruption and global ivory price)’에 따르면 아프리카 코끼리의 밀렵 비율이 6년 만에 60%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논문을 발표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생물 환경 시스템 분석학과 세베린 하우엔슈타인 교수 연구팀은 “2011년 기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코끼리의 연간 밀렵 사망률은 10%였으나, 2017년 기준으로 4%까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여전히 코끼리들에게 가해진 ‘상아의 저주’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암암리에 온라인상에서 불법 상아 거래가 교묘히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영국 더렐 보존 생태 연구소 (DICE)의 데이비드 로버츠 박사는 “코끼리 상아무역을 금지하는 정책이 나온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온라인 마켓인 이베이에서 판매되고 있음을 발견했다”며 “동물 및 야생 동물 제품에 대한 이베이의 엄격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공급업체들은 다른 비제한 물품으로 속여서 판매한다”고 지적했다.

신화부터 코끼리 아저씨동요까지 우리에게 신성하면서도 친숙했던 동물 코끼리는 아름다운 상아를 탐한 인간의 물욕에 멸종위기의 끝자락까지 몰리고 말았다. 이런 인간들의 탐욕이 끝나지 않는다면, 코끼리는 어쩌면 과거 상상의 동물로만 여겨졌던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 정말로 ‘신화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더 이상 코끼리의 상아가 짧아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