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인간의 전쟁은 수 만년에 걸쳐 이어졌다. 그 과정 속에 인간은 항생제, 치료제, 백신 등 질병에 맞서 싸울 다양한 무기들을 개발해 왔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이른 현재, 정보통신기술(ICT)는 인간이 질병에 맞설 새로운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인간과 질병은 기나긴 시간 동안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대체로 승자는 ‘인간’으로 끝나곤 했다. 아즈텍 문명을 멸망시킨 천연두는 이제 간단한 항생제 정도로 치료가 가능해졌고. 전 세계 인구의 30%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흑사병(페스트)은 더 이상 죽음의 사자(使者)가 아니다. 

하지만 질병 측의 반격 역시 만만찮다. 지난 2002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부터 최근 우리 사회 전체를 마비시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감염병들은 끊임없는 진화를 거듭하며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로 인해 앞으로 돌연변이 병원체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런 질병의 끊임없는 위협을 막기 위해선 이제 새로운 대비책을 미리 세워야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대비책은 바로 ‘정보통신기술(ICT)’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ICT 융합기술을 활용한 ‘예방’은 병원체 확산을 예측해 감염병 확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AI와 빅데이터 등 첨단 ICT기술을 활용해 감염병이 확산되기 전 미리 패턴을 예측하는 것이다./ 사진=뉴시스. Gettyimagesbank, 편집=박설민 기자

◇ “미리 알고 막는다”… AI, 감염병 확산 예측할 수 있을까

의학계와 과학 기술 분야 전문가들이 앞으로 ICT 융합기술이 ‘제2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막을 수 있는 핵심이 될 것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방역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예방’에 ICT 융합기술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ICT 융합기술을 활용한 ‘예방’은 병원체 확산을 예측해 감염병 확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공지능(AI)와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감염병 확산의 패턴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구글에서 2008년 개발한 ‘구글 플루트렌드’로 검색어 패턴을 파악해 독감 발생을 예측하는 연구다. 구글은 미국질병관리본부(CDC)의 독감 관련 데이터와 가장 연관성이 높은 단어 5,000만개를 정하고, 인터넷 포털 내 검색 동향을 살피는 것으로 독감을 예측하고자 했다. 

아쉽게도 2010년 워싱턴 대학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구글 플루 트렌드는 CDC 모니터링 프로그램보다 정확도가 25%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감기 증세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발생하는 독감과 증세가 비슷한데, 이 경우 실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한 독감은 약 20~70%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글의 뒤를 이어 AI를 활용한 감염병 확산 패턴을 예측에 성공한 곳은 캐나다의 소프트웨어 기업 ‘블루닷(BlueDot)’이다. 글로벌 항공사의 발권 데이터를 AI를 분석해 코로나19의 확산 패턴을 정확히 예측한 것.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AI를 활용한 감염병 확산 추이 예측은 완전한 기술은 아니라 좀 더 기술 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는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발간하는 ‘KISA Report(2020)’를 통해 “AI를 활용한 감염병 확산 예측은 최근 발 빠르지만 조금 이른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전체를 파악하는 데이터 또는 분석이 나오기는 부족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얻어지는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서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이나 이들의 확산, 감염의 특징을 병리학적인 아닌 소셜 데이터나 기사, 정보, 자연어 분석을 통해서 새로운 데이터 분석 모델이나 AI모델이 구현되는 것은 앞으로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동아프리카 르완다 의료진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배치한 의료용 로봇(오른쪽)과 싱가포르에서 방역활동을 펼치고 있는 로봇개 '스팟'의 모습./ 뉴시스·보스톤 다이내믹스

◇ 의료 현장을 직접 뛰는 방역로봇… 보건인력 보조에 ‘안성맞춤’

전문가들은 확산 예측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 사태인 팬데믹이 발생한 현장에서도 ICT 융합기술은 큰 활약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먼저 가장 주목받는 것은 ‘방역 로봇’ 분야다. 현장에서 뛰는 의료인력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피로도를 크게 줄일 수 있고, 확진자 돌봄과 의료폐기물 처리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인력 2차 감염의 위험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의료 현장의 인력들은 현재 상당한 피로도와 심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이 대한신경과학회지(JKNA)에 게재한 ‘코로나19가 보건의료업무 종사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지원 방안’ 논문에 따르면 코로나19 보건의료업무 종사자들의 약 2.2~14.5%는 스트레스 관련 정신건강 증상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현장에서 방역 관련 로봇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실제 몇몇 국가들에서는 코로나19 방역현장 일선에 로봇들이 투입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부터 로봇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제작한 4족 보행 로봇개 ‘스팟’은 싱가포르 공원을 돌아다니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싱가포르도 지난 9월부터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감시에 로봇을 투입해 감시하고 있다. 

또한 동아프리카 국가 르완다에서는 병원마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용 로봇이 배치됐다. 이들은 벨기에 IT기업 조라봇츠에서 개발한 로봇들로 환자들의 체온을 제거나 상태를 모니터링해 의료진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동통신사들을 중심으로 방역로봇들이 실제 운영 중이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용인 세브란스병원과 손잡고 5G네트워크 및 실시간 위치 추적 시스템 기반의 5G복합 방역로봇 ‘Keemi’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Keemi는 AI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체온 측정과 마스크 착용 여부를 검사하고, 자외선(UV) 소독 기능을 통해 살균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SK텔레콤이 지난 4월 용인 세브란스병원에 배치한  5G복합 방역로봇 ‘Keemi’의 모습./ SK텔레콤

◇ ICT기반 방역, “단순 기술뿐만 아니라 표준과 인증·규제 등에 중점 둬야”

그렇다면 ICT융합기술이 앞서 소개한 것처럼 ‘제2의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활약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과제는 무엇일까. 

먼저 IT분야 전문가들은 감염병 대응과 관련된 ICT 기술 분야에 대한 ‘표준 확보’가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모든 ICT분야의 기술은 상호간에 연계성이 존재하는데, 신뢰성 있는 기술과 기술들간의 상호호환성 보증을 위해선 ICT표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도 지난 1월 발간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ICT 표준화 추진 현황 및 계획’ 보고서를 통해 “현재 코로나19 상황과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서 ICT 표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후 사회·경제적 회복에도 ICT 표준이 선두에 활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감염병을 완전히 없앨 수 없는 이상, ICT기술을 활용해 다음에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에 대응이 가능한 인프라를 준비하는 것이 최소한의 피해로 감염병을 극복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ICT기술간 상호운영성을 보장할 수 있는 표준화 확보가 필수”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ICT 융합기술을 이용한 방역시스템 확보는 기존 R&D(연구개발)의 방식과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기존 R&D에서 보통 기술 그 자체의 개발에만 중시하는 것과 달리 ICT기반 방역시스템의 경우, 실제 현장 적용 시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규제, 표준, 인증 등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방역로봇사업단의 정진우 팀장과 오상록 단장은 한국로봇학회(KROS)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실제 개발된 시스템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표준적인 절차에 따라 운용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개발된 결과물이 데모 수준의 로봇시스템으로 그친다면 전혀 실효성이 없는 그저 또 하나의 R&D 성과에 그칠 것”이라며 “실제 방역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표준화된 방역체계로서의 방역로봇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함께 실증에 더 초점을 맞추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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