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3 17:50
[김재필 '에세이'] H에게-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재필 '에세이'] H에게-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2.04.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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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요즘은 경기도 양평 산골에 자주 가네. 어렸을 때부터 가깝게 지낸 죽마고우가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거든. 작년에는 친구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묫자리도 마련했네. 하늘이 확 트이고 사방은 숲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속 양지바른 언덕인데, 그곳에 올라가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좋아. 나랑 인연이 있는 땅인가 봐. 그래서 가끔 가서 놀다가 오네. 이생에서보다 더 긴 세월을 함께 보낼 자연 친구들을 미리 사귀고 있는 거지. 기온이 좀 더 오르면 내가 좋아하는 은방울꽃 같은 야생화들도 심을 예정이야. 저승에서도 말동무가 되어 줄 꽃 친구는 필요하니까.

죽음을 생각하면 두렵고 무섭지 않냐고?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전혀 아니야. 그렇다고 빨리 죽고 싶은 것도 아니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게. 10여 년 전부터 노장철학, 특히 장자를 공부하면서 죽음과 친해졌거든. 장자는 죽는 게 삶의 끝이 아니고 삶의 연장이며, 생명 변화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하네. 죽음의 세계와 삶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삶이 죽음으로, 죽음이 다시 삶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거야. 그래서 즐겁게 살다 죽으면 죽어서도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하네.

『장자』외편 「지락」에는 장자가 초나라에 가다가 만난 해골이 꿈에 나타나 하는 말이 나오네. “죽으면 위에 군주도 없고, 아래에 신하도 없소. 사철 변화도 없고요. 자연스레 천지를 봄가을로 삼으니 제왕의 즐거움이 이만하겠소?” 장자는 해골의 말이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묻지. “내가 생명을 관장하는 신에게 부탁해 그대의 몸을 살아나게 하고, 뼈와 살과 피부를 만들어달라고 해 그대를 부모와 처자, 고향 친지들에게 돌아가게 해준다면 받아들이겠소?” 해골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하네. “내가 왜 제왕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고달픈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겠소?”죽음의 세계가 삶의 세계보다 훨씬 더 즐거우니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뜻일세.

장자는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에도 주검 앞에서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네. 문상을 온 혜자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나무라자, 장자는 태어났다가 죽는 건 사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다고 말하네. 계절이 바뀐다고 우는 사람이 있느냐는 거지. 아내가 죽었다고 슬퍼하며 우는 것은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는 거야. 내편 「양생주」에서도 장자는 노담(노자)이 죽었다고 곡을 하면서 우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나무라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요, 세상을 떠나는 것도 때에 따르는 것이네. 때를 편안히 받아들이고 그대로 따른다면 슬픔이나 기쁨이 끼어들 수 없는 거야.”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고 생명 변화의 한 과정이라는 장자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세상 보는 눈과 사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네. 이제 체력과 기억력 모두 예전 같지 않는 노인이 되었지만 사는 게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신비롭고 즐거워. 죽음을 초연한 신선이 된 것도 아닌데 육신이 늙고 병드는 게 전혀 두렵지 않아. “1분만 안 살아도 끝장나는 인생”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을 곱씹으며 순간순간 알차게 살다보니 오늘이 즐겁고, 내일을 설렌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네. 부질없는 욕망들 모두 버리거나 포기하니 근심 걱정 모두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신비 자체야.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바라보았던 햇살, 바람, 눈, 봄비, 꽃, 새, 별, 산과 강 등 자연 모두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해. 십대 초반부터 즐겨 마셨던 술을 끊었지만 살짝 취한 것처럼 즐거울 때가 더 많아. 그래서 흥얼거리며 묫자리도 찾을 수 있는 거지.

최근에 작고한 이어녕 교수도 죽음은 탄생의 자리, 즉 어머니 곁,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더군. 죽음은 두렵고 음침한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고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라는 거야. 그러면서 인간이 죽음과 함께 살았던 때가 생명의 시대였다고 강조하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출간된 『이어녕의 마지막 수업』에서 한 말일세. “우리가 진짜 살고자 한다면 죽음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야 한다네. 눈동자의 빛이 꺼지고, 입이 벌어지고, 썩고, 시체 냄새가 나고…… 그게 죽음이야. 옛날엔 묘지도 집 가까이 있었어. 귀신이 어슬렁거렸지. 역설적으로 죽음이 우리의 일상 속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었던 거야. 신기하지 않나? 죽음의 흔적을 없애면 생명의 감각도 희미해져.” 메멘토 모리, 항상 죽음을 기억하면서 즐겁게 사는 노년 되길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