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왜 산에 가냐고? 산은 항상 거기 있으니까. 왜 살아야 하냐고? 생명이 거기 있으니까.”
연극 ‘터칭 더 보이드’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거대한 설산, 냉혹한 대자연에 갇힌 공포, 그 공포를 이겨낸 생의 투지가 담긴 작품이다. 1985년 아무도 등반하지 않은 페루 안데스 산맥 시울라 그란데의 서쪽 빙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 영국인 산악가 조 심슨(Joe Simpson)과 사이먼 예이츠(Simon Yates)의 생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동명의 회고록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미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전한 바 있는 ‘터칭 더 보이드’는 연극으로는 2018년 영국에서 초연돼 ‘무대 위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음을 증명한 공연’ ‘고조된 전율과 긴장감에 머리가 아찔하다’ 등의 찬사를 받으며 장르를 뛰어넘는 실화의 묵직한 감동을 입증했다.
한국 초연은 현재 국내 공연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김동연이 연출을 맡아 지난 8일부터 관객과 만나고 있다. 김동연 연출은 인간을 향한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탁월한 연출력으로 엄혹한 대자연에 맞선 한 인간의 뜨거운 생의 투지를 담아낸다.
연출을 맡은 김동연은 지난 20일 진행된 하이라이트 시연 및 기자간담회에서 “대본에 쓰여 있는 대사들과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며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의지를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고 연출 계기를 밝혔다.
이어 “(무대 구현이) 너무 어려워서 밤에 조난당하는 꿈을 꿀 정도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으며 “그럼에도 인물들이 갖고 있는 삶,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에 닿으려 하는 의지가 우리들에게 필요하고, 누군가에겐 큰 의미를 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김동연 연출의 말처럼 ‘터칭 더 보이드’는 기술적 한계로 무대에서 좀처럼 소개되지 않았던 ’산악 조난‘ 상황을 생생하게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무대 디자인을 수십 번 고치며 공을 들인 것은 물론, 몰입형 음향 기술을 활용해 몰입감을 높였다. 김동연 연출은 “조가 크레바스에 빠진 상황을 관객이 생생하게 느끼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조난사고로 설산에 고립된 조 역은 연극 ‘오만과 편견’ ‘킬 미 나우’, 뮤지컬 ‘곤 투모로우’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 등에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배우 신성민과 연극 ‘얼음’ ‘메모리 인 드림’,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스타트업’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력과 강한 존재감을 선보인 김선호, 연극 ‘마우스피스’,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드라마 ‘로스쿨’ 등을 통해 존재감을 알린 이휘종이 분한다.
조의 누나 새라는 연극 ‘렁스’ ‘프라이드’ ‘킬 미 나우’와 드라마 ‘VIP’ 등에서 배우 특유의 진정성과 따뜻함으로 작품 속 캐릭터 그 이상의 매력을 선보인 배우 이진희와 연극 ‘분장실’ ‘와이프’ ‘프라이드’와 드라마 ‘비밀의 숲 2’ 등을 통해 정확한 캐릭터 분석으로 작품의 깊이를 더 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배우 손지윤이 맡아 생사의 경계에 선 조에게 삶의 투지를 일으킨다.
조와 함께 시울라 그란데를 등반한 사이먼 역에는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알앤제이’ ‘톡톡’ ‘킬 미 나우’ 등에서 밀도 높은 감정 연기로 캐릭터에 입체감을 불어넣은 배우 오정택과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와이프’ 등에서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정교하게 펼쳐낸 배우 정환이 함께해 딜레마에 빠진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또 시울라 그란데 원정 베이스 캠프 매니저 리처드 역은 연극 ‘어나더 컨트리’, 뮤지컬 ‘박열’ ‘배니싱’ 등에서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며 관객들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 조훈과 연극 ‘비클래스’,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 등에서 신인답지 않은 연기로 주목할 만한 배우로 떠오른 정지우가 출연, 넘치는 에너지로 조와 사이먼의 긴박한 원정기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배우들은 무대, 그리고 관객을 통해 특별한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김선호는 “내가 주는 것도 있지만 관객들이 내게 주는 에너지도 있다”며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모든 배우들이 느낄 거다.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공감하고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생동감, 희열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했다.
이진희 역시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게 매력”이라며 “그날 무슨 상황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게 무겁기도 하지만 매력이기도 하다. 또 내 앞에 있는 관객과 호흡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고 말했다.
‘터칭 더 보이드’는 오는 9월 1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