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꽤 쌀쌀한 걸 보면 가을이 머지않은 것 같네. 새벽에 동네 공원에서 운동하는 노인들 복장이 지난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달라졌어. 짧은 옷차림은 보기 힘들고 긴팔셔츠와 긴바지를 입고 걷는 사람들이 대다수야. 공원 숲속에서 매미들의 힘찬 노랫소리에 맞춰 걷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귀뚜라미와 여치 같은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더군. 세월 참 빠르지?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초가을에 산과 들에서 흔히 보는 꽃들은 대부분 국화과 식물이네. 들국화라고 부르는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시기가 가을이야. 들국화라는 이름은 들어봤지? 하지만 들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다네. 초가을부터 피는 국화과 식물들 중 국화의 꽃과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총칭하는 이름일 뿐이야. 구절초, 개미취, 벌개미취, 쑥부쟁이, 각시취, 버드쟁이나물, 감국, 산국 등을 흔히 들국화라고 불러. 그래서 가을에 산과 들에서 국화처럼 생긴 꽃을 만났을 때, 누가 무슨 꽃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들국화'라고 대답해도 크게 틀린 게 아니야. 물론 정확한 이름이 궁금해서 물어본 사람은 “이상하네. 들국화는 꽃 모양과 크기가 서로 다른 것도 많은가 봐”라고 혼자 중얼거릴지도 모르지만.

국화과에 속하는 꽃들은 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 커다란 꽃 한 송이를 만드네. 이게 머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두상화(頭狀花)라고 불러.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들국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참 예쁘다’고 감탄하는 부분은 십중팔구 두상화 중 혀꽃이야. 꽃의 윗부분이 혀 모양이어서 설상화(舌狀花)라고도 부르지. 하지만 두상화에서는 관상화(管狀花)라고 부르는 통꽃이 진짜 꽃이야. 거기에 열매를 만드는 암술과 수술이 있거든.

국화과 식물들은 왜 예쁜 혀꽃을 따로 갖고 있을까? 벌과 나비를 유인하기 위해서야. 통꽃은 작고 볼품이 없어서 멀리서 곤충들이 보기 어렵거든. 그러니 자신들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크고 화려한 혀꽃을 만들어 곤충들 눈에 잘 띄게 진화할 수밖에. 쉽게 말하면, 혀꽃은 곤충을 속이기 위해 만든 꽃이야. 물론 속는 게 곤충만은 아니지. 사람들도 속아. 대다수 사람들은 혀꽃만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연달아 감탄을 해. 진짜 꽃이 따로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

가을이면 산과 들에서 쉽게 만나는 들국화의 혀꽃을 보면서, 자본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서 계속 만들어내는 허상들을 생각할 때가 많네. 그 헛것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겉모습을 가진 것들이야. 하지만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곧 실망하게 돼. 얼마 전에 말했던 치모랍언(梔貌蠟言)이라는 사자성어는 잊지 않았지? 치자로 물 드리고 밀랍 칠을 해서 겉만 번지르르한 채찍을 샀던 졸부 이야기 말일세. 지금 이 나라에는 그럴듯하게 꾸며 국민들을 속이고 표를 얻었던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대중은 화려한 혀꽃에 속는 곤충처럼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곧 잊고 말지. 그래서 다음에 또 속고, 또 후회하고.

요즘 시중에 회자되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사자성어 들어봤지? 고기장수가 정육점 앞에는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일세. 겉과 속이 다른 경우를 일컬을 때 사용하지. 그런 양두구육이란 말을 집권당의 전 대표가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네. “돌이켜보면 양의 머리를 흔들면서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팔았고, 가장 잘 팔았던 사람은 바로 저였다.”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가장 열심히 국민을 속였던 사람이 자신이었다고 고백이니 놀랄 수밖에. 그 속임에 동참한 댓가가 다음과 같은 문자였다니… “우리 당도 잘 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아직도 속임과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판이라니 씁쓸하지 않는가.

오스트리아의 시인 에리히 프리히드(1921-1988)의 <수도에서> 라는 짧은 시일세.

“누가 여기를 다스리나요?”/ 나는 물었네/ 사람들은 대답했네./ “당연히 국민이 다스리지요.”// 나는 말했네./ “당연히 국민이 다스리지요./ 하지만 누가/ 진짜 이곳을 다스리나요?”

정말 우리나라는 누가 다스릴까? 민주주의 국가니까 국민이 주인이라고? 정말 그럴까? 혹시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그들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네.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은 겉만 번지르르한 혀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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