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배우 양조위가 지난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오픈 토크 및 핸드프린팅 행사를 통해 관객과 만났다. /뉴시스
홍콩 배우 양조위가 지난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오픈토크 및 핸드프린팅 행사를 통해 관객과 만났다. /뉴시스

시사위크|부산=이영실 기자  “배우 인생 40년,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

지난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좌석은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만원이었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시민들은 객석 양 옆과 뒤를 빼곡히 채우며 ‘그’의 등장을 기다렸다. 바로 영원한 스타, 홍콩배우 양조위를 보기 위해서였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올해의아시아영화인상(The Asian Filmmaker of the year) 수상자 양조위는 이날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오픈토크 및 핸드프린팅 행사를 통해 관객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양조위를 기다렸던 관객들은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환호와 박수로 환영했다. 양조위도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는 “한국에 오고 싶었는데 핑계가 없어서 못 왔다”며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고 인사드릴 수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인사했다. 지난 연기 인생을 돌아보며 “행복했다”는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질문에 답하고 있는 양조위. /이영실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는 양조위. /이영실 기자

-오랜만에 부산을 찾아 팬들을 만났다. 기분이 어떤가. 
“한국에 오고 싶었는데 핑계가 없었다. 이렇게 한국에 와서 직접 얼굴을 뵙고 인사드릴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다음에는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끌지 않겠다. 좋은 작품을 갖고 다시 한국에 오겠다.”

-젊은 팬층이 늘어났다. 이에 대한 생각은. 
“배우라면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응원과 사랑받는 게 꿈일 텐데 꿈을 이룰 수 있게 돼 기쁘다.”

-양조위 하면 다양한 감정 연기와 깊이 있는 눈빛 연기가 먼저 떠오른다.
“동작만 한다면 그 장면이 단조로워 보일 수 있을 거다. 오히려 캐릭터 감정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경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매력에 빠지는 신이 있다. 감정도 동작에 스며들어 표현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눈은 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숨길 수 있지만, 눈빛은 그럴 수 없다. 나는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언어로도 그렇다.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연기할 때 눈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려고 한다. 눈을 통해 한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지 않나. 마주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아침에 샤워 후 거울을 보고 드는 생각이 궁금하다. 본인의 눈빛을 어떻게 느끼나.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거울을 보면 ‘아, 더럽다’ 이런 생각을 한다. 머리도 지저분하고 눈도 덜 떠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웃음)” 

-배우라면 본인이 쓰지 않은 수많은 대사들을 직접 연기해야 한다. 밖으로 말하기 민망할 수 있는 대사도 많다. 입에 잘 맞지 않거나 동의가 되지 않은 대사들이 주어지면 어떤 태도를 취하나. 
“대사가 나와 맞지 않아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다. 오그라든다 싶으면 최대한 내 것으로 만들어 덜 오그라들게 만들어 연기했던 것 같다. 아니면 수줍은 표현으로 바꿔 말하거나, 작은 소리로 말하거나 했다. ‘중경삼림’을 예로 들면, 영화 속 캐릭터와 나의 어린 시절이 비슷한 면이 있다. 밝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친구도 많은 편이 아니라 수업 끝나고 집에 가면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고 혼잣말을 많이 했다. 그래서 거울과 수건을 보며 말하는 일이 내게 어색한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팬들 앞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양조위(왼쪽). /뉴시스 ​
수많은 팬들 앞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양조위(왼쪽). /뉴시스 ​

-특정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면 가끔 내가 누구인지 혼돈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감정적으로 깊숙하게 그 인물을 살아내는데, 수많은 캐릭터 중 상대적으로 가장 깊숙하게 들어가 실제 나는 누구인지 헷갈렸던 인물이 있다면. 
“거의 캐릭터마다 다 헷갈렸다. 왜냐하면 새로운 역할을 준비할 때 되게 많은 변화를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습관도 들여야 하고 캐릭터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상상하며 준비해야 한다. 촬영 시간과 준비 시간이 길면 길수록 빠져나오기 힘들고,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반면 촬영 시간이 짧으면 비교적 빠져나오기 쉬웠다.

비록 작가가 쓰는 대본이지만 배우가 연기하는 것,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험들은 실제이기 때문에 빠져나오는 게 힘들 수밖에 없다. 촬영이 끝날 때마다 꿈에서 깨는 기분이 든다. 최근 몇 년 간은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촬영이 끝나고 역할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 질문하지 않고 원래 살던 삶을 그대로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빠져나오게 되더라. 그런데 어쩌면 사실 그 캐릭터의 일부 성격이 이미 내 몸에 배어있을 수 있다. 크게 상관없을 거 같다. 그것도 내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동성서취’ ‘중경삼림’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2046’ ‘일대종사’까지 왕가위 감독과 무려 7편을 작업했다. 왕가위 감독과의 작업은 고난의 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그를 참아냈나.
“또 다른 창작 방법인 것 같다. 이전에 다른 감독님과 일했을 때는 단 한 번도 그런 방식의 창작을 경험해 본 적 없다. 대본도 거의 없는 상황이고, 캐릭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언제까지 촬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게 어떻게 보면 재밌는 방식이었다. 일상도 그렇지 않나. 어디서 무슨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처럼 현장에서 매일 대본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듯 그날 받은 대본을 제대로 살아봤다. 

왕가위 감독은 욕심이 많은 편인 것 같다. 같은 신을 여름에 3일 찍고 가을에도 3일 찍는다. 가끔씩은 조금 힘들었다.(웃음) 했다. 아마 감독도 그 신을 여름으로 설정해야 할지, 가을로 해야 할지 결정 못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대체로 재밌었다. 연기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3개월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행복하기 때문이다. 

핸드 프린팅 행사에 참석한 양조위(왼쪽)과 허문영 집행위원장. /이영실 기자
핸드 프린팅 행사에 참석한 양조위(왼쪽)과 허문영 집행위원장. /이영실 기자

-그동안 함께 했던 수많은 좋은 배우들 중 각별히 한국 관객이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 장만옥, 탕웨이 등이다. 같이 연기했던 경험에 관해 간단히 언급해 달라.
“지금까지 같이 일했던 모든 배우가 다 편했다. 배우들은 개인마다 다르고 다른 장점을 갖고 있기에 다 편하게 일했다. 개인적으로 촬영 전에는 호흡을 같이 맞춰야 할 배우들과 친구가 되는 걸 습관처럼 했다. 친구가 먼저 되어야 나중에 호흡하면서 소통하기 편하고 대사 맞출 때도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만옥, 탕웨이도 모두 프로다. 특히 장만옥은 방송사 시절부터 같이 호흡을 맞췄던 배우라 조금 더 색달랐다. 처음 호흡을 맞췄을 때는 둘 다 신인이고 경험이 많이 없었는데, 이후 많은 경험을 쌓은 배우가 돼 다시 호흡을 맞춰서 그런지 조금 더 색달랐다. 그리고 탕웨이는 촬영 들어가기 3개월 전부터 일부러 시간을 많이 보냈다. 마작이나 춤을 같이 배우기도 하고 같이 박물관에서 그림도 봤다. 덕분에 역할을 소화하기 더 쉬웠다.”

-인생에서 영화와 연기를 떠나서 중요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 세 가지를 꼽자면.
“첫 번째는 가족과 친구, 두 번째는 공간, 세 번째는 운동이다. 나는 스키 타는 걸 좋아하고, 거의 모든 수상 스포츠를 좋아한다. 수상 스포츠라는 게 수면 위에서만 하는 걸 좋아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건 무서워하는 편이다.”
 
-스크린 기준으로 올해가 데뷔 40주년이다. 지금까지도 꼿꼿이 서 있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는 생각도 든다. 본인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면 무엇을 느끼나.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지난 40년 동안 각국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보내기도 하고, 많은 훌륭한 사람과 일하기도 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정말 행복하게 살아왔다.”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부디 건강하시고, 꼭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방문하겠다. 건강하고 다음에 보자.(웃음)”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