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로 돌아온 전여빈. /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로 돌아온 전여빈.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전여빈을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 영화 ‘해치지않아’ 개봉 인터뷰에서였다. 영화 ‘죄 많은 소녀’(2018)로 단숨에 ‘괴물 신인’이라는 수식어를 꿰찬 그의 스크린 밖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을 안고 갔던 그곳에서 솔직하고 소탈하고 사랑스러운 ‘사람’ 전여빈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만남은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 공개 기념 인터뷰였다. 당시 코로나19 여파로 화상 연결을 통해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전여빈은 드라마 ‘빈센조’ 막바지 촬영 일정 탓에 세트장 한편에 마련된 장소에서 온라인으로 기자들과 만났다. 

밤을 새우고 인터뷰에 참석했다는 전여빈은 많이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마디도 허투루 내뱉지 않았다. 기자의 질문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신중한 대답을 내놨다. 그의 성실함을 또 한 번 확인한 순간이었고, 안타까움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로 돌아온 전여빈을 다시 만났다.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밝은 미소로 기자들을 반긴 그는 손수 간식까지 챙기며 자신을 만나러 온 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했다. 말은 또 왜 이렇게 잘하는지. 어떤 질문을 던져도 ‘현답’을 내놓으면서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고, “살아있는 우리 모두 대견하다”는 말로 위로까지 전했다. 성공률 100%. 전여빈의 인터뷰에 실패란 없다. 

전여빈은 이날 <시사위크>와 만나 ‘글리치’를 택한 이유부터 촬영 과정, 노덕 감독과 나나와의 호흡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넷플릭스 ‘글리치’는 외계인이 보이는 지효(전여빈 분)와 외계인을 추적해온 보라(나나 분)가 흔적 없이 사라진 지효 남자친구의 행방을 쫓으며 ‘미확인’ 미스터리의 실체에 다가서게 되는 4차원 그 이상의 추적극이다. 전여빈은 가끔 외계인을 보지만 안 보이는 척 평범하게 살아가는 홍지효 역을 맡아 독보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인터뷰 승률 100% 전여빈. /넷플릭스
인터뷰 성공률 100% 전여빈. /넷플릭스

-독특하고 신선한 작품이었다. 시나리오의 첫 느낌은 어땠나.  
“시리즈라 처음부터 10부까지 다 받을 수는 없었다. 4부까지 봤는데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더라. 방대하게 펼쳐진 이 모험이 어떻게 나아가고 귀결될지 궁금증이 크게 있었다. 그 궁금증을 향해 뛰쳐나가보고 싶더라. 약속되지 않은 결말을 향한 모험을 해보고 싶었다. 또 ‘연애의 온도’때부터 노덕 감독님의 팬이었고, 진한새 작가의 ‘인간수업’을 충격적으로 잘 봤던 시청자 입장이라 대본을 받기 전부터 마음이 아주 많이 열린 상태이기도 했다.(웃음)” 

-진한새 작가가 홍지효 역에 전여빈을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다고 하더라. 이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나.  
“제 입으로 물어보기가 그래서 질문을 해본 적이 없는데, 부산국제영화제 GV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멜로의 체질’ 속 상사에게 훈계를 듣는데 눈을 번뜩이면서 쳐다보는 한 장면, 그 한 장면에 꽂혀서 홍지효는 전여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정말 감사했다.”

-지효는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면서 중심에 두고 가져가려고 했던 이미지나 키워드가 있다면. 
“극 중 지효가 시국에게 ‘내가 미친x이라도 데리고 살 수 있어?’라고 하는 대사가 있다. 지효는 자신을 ‘미친x’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지효를 미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외계인 하나씩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부분, 외계인이 누군가의 마음 안에 있다고. 지효는 억압된 기억을 갖고 있고, 그 기억을 잊고 가장 평범한 얼굴로 살고 싶어 하다가 더 이상 ‘평범’을 위장할 수 없어 진실에 다가서려 뛰쳐나가는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대신 관계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다 모험의 시간을 통하면서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듣고 바라볼 수 있고 손을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 사람으로 바라봤다.”

-지효의 의상이나 말투 등 디테일한 설정도 눈길을 끌었다.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우선 덜 성장한 것 같은, ‘어른이’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적으로 어른이긴 하지만 완전한 어른이 아닌, 그 안에 아주 작은 아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지효가 ‘너드미’가 있기 때문에 의상부터 헤어, 메이크업이 그것에 맞게 다 설정됐다. 완전히 민낯은 아니었고, 민낯처럼 보이는 메이크업을 했다.”

‘글리치’로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전여빈. /넷플릭스
‘글리치’로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전여빈. /넷플릭스

-지효가 형사 김병조와 대화를 하다 눈물이 흐르는데, ‘뭐야, 이거 뭐야’라고 반응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지효 캐릭터 그 자체를 보여주는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요구한 부분인가.
“대본에 그대로 나와 있었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떨어진다. 눈물을 닦으면서 뭐야, 이거’라고. 나도 그 장면에서 지효라는 캐릭터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 사실 5부까지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에 대해 말을 못하는 친구다. 자기 안에 있는 무수한 생각들을 그동안 눌러온 습관 때문에, 평범하게 살아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혼란스러움이 눈물로 떨어졌을 때 그 눈물조차 컨트롤되지 않고 낯설게 느껴지는 거다. 그러한 감정을 표현한 게 옛날 일이거나 혹은 없었던 일이니까. 그래서 후반부에 지효가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데, 그것이 지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포효이고 용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감정을 토해내고 쏟아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지효와 마지막 지효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 돼버린다.” 

-감정의 진폭이 점점 커져가는 지효를 표현해야 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지효는 극 중 제일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나 역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시리즈를 찍으면서 대본을 받게 되니, 지효가 사건을 겪으면서 반경이 넓어질수록 배우로서 표현의 파이도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챕터마다 내가 도전해야 하는 과제가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배우로서 표현의 범위를 넓혀가는 게 행복한 경험이었다.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따라갔던 것 같다. 물론 어떤 장면에서는 ‘현타’라고 해야 할까, 그런 순간도 있었고, 스스로도 무섭고 두려운 순간도 있었다. 특히 무섭고 두려웠던 장면 촬영에서는 노덕 감독님이 내가 그것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게 모니터 밖에서도 전해졌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정말 추운 날이었는데, 추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심장이 뜨거운 기분이 들었다.” 

전여빈이 솔직하고 소탈한 매력을 선보였다. /넷플릭스
전여빈이 솔직하고 소탈한 매력을 선보였다. /넷플릭스

-가장 도전적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은 무엇인가. 
“지효 자체였다. 배우이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지효의 환경이나 상황 자체가 엄청 큰 설정이잖나. 그것을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믿어주려고 한 게 도전이었다. 지효는 자신의 상태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균열하지 않은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가 정제되지 않고 툭툭 발화되는 순간들을 세련되지 않게 표현하는 것, 지효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큰 과제였다. 다 큰 어른처럼 보이는 지효 안에 생생히 살아있는 어린아이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렵진 않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다고 느꼈다. 우선 노덕 감독님과 보라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다 믿고 갈 수 있었다. 의심 없이 믿고 달릴 수 있었다.”

-앞서 누구나 마음속에 외계인이 하나씩 있다고 표현했다. 전여빈의 외계인은 무엇인가. 
“안 그래도 어제인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읊조렸다.(웃음) 명확히 알진 못한다. 아주 많은 생각들이 있다. 다만 이 생각, 외계인과 함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나는 ‘글리치’가 좋다. 외계인이 있어도 괜찮아, 조금 이상해 보여도 못나 보여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는 것 같다. 남들이 봤을 때는 너의 모험이 대단하지 않게 보일지라도 스스로 변했고 엄청난 일을 해낸 거니 모든 과정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야기였다.” 

-그 여정을 통해 지효는 성장한다. 배우 전여빈은 ‘글리치’를 통해 어떤 성장을 했다고 느끼나.   
“작품을 할 때마다 느끼고 배우는 점이 정말 많다. 느끼고 배운 점들을 일기에 간략하게 쓰기도 하는데, 나중에 다시 보면 했던 말을 또 하는 경우가 있더라. 느꼈던 것들이 똑같은데 그 당시 다르게 와닿는 거다. 나는 그냥 그 시간을 아주 충실하게 잘 살아냈다. 주변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고 함께 달렸던 시절이 소중하게 남아있어서 그 자체만으로 변한 것 같다.” 

-보라를 연기한 나나와의 호흡은 어땠나.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배우가 만나 완벽한 합을 보여줬는데.   
“저희 둘을 좋아해 주는 팬들이 ‘아랍두부가 진리다’라고 하더라. 나는 두부상이고 나나는 서구적으로 생겨서 아랍, 더할 나위 없는 ‘아랍두부상’이라고 하더라.(웃음) 아주 좋은 케미라고 평가해준 것 같다. 외적인 케미도 아주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이였다. 연기적으로도 그렇고, 동료로서도 그렇다. 내가 너무 지쳐 있을 때는 그 친구가 나를 북돋아주고, 그 친구가 지쳐 있을 때는 내가 그 친구를 조금 더 이끌어보기도 하고 서로의 흐름이 정말 잘 맞았다. 서로를 향해 엄청 애를 쓰지 않아도 유기적으로 잘 맞는 사이였고 서로를 믿어줬다. 처음 대본을 보고 보라 역할을 하는 배우는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나라는 말을 듣고 비주얼부터 그려지는 거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보라로 와줬고 연기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나라는 친구가 허보라로서 ‘글리치’의 꽃을 확 펼쳐줬다고 생각한다. 정말 고맙다. 연기는 주고받는 호흡이라, 서로서로 영향을 계속 받게 된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말 행운이었다.”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 전여빈. /넷플릭스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 전여빈. /넷플릭스

-노덕 감독은 어땠나. 
“감독과 배우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는 순간을 느낄 때가 있다는데, 나는 그걸 지금 느끼는 것 같다고 노덕 감독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감독님도 촬영이 다 끝난 다음에 내가 그 말을 한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하시더라. 감독님이 표현도 적고 말도 많지 않으시다. 그런데 나나와 나를 포함한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그 안에서 잘 놀 수 있도록 저희를 안아주고 우리 시리즈를 책임지고 이끌어가려고 했던 그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제작발표회 때도 한 말이지만, 노덕 감독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훨훨 날고 온 기분이다. 멋진 여행을 다녀와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크다. 감독님과 또 다른 작품에서 만나고 싶다. 진한새 작가님과도 다른 작품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류경수 배우와도 좋은 배우가 되기로 약속했고, 나나와도 다시 만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약속을 참 많이 했다. 하하.” 

-이번 작품뿐 아니라, ‘빈센조’ 송중기, ‘낙원의 밤’ 엄태구, ‘멜로가 체질’ 천우희‧손석구 등 만나는 배우마다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비결이 있다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모 선배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작품을 하면서 상대배우들에게 느낀 어떤 순간들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다. ‘죄 많은 소녀’는 이랬고 ‘멜로가 체질’은 저랬고 ‘빈센조’ ‘낙원의 밤’ ‘글리치’는 이랬다면서 신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선배가 ‘너는 복이 많았구나’고 하시더라. 그런 기분을 늘 느낄 수 없는데, 호흡이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그러면서 그것은 멋진 우연, 행운의 순간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그렇지 못한 순간이 올 수 있으니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 염두에 두면 좋을 거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최근 정말 쉼 없이 달려오고 있다. ‘행운’이라고 말했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있었기에 찾아온 결실이 아닐까 싶다. 다만 지치고 소진된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 같다. 있다면 어떻게 채워나가나. 
“스무 살 초반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어떤 것을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많은 고민 끝에 영화,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연기를 배우는 순간 해방감과 행복을 느꼈다. 직업으로 이 일을 해보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배우가 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처럼 되지 않고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면서 갈급했던 것 같다. 배우가 되고 싶고 연기가 하고 싶고 이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었던 그때 그 갈급함이 지금의 나를 지켜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나의 초심을 떠올려보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잘 변하기를 원하고 잘 성숙해져가고 싶다. 

물론 나도 지치고 에너지가 고갈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마음을 잡아보려고 한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은 이 순간이니까, 이 순간에 충실한 것은 뭘까 고민한다. 그것은 연기를 좋아한다,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라는 사람, 전여빈이라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단 한 번뿐인 순간을 잘 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살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노력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다. 감사함이 크다. 모두가 노력하고 있으니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다 노력하는 거잖나.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모두 대견하다. 너무 대견한 일이잖나. 다만 내가 감사한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는 일일 수 있다. ‘글리치’ 같은 이런 일이 와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어 조금 더 감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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