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로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난 방우리 감독.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로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난 방우리 감독.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는 어느 겨울 도착한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1999년의 기억, 17세 소녀 보라(김유정 분)가 절친 연두(노윤서 분)의 첫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사랑의 큐피트를 자처하며 벌어지는 첫사랑 관찰 로맨스다.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단편영화상을 휩쓸며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아온 방우리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프리미어’ 섹션에 공식 초청돼 호평을 얻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25일 넷플릭스 오늘의 한국 TOP 10 영화 1위에 올라 있는 ‘20세기 소녀’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 기준 넷플릭스 영화 글로벌 순위 5위 기록도 세웠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했던 20세기 말 감성과 친구의 짝사랑을 관찰하다 첫사랑에 빠져버린 소녀의 풋풋하고 가슴 설레는 이야기를 그린 ‘20세기 소녀’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여주며 보다 폭넓은 공감과 설렘을 선사, 시청자를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20세기 소녀’. /넷플릭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20세기 소녀’. /넷플릭스

지난 25일 연출을 맡은 방우리 감독과 만나 ‘20세기 소녀’에 관한 다양한 궁금증을 물어봤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첫 장편 데뷔작으로 1999년도 배경의 청춘 로맨스를 택했다. 이야기를 떠올린 계기가 궁금하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썼던 교환 일기장에서 시작됐다. 영화를 만들 때 주변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 속에 특별한 순간, 영화 같은 순간에 흥미를 느낀다. 교환 일기장에서 소재를 가져오면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너무 재밌어하는 거다. 비단 친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재밌게 첫사랑 이야기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또 재밌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감독의 학창시절 추억이 많이 녹아 있을 것 같다. 특히 ‘조또’나 ‘마님’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었을 것 같은데.  
“맞다. 특이한 별명을 다 모아서 최종적으로 남은 두 친구다. 학교 다닐 때는 친했는데 연락하면서 살지는 않았다. 제일 친한 친구들 말고는 반 친구와 다 연락하진 않잖나. 그러다 시나리오를 쓰고 그 별명을 쓰면서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친구들도  이야기를 전해 들었나 보더라. 너무 재밌어하고 좋아했다고 하더라. ‘스페셜 땡스 투(special thanks to/고마운 사람들)’에 그 친구들의 이름을 쓰기도 했다.” 

-교환 일기장을 다시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어떤 내용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나. 
“유치함이 좋았다. 그때 당시 고민을 써놨더라. 그땐 어른인 줄 알았다. 다 컸고 생각도 깊고 세상을 생각하는 게 깊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너무 유치찬란하더라. 유치함을 발견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유치하겠지만 그 당시엔 전부잖나. 그런 대사들을 많이 녹여내려고 했다. 또 남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더라. 내가 보라처럼 친구를 위해 관찰을 했다. 흑역사다. 잊고 싶었는데 영화를 하게 되니 만천하에 공개가 됐다.(웃음) 나는 아름답게 끝나지 않았지만, 모티프를 가져왔다. 제작사 대표님이 첫사랑에 성공한 사람이 쓴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하더라. 짝사랑 ‘만렙’이 쓴 작품이다. 하하.”

10대 소녀들의 우정과 사랑을 잘 담아낸 ‘20세기 소녀’. /넷플릭스
10대 소녀들의 우정과 사랑을 잘 담아낸 ‘20세기 소녀’. /넷플릭스

-보라와 연두, 운호와 현진까지. 캐릭터 구상 과정도 궁금하다.  
“보라는 친구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다. 연두는 보호받는 설정을 갖고 왔다. 연두는 심장이 아프기 때문에 보라가 옆에서 케어해 주고, 대신 연두의 세심한 소녀미가 보라를 또 감싸주는 관계로 생각했다. 보라색과 연두색이 보색 관계로 완전히 다르지만 하나로 이어진 캐릭터성을 갖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그리게 됐다. 현진이는 통통 튀고 운호는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안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바뀌는 지점에서 더 극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변우석이) 워낙 비주얼이 훌륭해서 숨길 수는 없었지만, 표정을 읽을 수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캐릭터성을 갖고 캐릭터를 구성했다.”

-보라와 연두를 보색 관계로 설명했는데, 이름도 그런 의도를 담았나. 
“사실 보라는 색깔을 이용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관찰하는 영화이다 보니 ‘본다’는 시선의 의미로 따왔다. 하다 보니 보라색도 연결돼 있어서, 친구의 이름을 지을 때 보색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연두로 하게 됐다. 보라와 연두가 이름으로 친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나름의 생각이 담겼다.”

-시대 설정을 1999년도로 한 이유는.  
“내가 딱 그 나이였다. 교환 일기에서 시작하다 보니 타임라인을 그대로 가져가긴 했지만, 세기말이 주는 매력이 있잖나. 현재와 과거, 세기가 나눠지는 것도 있지만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세기말 전 요동치던 분위기다. 모든 게 혼재돼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삐삐와 휴대폰, PC통신과 인터넷도 그렇고 다 섞여서 과도기였는데, 그게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와 맞닿아 있어서 표현하기 재밌을 것 같았다.”

-청주가 배경인 점도 매력적이었다.    
“내 고향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낯간지러운 일이라 고민이 많았다. 처음에 소도시라고 했는데 제작사 대표님도 청주 출신이라 청주로 해보면 어떨까 제안을 하셨다. 굳이 피할 거 있나 싶었고 오히려 디테일함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주의 매력을 살리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앙공원이나 우암산 길이나 청주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중요한 메카들이라 그런 장소에서 촬영을 많이 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너무 많이 바뀌어서 내가 원래 생각했던 공간들이 다 없어졌더라. 다른 도시에서 비슷한 부분을 찾아서 찍은 것도 있지만 최대한 유명한 장소들에서 찍으려고 했다.” 

보라 그 자체로 분한 김유정. /넷플릭스
보라 그 자체로 분한 김유정. /넷플릭스

-보라 역에 김유정이어야 했던 이유는.  
“친구와 교환 일기장을 나눠 보는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근감이 중요했다. 김유정은 국민 아역이잖나.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이 배우가 성장해가는 것도 다 봤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큰 친밀감을 갖고 친구의 첫사랑을 보듯 응원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너무 예쁘잖나. 유정 배우가 유일무이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액션도 잘 하고 그래서 태권도 장면을 살짝 넣기도 했다. 은연중에 그런 것들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처음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 함께 하게 된 것은 엄청난 영광이었다. 김유정의 학창 시절을 담았다는 것, 그거면 됐다. 또래 친구들과 하다 보니 실제로도 학교에 온 것처럼 잘 어울려서 노는 걸 보면서 뿌듯하기도 했다. 청춘이구나 싶더라.(웃음)”

-첫사랑의 아이콘 하면 보통 여성캐릭터, 여배우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소녀’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남성향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이제훈이 수지를 추억하고 권상우가 한가인을 추억하는. 아무래도 남성감독들이 활동을 많이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나는 여성이라 그게 아쉽더라. 한국에는 여성향 영화가 많이 없었고, 대만이나 일본 작품을 봤는데 재밌긴 하지만 우리 정서와는 또 맞지 않잖나. 너무 아쉽고, 여성향 첫사랑 영화를 내가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우리 영화는 보라가 바라보는 첫사랑 운호의 모습을 담지만, 운호의 시선에서 다시 보라를 보는 시선도 담겼다. 운호의 짝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양쪽을 다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균형을 잘 맞춰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했다.”

새로운 첫사랑의 아이콘을 예감하게 하는 변우석. /넷플릭스
새로운 첫사랑의 아이콘을 예감하게 하는 변우석. /넷플릭스

-그런 풍운호 역에 변우석을 택했다. 
“운호는 우리의 새로운 첫사랑 모델이기도 해서 너무 많이 노출된 것보다 신선한 이미지이길 바랐다. 동시에 보라의 첫사랑이기 때문에 비주얼적으로도 매력적인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춘기록’에서 변우석을 처음 봤는데 키도 크고 매력 있더라. 비주얼이 주는 임팩트가 굉장히 컸던 것 같다. 최대한 더 예쁘게 찍으려고 노력했다.(웃음)”

-많은 야한 비디오 중에 왜 ‘정사’였나.   
“당시 이정재 배우가 청춘스타로 큰 사랑을 받을 때다. 나와 친구들도 엄청 좋아했다. 그런데 빨간 비디오가 나온 거다. 작품성 있고 좋은 영화였는데, 빨간 딱지가 붙었다는 이유로 금기되다 보니 더 보고 싶은 거다. 노안인 친구가 몰래 빌려서 같이 봤던 기억이 있다.(웃음) 그런 추억도 있었고 제목이 주는 분위기와 그 시절의 추억을 담은 비디오 같아서 ‘정사’를 택하게 됐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정사’였는데, 촬영하면서 ‘오징어 게임’이 터졌다. 재밌는 포인트가 된 것 같다.”

-첫사랑 영화하면 흔히 떠오르는 클리셰를 피하기 위해 고민한 것도 있나.  
“우리 입맛에 맞는 첫사랑 영화를 만들다고 했을 때 엄청 새로운 것보다 정면승부를 하자는 생각이 컸다. 다만 잘 만들자. 가장 중요한 것은 노스탤지어를 살리는 거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새로운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추억을 나눴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새로운 것보다 장르가 가진 강점을 살려서 가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만 보라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듣는 듯 하지만 운호의 이야기라는 점이 다른 작품들과 차별점이지 않을까 싶다. 하나의 시선만 보이지만 결국엔 운호의 시선도 보이는 점이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자두도 의미가 있나.  
“자전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시나리오를 한창 쓰다가 머리를 식히러 고향에 내려갔다. 고향집에 오래된 자두나무가 있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자두가 열린다. 옆에 벚꽃 나무가 있는데, 벚꽃보다 자두가 더 좋은 거 아니냐고 한 적이 있다. 꽃도 피고 열매도 맺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더라. 그게 꼭 운호 같았다. 또 자두나무에 꽃이 핀다는 사실을 잘 모르잖나. 보라가 운호를 통해 이를 알게 되면서 자두나무에 꽃이 피면 봄이 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둘만의 특별한 상징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두꽃의 꽃말도 순백, 순수다. 딱이었다. 보라와 운호, 둘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보라의 성인 시절을 연기한 한효주. /넷플릭스
보라의 성인 시절을 연기한 한효주. /넷플릭스

-성인이 된 보라를 한효주가 연기했다. 김유정과 아역과 성인으로 만난 것은 ‘일지매’ ‘동이’에 이어 세 번째다. 그래서인지 이질감이 전혀 없더라.
“그래서 한효주 배우가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호는 그대로, 보라는 변했으면 좋겠는데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길 바랐고 그 보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유일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옛날 보라와 지금 보라는 다른 사람 같지만 같은 보라잖나. 일기장을 보면서 예전 내 모습이 지금의 나와 다른 것 같았다. 물론 남아있겠지만, 그때 나와 지금 내가 마주치면 같은 사람으로 인식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라는 변했지만 그 시절의 잔상이 남아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성인으로 바뀌어야 했고, 한효주 배우가 잘 소화해 줬다.”

-결말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영화의 가장 좋은 엔딩이 뭘까, 나이가 들어서 재회하는 게 해피엔딩인가 고민이 됐다. 또 첫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은유를 넣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사람과 이별을 한다는 것은 소식을 들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거잖나. 내 인생에서 죽었다고 생각이 드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별이 슬프고 아프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이별하지 못하고 미숙하게 첫사랑을 떠나보내지만 영화에서만큼은 다시 만나서 제대로 된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게 나이가 든 운호가 의미가 있을까 싶었고, 그 시절을 지내고 나이가 들었지만 소년만큼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서 마지막 재회를 해주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도 크시겠지만 청춘에 대한 아련함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연출자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구체적인 것은 없지만 결은 비슷할 것 같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순간을 찾아서 이야기를 펼치는. 영화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삶이 팍팍하잖나. 현실을 그리는 것도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보고 나서 기분 좋게 극장을 떠날 수 있게 하는 거다. 누군가는 너무 따뜻한 이야기만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풀어나가지 않을까 싶다.”  

 

근거자료 및 출처 

 

- 넷플릭스 영화 순위 / 플릭스패트롤(FlixPatrol), 2022. 10. 25

https://flixpatrol.com/top10/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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