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대표이사 발행인.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과 국정원개혁특위 설치 문제로 국정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당은 ‘양특’에 대해 전혀 양보할 기미가 없고, 그렇다고 새누리당도 이를 수용할 의사가 없다.

여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국회에서 합의되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말해 정국을 더 혼돈 속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안개 속 정국이 계속 이어지자 여야 수뇌부에선 조심스럽게 ‘영수회담’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꼬인 정국을 한 방에 풀 방안은 ‘영수회담’ 뿐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한 것이다.

사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혼돈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결국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 부족해서 빚어진 결과다. 소위 ‘3김시대’로 알려진 과거 우리나라 정치에도 이런 혼돈의 시대는 여전했다. 전혀 풀릴 것 같지 않던 혼미한 정국도 결국 물밑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이끌어내 아슬아슬하게 파국을 면한 경우가 많았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인이 한국 정치를 이끌던 시절, 한국 정치는 굴곡 많은 역사를 연일 기록하기에 바빴다. 하루 지나면 또 다른 큰 사건이 터져 정국은 살얼음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이 혼돈의 시대가 무사히 지날 수 있었던 것은 ‘3김’의 물밑대화와 타협 때문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9년 3월17일,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국정원 직원들이 국회에서 의원들을 감찰해 정국을 뒤집은 소위 ‘국회 529호 사건’을 두고 영수회담을 가졌다. 이후에도 6차례에 걸쳐 이 총재를 청와대로 불러 ‘남북정상회담’ ‘의약분업’ ‘국회법 강행처리’ ‘언론사 세무조사’ 등과 관련해 회담을 열었다.

김대중·김영삼 정권 때는 정국현안이 발생할 경우 수시로 ‘영수회담’을 가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0차례, 김대중 전 대통령은 7차례 영수회담을 청와대에서 가졌다. 이 두 사람은 야당 대표와 단독회담을 가져 정치적 현안에 대해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영수회담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워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차례, 이명박 전 대통령도 3차례 청와대에서 영수회담을 가졌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15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김한길 민주당 대표를 국회로 불러 영수회담을 가졌다. 이날 의제를 놓고 이견이 엇갈려 ‘합의문’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의미있는 만남이란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한국 정치에서 ‘영수회담’의 의미는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영수회담의 횟수가 줄기 시작했고, 그만큼 여야 수뇌부가 모여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논의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와대는 여야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국정현안을 방치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당 뿐 아니라 야당에도 청와대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꽃인 ‘대화와 타협’이 봄에 꽃이 만개하듯 활짝 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