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한라(옛 한라건설)가 매분기 순손실을 이어가며 ‘실적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있는 탓이다. 한라의 회생을 위해 우량 계열사인 만도까지 동원,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3,400억원대의 자금지원을 했지만, 계속되는 적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되고 있다. 업계에선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또 다시 유동성 위기가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지난해 2,000억원의 적자를 내 자금난에 처했던 한라가 여전히 적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한라건설에서 ‘한라’로 사명을 변경하고 새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 한라, '적자의 늪'에서 허덕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라는 올해 연결기준 3분기 누적 매출액 1조5,301억원, 영업손실 100억원, 순손실 26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4,65% 증가했지만, 영업손실과 순손실은 이어지고 있다. 한라는 1분기 160억원의 적자를 냈고, 2분기에도 76억원의 영업 손실을 낸 바 있다. 

그렇다면 한라가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우선 침체된 경기에 건설부문 실적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탓이 크다. 별도 기준 매출액은 1조1,016억원으로 전년 대비 오히려 줄었고, 영업손실과 순손실은 각각 319억과 575억원으로 연결 기준보다 적자 폭이 컸다.

또한 수주경쟁 심화로 저가 수주를 하다 보니, 원가율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실적 개선에 발목을 잡고 있다. 한라의 매출원가율은 지난해 3분기 누적기준 93.98%에서 올해 94.88%로 늘었다.

여기에 한라는 관급공사 입찰 자격까지 6개월간 정지되는 악재를 만났다. 지난 8월 한라는 국가계약법 위반으로 관급공사 입찰참가 자격이 6개월간 제한돼 2,947억원 규모의 관급기관 거래가 중단됐다고 공시했다. 거래중단 기간은 8월 28일부터 내년 2월 27일까지다. 거래중단 금액은 지난해 매출액의 14.97%에 해당한다.

한라의 전체 매출에서 관급 공사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 지난 상반기 국내 매출 가운데, 관급공사 비율은 약 54%에 이르렀다. 관급공사의 입찰 제한으로 매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금융비용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실적 개선을 더디게 하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발생한 금융비용은 714억원 가량. 지난해 3분기 누적 금융비용이 569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100억원 이상 늘어났다. 전년 대비 금융비용이 증가한 이유는 공사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차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건설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한라가 수익성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부실 계열사 지원
   밑 빠진 독 '물 붓기'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 4월 주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량 계열사 만도까지 동원, 자금지원에 앞장섰던 정 회장으로선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4월 만도는 자회사인 마이스터를 통해 한라의 3,435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만도는 한라의 자회사로 상호출자제한에 따라 직접 출자할 수 없었다. 이에 만도가 100% 자회사인 마이스터에 3,786억 현금 출자하고 마이스터가 한라건설에 다시 3,385억원을 출자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나머지 50억원은 정몽원 회장이 출자했다.

 

당시 만도의 계열사 지원은 주주들의 반발을 불렀다. 만도의 지분 1.77%를 보유한 트러스톤자산운용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다 동반 부실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며 만도의 유상증자 참여를 강하게 반대했고, 법원에 주금납입중지 가처분신청까지 냈다.

'부실계열사의 리스크'를 떠앉을 수 있다는 우려에 만도의 주가는 출렁였다. 정 회장 또한 경찰 수사를 받게 되는 등 곤혹스런 상황에 놓았다.

지난 5월 만도 노조는 “만도의 대주주 한라의 유상증자에 만도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회사 마이스터가 대규모 출자한 것은 불공정한 거래에 해당하는 ‘명백한 부당지원’”이라며 배임 혐의로 정 회장과 마이스터의 박윤수 대표를 경찰에 고소했다.

정 회장은 더 이상 한라에 대한 그룹 차원의 지원은 없을 거라고 주주들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정 회장의 ‘한라 살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한라아이앤씨의 보유 지분 (74만9,916주) 전량을 한라에게 무상증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한라가 적자 행진을 이어가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만 되고 상황이다. 적자가 계속된다면 유상증자로 확보한 현금도 얼마 안가 동이 날 공산이 크다.

한라는 그룹 지배구조에 최정점에 있는 회사다. 정 회장으로선 쉽게 놓을 수 없는 회사겠지만, 부실 계열사 지원에 나섰다 동반부실에 빠졌던 선례들이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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