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은행권에 ‘관치금융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당국이 금융사의 금리 산정, 인선 등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원활한 소통 없이 일방적인 메시지만 전달되면서 시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주요 은행 내에선 수신금리 인상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경쟁적으로 예·적금 인상에 나섰던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케이뱅크를 제외하고 11월 24일 기준금리 인상 결정 이후 예·적금 금리 인상을 발표한 주요 은행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예·적금 인상에 대해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시중 금리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기 마련이다. 이후 인상은커녕 수신 상품 금리가 소폭 하향한 사례도 나타났다. 은행권이 수신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못한 배경엔 당국의 ‘수신금리 경쟁 자제령’이 자리잡고 있었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잇따라 수신금리 경쟁 자제를 압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5일 ‘금융시장 현황 점검회의’ 자리에서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업권 간, 업권 내 과당 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열린 행사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예금금리의 급격한 움직임은 다시 대출금리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예금쏠림으로 시장 교란이 발생하면 결국 모두가 나빠지는 측면이 생긴다”며 압박에 가세했다. 

은행권에선 갑작스런 수신금리 인상 자제령에 당혹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국은 ‘대출이자 장사’ 비판을 하며 예대금리차를 줄이라는 압박을 가했다. 이에 은행권에선 예대금리차를 줄이기 위해 수신금리 인상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자금 쏠림 부작용과 조달비용 상승에 따른 대출금리 인상 우려 등을 이유로 수신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린 것이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당국의 메시지에 은행권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은행채 발행이 막히면서 자금 조달에 잘 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신금 확보까지 자제하라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일반 소비자들의 불만을 걱정했다. 이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상 후 대출금리는 올랐는데 수신금리가 그대로라면 소비자들이 이해를 할 지 모르겠다”며 “다만 은행 입장에선 당국의 메시지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의 금리 산정에 강하게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출금리 인하 압박의 경우, 국민의 가계 부채 부담을 고려해 공감되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나 수신금리 인상 자제령을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은행의 주요 자금조달 창구인 은행채 발행 자제를 압박한 데 이어 수신금 확보 자제까지 이어지자 당혹스런 눈치다.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권 인사에도 개입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 관치금융 논란을 사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4일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만나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언급했다. 주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인선이 예정된 가운데 이러한 발언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관치금융이란 정부가 재량적 정치 운용을 통해 민간 금융기관에 참여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인사와 자금 배분에 직접 개입하는 금융 형태를 뜻한다. 관치금융은 금융사들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시장 혁신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사왔다.

연말 인사 시즌을 앞두고 금융권은 ‘관치금융’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당국의 조심스런 행보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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