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어제 오랜만에 서울에도 눈이 펑펑 내렸네. 함박눈을 맞으며 동네 골목에서 노는 꼬마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내가 보이더군. 눈이 오는 날이면 동무들 손을 잡고 신작로와 골목과 들판을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소년. 한겨울에 추운지도 모르고 시골집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 위로 사뿐사뿐 내려앉는 눈들 바라보다가 그 눈들의 유혹적인 몸놀림에 이끌려 벌떡 일어서서 아리랑을 부르며 춤을 추던 소년. 아침 일찍 일어나 밤새 장독대에 소복하게 쌓인 눈으로 목을 축인 후, 약간 녹은 눈을 둥글게 뭉쳐 만든 눈사람을 마루에 앉혀 놓고 먼 하늘나라 소식을 듣고 묻던 소년. 참 순수한 영혼을 가진 소년이었는데…

우리 어렸을 때는 눈이 자주 내렸네. 그래도 너무 많이 온다고 요즘 도시인들처럼 불평하거나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어. 그땐 농촌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겨울을 만물이 쉬기로 약속한 휴식의 계절로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니까. 눈이 오면 어린이들이 가장 좋았네. 학원도, TV도, 휴대폰도 없었던 농촌에서 겨울마다 찾아오는 눈이 우리들의 다정한 놀이친구였거든. 칠순을 앞둔 백발노인이 아직도 눈이 오면 마음이 설레어 가만있지 못하는 건 눈이 어렸을 적 불알친구처럼 반갑기 때문이야.

혹시 아침이 왜 오는지 아는가. 얼마 전에 우연히 김자연의 <아침이 오는 이유>라는 동시를 읽고 깜짝 놀랐네. 나는 지금까지 지구의 자전운동 때문에 아침이 오는 줄로만 믿고 있었거든. “별들이/ 밤새// 깜박 깜박// 까만 밤을/ 다/ 먹어 버렸어.” 별들이 밤을 다 먹어 버려서 아침이 온다니… 재미있지 않는가. 동시는 어린이들만 읽는 시가 아닐세. 노인들도 젊은 마음으로 살고 싶으면 종종 동시를 읽고 느껴야 하네. 동시와 친해지는 게 세월이라는 괴물이 앗아 가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성과 상상력을 다시 회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거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뱃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 그림 이야기로 시작하네. 화자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모자라고만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실망해서 “어른들은 언제나 혼자서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항상 설명을 해 주어야 하니 아이들에게는 피곤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고 불평하지. 그러면 왜 어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버렸을까. 오랫동안 세상 풍파에 시달리면서 어렸을 적에 가졌던 순수한 마음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이야. 물론 가정, 학교, 매스미디어, 군대, 직장 등을 통한 사회화의 영향력도 크고.

지난번 편지에서 노년을 즐겁게 살고 싶으면 멀리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지. 그러면 멀리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눈이 오면 마냥 설레고 좋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 천지자연을 경이롭게 바라볼 줄 아는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육체는 늙어도 정신과 마음은 다시 어린애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뜻이야.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가 우리에게는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내 가슴은 뛰노니 My Heart Leaps Up>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한 말은 옳아.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언제나 가슴이 뛰는 ‘애 같은 노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일세.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늙어서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하길.”

노인이 되면 무디어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그럴수록 세월만 원망만하지 말고, 순수하고 호기심 많았던 어린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자연과 친해져야 하네. 중국 명나라 홍자성이 잠언집 『채근담』의 후집(後集) 7칙에서 말했던 것처럼 먼저 마음과 정신이 맑고 순수해야 자연의 경이로움도 즐길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게.

“새가 지저귀고 풀벌레가 우는 소리는/ 모두 자연이 마음을 전하는 비결이고/ 꽃이 지고 풀이 푸른 풍경은/ 어느 것이나 다 도를 드러내는 문장이다./ 배우는 사람은 심령이 해맑고 흉금이 영롱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사물을 접하든지 마음으로 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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