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열 회장 일가 소유한 E1, 김연아 선수 광고로 비난 여론 뭇매
실적 악화 불구 사상 최대 배당잔치, '원전비리 사재출연' 충당 목적 구설도...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꼬인다 꼬여.”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최근 처지가 딱 이렇다. 지난해 계열사의 원전비리 파문으로 인한 진통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번엔 자신이 지분을 소유한 회사(‘E1’)의 광고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아 선수를 모델로 등장시킨 해당 광고가 때 아닌 ‘억지 애국심 호소’ 논란을 일으키며 네티즌 사이에서 혹평을 받고 있는 것. 설상가상 E1이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의 현금배당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까지 올라 적잖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악재에 회사 내부에서는 “굿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웃지 못할 소리까지 나온다.

▲ 구자열 LS그룹 회장.
최근 LPG업체 ‘E1’의 광고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좋은 내용으로 인터넷을 달구면 반가울 일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 회사 측은 당혹스럽다.

김연아 선수를 모델로 등장시킨 이 광고는 김연아 선수가 빙판 위에서 연기하는 모습과 시상대 위에서 어깨에 태극기를 두른 장면 등을 담았다.

◇ 과욕이 부른 ‘광고 무리수’

지난달 27일 유튜브를 통해 먼저 공개했는데, 공교롭게도 ‘광고 카피’가 문제가 됐다.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해 ‘너는 4분8초 동안 숨죽인 대한민국이다’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다’ 등 직설적인 카피가 네티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사실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광고지만, 네티즌들은 “선수 개인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이를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응원이 아니라 최고의 부담을 주겠다는 것” “역대 최악의 광고” “김연아 선수에게 오직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한 광고” 등의 쓴소리를 쏟아냈다. 

결국 김연아 패러디 응원광고까지 등장했다. 김연아의 팬이 만든 이 패러디 광고는 ‘당신은 김연아입니다’ ‘당신은 피겨 약소국의 한 운동선수입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E1의 광고 영상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E1의 과욕이 화를 불렀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실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에 김연아 선수가 출연하는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기업은 몇 되지 않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의 상업적 이용을 막는다는 취지로, 경기 기간 중 국가대표 선수가 출연한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에 공식후원사인 삼성전자, IOC와 이미지 스폰서십을 맺은 E1, 동서식품 등 몇 개 회사만 광고를 할 수 있었다.

E1 입장에서는 확실한 광고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회나 다름없던 셈이다. 하지만 국민적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정도를 넘어선 광고카피는 ‘감동’이 아닌 ‘반감’을 주게 됐고, 되레 역효과를 불러왔다.

결국 E1은 지난 19일부터 해당 광고를 중단하고 지난해 하반기에 출시했던 광고로 부랴부랴 대체했다. 2012년부터 김연아 선수를 모델로 기용하며 광고효과를 톡톡히 봤던 E1은 이번 논란으로 어렵게 쌓은 기업 이미지에 손상이 불가피해졌다.

◇ 사상 최대 규모 배당실시 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E1의 현금배당 문제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당기순이익이 반토막 난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사상최대의 현금배당을 실시키로 결정하면서 뒷말이 적지 않은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E1은 116억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하기로 확정했다. 116억원은 사상 최대 규모다. E1은 지난 2011년 89억원, 2012년 86억원, 2013년 92억의 배당금을 집행했다. 주당 배당금은 전년 1,6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랐다.

문제는 실적이 부진한 상태에서 배당금을 잔치를 벌였다는 점이다.

E1은 지난해 연결기준 33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905억원보다 63%나 급감한 실적이다. 앞서 E1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던 지난 2009년 당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주당배당금을 1,000원으로 삭감해 차등 배당을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등 배당없이 오히려 사상 최대 현금 배당을 실시했다.

이번 배당으로 오너 일가는 상당한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E1의 최대주주는 구자열 LS그룹 회장으로, 지분 17.66%를 보유 중이다. 구자용 회장과 구자균 LS산전 부회장 등도 11% 가량의 지분을 갖고 있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총 45.33%의 지분을 쥐고 있다. E1은 사실상 오너 일가 소유의 회사인 것이다.

▲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지난 1월 2일 신년하례 행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사진=LS.

업계에선 E1의 이례적인 배당실시를 두고 최근 원전비리 파문에 따른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 때문 아니냐는 시각을 보내고 있다. 사재출연금을 충당하기 위해 실적이 안좋은 상황에서도 의도적으로 배당금을 높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앞서 구자열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원전 납품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212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구자열 회장, 구자용 회장, 구자균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각각 출연해야 할 수십억의 금액은 이번 배당으로 절반 가까이 충당할 수 있다.

이에 대해 E1 관계자는 “배당금은 ‘원전비리’에 따른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과 무관하다”면서 “배당규모를 확대한 것은 단순히 주가안정과 주가부양 차원 때문이다. 사실 주가 수준에 맞춰보면 배당률은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연아 선수의 광고 논란에 대해선 “좋은 의도로 진행한 일인데 구설에 올라 곤혹스럽다”면서 “광고를 보는 이들마다 시각이 다를 순 있겠지만, 김연아 선수에게 부담을 주거나 국가주의를 강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이렇게 논란이 불거져 안타까울 따름이다.  올림픽 경기가 끝난 이후 김연아 선수에게 격려와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새로운 광고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LS그룹은 지난해 원전 납품비리 사태로 인해 추락한 회사 이미지와 신뢰회복을 위해 JS전선을 버리는 초강수까지 뒀다. 오너 일가는 사재출연을 약속하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구자열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2014년을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야심찬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연초부터 뜻하지 않게 김연아 광고 논란으로 뭇매를 맞고 배당잔치 구설까지 터지면서 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자열 회장은 적잖이 체면을 구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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