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오고 있네. 나이 들면 시간의 흐름을 자기 나이의 속도로 인지하게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빨리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내 어렸을 적 시간 감각은 거북이 걸음처럼 무척 느리기만 했거든. 시속 10~20km로 달리던 세월의 속도가 70km에 가까워졌으니 간혹 어지러워 비틀거릴 수밖에. 1년이 한순간 같지 않는가? 동네 야산에 찾아온 봄꽃들 보면서 희희낙락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고 새해라니… 내 고향 말로 세월이 참 징하다는 걸 몸과 마음으로 실감하고 있네.

“세월이 참 징해야/ 은제 여름이 간지 가을이 온지 모르게 가고 와불제잉/ 금세 또 손발 땡땡 얼어불 시한이 와불것제/ 아이고 날이 가는 것이 무섭다 무서워/ 어머니가 단풍 든 고운 앞산 보고 허신 말씀이다”

김용택 시인의 <무심헌 세월>이라는 시인데,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도 명절에 집에 가면 내 얼굴에 생긴 주름 보면서 ‘세월이 참 징해야’라는 말을 자주 했었네. 그땐 몰랐지. 왜 무심코 흘러가는 세월 보고 징그럽다고 말하는지… 하지만 이제 좀 알 것 같네. 공식적인 노인이 된 후에는 내 입에서도 ‘세월 참 잘 간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한숨처럼 나오거든. 물론 그런다고 질주하는 세월이 서럽거나 무섭다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내 눈치 보지 않고 속도를 내는 세월이 고맙기도 해. 왜냐고?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옛날의 그 집>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일세.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젊었을 때 우리를 괴롭히는 게 어디 대문 밖에서 으르렁거렸던 산짐승과 들짐승뿐이었던가? 얼마나 많은 욕망과 쾌락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유혹했는가? 하지만 노인이 되면, 플라톤이 ‘죄악의 미끼’라고 했던,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었던, 그런 욕망과 쾌락에 휘둘리지 않게 되네. 그래서 키케로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세월이 정말로 젊은 시절의 가장 위험한 약점에서 우리를 해방해준다면, 그것은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라고 노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먼 옛날 서양 노인의 말이지만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네. “마음이 성욕과 야망과 투쟁과 적대감과 온갖 욕망의 전역(戰役)을 다 치르고 나서 자신 속으로 돌아가, 흔히 말하듯이, 자신과 산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내가 자주 하는 ‘현재를 즐기고(카르페 디엠, Carpe Deim),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는 말 잊지 말게. 하루하루를 그날이 마치 세상 끝날인 것처럼 제대로 살면, 점점 빠른 속도로 늙은 육신을 몰아치는 세월도 그렇게 무섭지 않을 걸세. 오히려 젊은 날의 쓸데없는 욕망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세월에게 고맙다고 큰절을 하게 될 거야. 남은 시간 세월과 친해지길 바라네.

마지막으로 세월을 능가하는 스승은 없다고 노래하고 있는 유안진 시인의 시 <오늘만큼의 축복>을 함께 읽어보세. 새해에도 하늘이 아낀다는 청복(淸福) 실컷 누리고,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푸르른 몸과 마음 갖고 즐겁게 살길 바라네. 맘 놓고 늙어보세.

“체험을 앞지르는 천재가 있을 거나/ 세월을 능가하는 스승이 있을 거나/ 빛바래고 사그라지고 병도 들어 불편도 하지만/ 맘 놓고 늙자/ 늙어를 가자/ 눈물 도는 두 눈 눌러를 감고/ 깊이 그리고 오오래 감사하자/ 오늘은 오늘만큼 늙어서 고맙다고/ 고마운 줄 알게 되어 더욱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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