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2023년 새해는 도전의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과 미사일을 거머쥐고 미국과 새로운 담판을 모색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안팎의 도전적 요소들과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복합위기에 봉착해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가 가장 견디기 힘든 족쇄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이 4차례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로 자초한 국면이기는 하지만 민생뿐 아니라 핵심 엘리트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있다.

2021년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주민들의 식량배급에 문제가 생긴 걸 보고받고 비축미 긴급 방출을 지시한 사실이 관영매체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그만큼 사정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은 대북제재가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주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고 ‘자력갱생’이나 ‘간고분투’ 같은 선전·선동 슬로건을 내세워 어느 정도 버텨나갈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20년간 버텨온 북한의 내공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압박은 핵과 미사일뿐 아니라 인권과 해킹 문제 등 전방위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특히 국제 금융망에 침투해 코인 등을 탈취해가는 북한 해커들의 조직적 활동에 국제사회는 공조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2022년 하반기에 집중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국제사회의 대북 경각심을 높였다. 9월 김정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통해 북한판 ‘핵 교리(doctrine)’라 할 수 있는 이른바 핵 무력 법령화를 제시한 건 북핵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어 북한은 11월 괴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으로 불리는 화성-17형을 쏘아 올렸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도발을 감행했다. 공군 전력을 총동원한 듯한 항공훈련에 2018년 9.19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군사분계선(MDL) 인근 지역에서의 포사격 등으로 한반도 긴장 수위를 끌어 올렸다. 12월 크리스마스 직후에는 무인기를 동원한 영공침범 행위로 윤석열 정부의 대북 대응을 탐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도발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핵과 미사일에 재래식 무기까지 결합된 군사도발에 해킹과 인권유린 같은 국제사회가 용인하기 어려운 범죄행위에 한·미 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연합(EU) 등이 의기투합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북한의 든든한 후견국을 자처해온 중국과 러시아도 대북 힘 보태기에 팔을 걷어 부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미중 패권경쟁 와중에 자신의 3연임 장기집권을 추진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은 위원장 북한을 챙길 여력이 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엔 무대에서 대북결의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수준으로 중·러의 역할은 머물고 있다.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욱 답답해진다. 북한 주민의 40%인 1,100만명 정도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서 다시 코로나가 크게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2023년 새해 북한은 다시 방역 고삐를 죌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중 밀무역을 통한 거래가 얼어붙고 장마당이 가동을 중단하는 등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얘기다.

북한은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어 신년 정책노선을 가다듬었다. 각 부문별 결산이 있었지만 내세울만한 성과는 없었다. 건축·건설 사업의 성과를 관영매체를 통해 선전했지만 평양의 특권층을 위한 주택 건설 등에 머물렀고, 일부 지방의 시범적 사업을 제시했을 뿐이다.

오히려 김정은 위원장이 지시한 건설·건축 사업이 차질을 빚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가 막 번지기 시작하던 2020년 초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지시하고 직접 기공식에 참석해 첫 삽을 떴다.

그해 10월까지 병원을 완공하라는 지시 자체가 무리수였지만, 더욱 문제로 여겨지는 건 3년 가까운 현재까지도 평양종합병원 건설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란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시한 이른바 ‘1호 사업’ 조차도 차질을 빚거나 아예 실종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건 그만큼 북한 경제가 어렵고, 체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엘리트와 주민의 사상 이완이나 체제 이반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집권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수차례에 걸쳐 관료주의와 세도 부리기, 부정·부패 척결을 외쳤지만 먹혀들지 않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요 등이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북한 주민들 사이에 파고들어 남한 사회를 동경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는 게 대북매체의 전언이다.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한류 드라마와 영화를 단순 시청했을 경우에도 노동교화형(징역형) 5~15년을 선고하고, 복제·배포나 판매한 경우 무기나 사형에 처하는 가혹한 처벌규정을 만들었지만 약발이 먹히지는 않고 있다.

MZ세대(20~30대)와 청소년의 한류 탐닉과 사상이완을 막겠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내놓은 처방은 한겨울 백두산 답사행군이다. “한겨울 귀뿌리를 도려내는 듯한 백두산 추위를 느껴봐야 한다”는 김정은 위원장 지시에 올 겨울 북한의 주민과 학생은 체감온도 영하 30도 안팎의 백두산에 오르고 있다. 변변한 방한복이나 신발이 없어 동사에 시달리기 일쑤라는 게 과거 이 행사에 참여했던 탈북인사들의 귀띔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외부세계에 눈떠가는 주민들을 다잡을 수 없다는 건 김정은 위원장도 잘 알 것으로 보인다. 그 자신이 MZ세대로 10대 시절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서 조기유학하며 한국과 서방의 문화를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1월 18일 화성-17형 ICBM 발사 현장을 참관한 자리에서 “핵에는 핵,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대답할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다. 그렇지만 핵을 가졌다고 북한 체제의 안전이 보장되고 민생이 풀리는 건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이런 이치를 깨달으려면 2023년 한 해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좌절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핵에 대한 오랜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수업료가 들어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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