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단체의 이동권 보장 투쟁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장애인단체의 치열한 투쟁 끝에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확대가 이뤄져왔다. 이러한 투쟁의 산물은 비단 장애인만이 누리고 있지 않다. 노인, 어린이 등 교통약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보다 이동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사진은 2014년 서울 중구 시청 서울광장에서 열린 ‘유모차는 가고 싶다' 캠페인’ 현장. / 뉴시스
장애인단체의 이동권 보장 투쟁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장애인단체의 치열한 투쟁 끝에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확대가 이뤄져왔다. 이러한 투쟁의 산물은 비단 장애인만이 누리고 있지 않다. 노인, 어린이 등 교통약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보다 이동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사진은 2014년 서울 중구 시청 서울광장에서 열린 ‘유모차는 가고 싶다' 캠페인’ 현장. / 뉴시스

미디어에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시위가 비춰지면서 우리 사회는 시민권적 권리로서 이동권 보장에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우호적인 입장과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면서 권리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섞여 계속된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선진 시민으로서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감내할 수 있는 불편이라는 것을 다수가 인지하고는 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친 개인들은 선진 시민이 되기를 내려놓고 불편을 감수하지 못하겠다며 차별주의자이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산물, 잘 사용하고 계시나요

그러다 보니 종종 ‘너는 전장연 시위를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이 시민들의 대화 속에 녹아든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다. 갑론을박으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민들은 각자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기 바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과 명절 전후가 아니고서야 장애인 이동권을 두고 이토록 시민 각자가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한 적은 없다. 이러한 시민들의 토론이야말로 공론의 촉발이며, 이동권이 진일보하는 성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리라 생각한다.

여전히 장애인 이동권 담론은 장애인만을 위한 이야기며 자신들과는 상관없다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요구는 우리 사회에서 누구도 소외됨 없이 보편적인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이지 장애인만을 특별히 대우해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투쟁으로 얻은 장애인 이동권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오이도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가 있은 후 지금까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개선된 지하철과 저상버스는 교통수단으로서 장애인뿐만 아니라 교통약자와 모든 시민을 포용하는 범용성의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교통약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장애인도 포함되지만 신체적 발달이 완전치 않은 영유아나 임신으로 인해 거동이 쉽지 않은 임산부, 고령으로 신체 노화가 진행되어 행동이 느려진 노인까지를 포괄한다. 때로는 깁스를 해 일시적으로 이동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도 교통약자의 범주에 속하기도 하며 이러한 교통약자들을 포함해 시민 모두를 위한 범용성 디자인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부른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일상 속에서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범용성의 기능이 높은 유니버설 디자인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공존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대표적 예시로 수도꼭지과 엘리베이터 버튼을 꼽을 수 있다.

과거 온수와 냉수가 구분돼 있고 수도꼭지의 머리를 힘껏 돌려야만 물이 나왔던 것과 달리 요즘은 가볍게 손등으로 툭 치기만 해도 물을 조절할 수 있는 수도꼭지가 흔하다. 언젠가부터 달라진 수도꼭지를 사용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까치발을 들고도 손을 씻는 어린 아이들도 쉽게 수도꼭지를 사용하니까 말이다.

휠체어 마크가 찍혀있는 한 엘리베이터 내 가로버튼. / 밀양소방서, 뉴시스
휠체어 마크가 찍혀있는 한 엘리베이터 내 가로버튼. / 밀양소방서, 뉴시스

또 언제부턴가 휠체어 마크가 찍혀있는 낮은 높이의 가로 버튼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버튼이 쉽게 보이다보니 누구든 무의식적으로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설치된 이 버튼을 누르곤 한다. 한번쯤 이 버튼을 눌러본 사람들은 이것이 휠체어 사용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버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그런 것이다. 남녀노소, 장애유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편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이다. 장애인이 요구하는 이동권 보장 역시 배제 없는 자유로운 이동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지만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편리한 이동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처럼 말이다.

일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주변 노인과 어린 아이가 있는 자녀를 만나보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결과가 이들에게도 얼마나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보다 노인의 이용 빈도가 훨씬 높다. 유아차를 끌고 도심 나들이를 가는 가족들을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도 가끔 마주하곤 한다. 시작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취지였지만, 그 결과로 만들어진 이동 환경은 모두가 함께 잘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저상버스도 비슷하다. 계단버스와 저상버스를 통해 교통수단의 환경이 개인의 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에게 저상버스가 필요하다는 것은 전국민이 다 아는 상식이 되었지만, 저상버스는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노인과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교통수단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 계단버스와 저상버스를 통해 보는 장애인 이동권의 범용성

몇 년 전, 강원도 횡성의 농어촌 버스 기사가 “어르신들이 이 버스만 보면 아주 좋아하신다. 계단이 없어서”라고 말한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그 버스 기사는 소규모 농촌 도시의 저상버스가 노인들에게 얼마나 유용한 교통수단인지를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또 작년에는 충남 옥천의 지역 신문에서, 지역민이 느끼는 교통 불평등에 대한 인터뷰를 하였는데 어르신들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여러 명의 입을 통해 언급됐다.

지역의 농어촌 버스를 타는 승객과 그 환경을 상상해보면 저상버스 보급 확대의 요구가 결코 이상하지 않다. 수도권과 달리 적절한 버스 승강장이 마련돼 있지 않은 곳도 많고, 긴 노선을 운영하고 배차 시간 또한 길다보니 정작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정차시간은 매우 짧은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노인들은 계단이 많은 버스를 행여 놓칠까봐 마음이 조급해진다.

농어촌 소도시 읍내에 장이라도 열리면, 장날 짐을 잔뜩 들고 타는 승객들로 시간이 더 지체될 수밖에 없다.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서 관절이 약해지고 시력이 저하되는데, 마음이 굴뚝같아도 승하차 하는데 시간이 더욱 소요될 수밖에 없다. 행여 버스기사가 재촉이라도 하면 노인 승객들은 허둥지둥 진땀을 빼며 버스에 오르내린다. 그러다보니 저상버스가 도입된 지역의 노인들은 계단이 없는 버스가 참 편리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가팔라 보였던 버스의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고, 넘어질까 조마조마하지 않고도 쉽게 버스에서 하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북 옥천군이 도내 농촌지역 중 처음으로 도입한 저상버스. / 옥천군
충북 옥천군이 도내 농촌지역 중 처음으로 도입한 저상버스. / 옥천군

어린자녀를 키우는 부모들도 저상버스의 편리함을 무척 공감한다. 이미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교통약자석을 보았거나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아이의 부모들은 저상버스 역시 편리한 교통수단임을 잘 알고 있다. 계단 버스는 아이를 번쩍 들어 힘겹게 승차해야하거나 아이 혼자서 버스에 오르고 내릴 때 사고가 나지 않을까 염려가 많다. 하지만 저상버스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릴 일도 없지만 아이가 혼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버스에 탑승하는 법을 익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계단 버스라면 유아차 탑승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는 유아차로 탑승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도 자유로운 이동의 기회를 보장한다. 유럽에서는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아차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버스에서 유아차를 마주하기란 낯선 풍경이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지난 2021년 지하철이 없는 경남의 한 도시에서 유아차를 끌고 저상버스를 탑승한 아이의 엄마가 저상버스 탑승 소감을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다. 아이도 똑같은 교통약자인데, 휠체어를 탄 승객과 달리 리프트를 내려주지 않아 무거운 유아차를 두 손으로 들어야 했고 안전장치가 없어 이동하는 내내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해당 지자체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담당 공무원조차 유아 승객이 교통약자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어린이도 교통약자임에 떡 하니 명시되어 있는데, 참 아쉬운 대목이다.

유럽은 어린이의 독립 이동권 보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에서 아동이 스스로 원하는 곳을 다닐 수 있도록 아동 친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데 사회적 공감대가 크다. 어린시절부터 거주하는 지역에서 자유로이 전철과 버스를 타고 원하는 곳을 이동해보는 경험 또한 사회구성원으로서 필요한 학습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 대중교통 속에는 영유아나 어린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저출생에 따른 인구 감소가 원인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 사회 환경이 교통약자라 불리는 장애인, 노인, 어린이에게 친절했었는지를 상기해봐야 한다. 과연 우리가 사는 지역은 다양한 시민을 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환경이 제대로 구축돼 있는지 둘러보아야 한다.

결국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장애인만을 위한 시위가 아니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따른 사회 환경의 변화는 장애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교통약자를 위한 우리 사회 환경의변화는 장애인 운동의 산물이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남녀노소,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유익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프로필 

 

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현) 장애인문화예술원 비상임이사 

전) 한국방송공사 앵커 

전)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 

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이사 

전) 한국교통안전공단 비상임이사 

전) 서울관광재단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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