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약 64만톤 가량 폐어망 바닷속에 폐기… 2층 버스 5만대 분량과 동급
미국‧유럽 등 일부 국가, 폐어망 수거 후 재활용 및 전력공급원으로 활용
국내 기업, 탄소 저감 위해 폐어망 재활용 소재 스마트폰 부품 등에 사용

‘쓰레기.’ 못 쓰게 되어 내다 버릴 물건이나, 내다 버린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된 ‘쓰레기’의 정의다. 하지만 우리가 ‘쓰레기’로 낙인찍어 내다 버리는 것들 중에는 ‘쓸모가 여전한’ 것들이 적지 않다. 실제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는 새로운 자원이 되거나 에너지로 재탄생해 새 생명을 얻기도 한다. 지구를 병들게 하는 원흉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지구를 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쓰레기의 역설’인 셈이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환경오염원 감소를 위한 해법과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국내 북한강 일대에서 수거된 폐어망 / 뉴시스
국내 북한강 일대에서 수거된 폐어망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바다에서 고기잡이에 사용하다 버려졌거나 유실된 그물, 즉 ‘폐어망’으로 인한 바다 생태계 피해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일명 ‘유령 그물(Ghost nets)’로 불리는 폐어망 대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썩지도 않은 채 해양생물 몸속에 들어가거나 덫으로 작용해 해양생물 몸에 감겨 죽음에 이르게 한다.

실제 지난 2018년 멕시코 수역에서는 바다거북이 약 300마리가 한 번에 폐어망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됐다.

이처럼 폐어망이 해양 생태계 위협 요소로 작용하자 세계 주요 국가들은 폐어망 수거 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매년 폐어망 64만톤 바다에 폐기… 유럽‧미국 등 폐어망 재활용 작업 착수

글로벌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지난 2019년 발표한 ‘바다를 떠도는 죽음의 그물, 유령어구’에 따르면 바다에 유입되는 플라스틱 양은 한 해 동안 1,200만톤에 달한다.

이 중 폐어망은 매년 2층 버스 5만대에 맞먹는 64만톤 가량이 바다에 버려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에서 10%를 차지하는 규모다.

사진은 지난 2019년 강원 화천군 재난구조대 직원들이 북한강 일원에서 선박 안전운항을 위해 폐어망 등 수중 폐기물을 제거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사진은 지난 2019년 강원 화천군 재난구조대 직원들이 북한강 일원에서 선박 안전운항을 위해 폐어망 등 수중 폐기물을 제거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폐어망으로 인해 바다 생태계가 점점 위험한 상태에 빠져들자 세계 각국은 폐어망 수거 후 재활용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폐어망 등을 재활용하는 ‘EUfir 시스템’을 이미 2012년부터 시행 중이다. ‘EUfir 시스템’을 활용하는 대표적 업체는 2008년 설립된 노르웨이 농업‧어업 폐기물 처리업체인 ‘노피르(nofir)’다.

‘노피르’는 어망 분리‧수집시설과 나일론,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가죽, 고철 재활용 공장을 연계해 어선어업에서 발생하는 폐어망 등을 수거‧재활용하는 시스템을 유럽에 구축했다.

그 결과 ‘EUfir 시스템’은 유럽 9개국에 정착됐으며 2017년 한 해 동안 로프 및 폐어망 등 7,428톤을 수집해 재활용하는데 성공했다.

유럽 대륙과 멀리 떨어진 미국 역시 2008년부터 ‘친에너지어업(Fishing For Energy)’ 프로젝트로 실시해 폐어망 등을 수거한 뒤 이를 재활용하고 나머지 재활용 불가 소재는 전력 공급 에너지원으로 활용해 지역 주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국내 기업들도 점점 폐어망 재활용에 눈길을 돌리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 국내 기업, 폐어망 재활용 소재 차량 부품·의류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국내 기업들의 폐어망 재활용 활동은 의류 소재, 자동차 부품, 스마트폰 부품, 재활용 업체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다.

지난 2021년 5월 효성티앤씨는 부산광역시, 소셜벤처기업 넷스파(NETSPA)와 협업해 폐어망을 재활용한 나일론 섬유 ‘마이판 리젠오션’을 출시했다.

효성티앤씨에 따르면 ‘마이판 리젠오션’ 출시 과정에서 부산광역시는 각 지자체와 협력해 폐어망을 분리·배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넷스파는 수거한 폐어망들을 파쇄·세척하는 전처리 과정을 담당했다.

이와 함께 효성티앤씨는 ‘마이판 리젠오션’ 생산 시 폐어망의 불순물을 제거해 원료의 순도를 높여주는 독자 설비인 해중압설비 투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플랜트. 인프라, 건축·주택 사업 등을 영위하는 SK에코플랜트는 작년 5월 폐어망 수거·운반 시스템 구축 비용을 폐어망 전처리 기술 업체 넷스파에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해양 플라스틱 재활용 과정 / 한화
해양 플라스틱 재활용 과정 / 한화

SK에코플랜트는 폐어망 재활용 사업을 통해 폐어망 1kg당 약 3.68kg의 탄소감축 효과가 얻어 2023년부터 최대 연간 약 1만5,000톤 규모의 탄소 감축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활용한 패션 브랜드 ‘플리츠마마(PLEATSMAMA)’를 운영 중인 송강인터내셔날은 작년 11월 국내 최초로 남해에서 수거한 폐어망을 재활용한 나일론으로 만든 플리츠백 ‘WFN’ 에디션 신제품 2종을 선보였다.

해당 제품은 부산 기장군과 목포 앞바다에서 각각 수거한 폐어망을 재활용한 나일론으로 만들어졌으며 효성티앤씨와 공동 개발했다.

폐어망 재활용을 위해 원양어업업체와 자동차 회사가 손잡은 사례도 있다. 동원산업과 현대·기아차는 지난 2022년 12월 폐어망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사업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동원산업은 연간 465톤의 폐어망을 분리·배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대·기아차는 폐어망서 분리·배출된 소재를 재활용해 엔진커버 등 각종 자동차 부품을 생산할 방침이다.

동원산업은 매년 약 100톤 규모의 나일론 소재가 폐어망에서 추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1월 LG화학은 넷스파와 폐어망 등 해양폐기물 재활용을 통한 자원순환체계 구축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LG화학에 의하면 넷스파가 폐어망 등에서 플라스틱을 선별·가공한 뒤 제공하면 LG화학은 이를 사용해 재활용 플라스틱 완제품을 생산한다. 특히 LG화학은 넷스파로부터 받은 폐어망 가공 재료를 오는 2024년 가동 예정인 충남 당진시 석문국가산업단지 열분해유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의 원료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LG화학은 폐어망 등 해양폐기물을 재활용할 경우 기존 화석연료를 통해 플라스틱을 생산할 때보다 탄소를 60% 이상 감축할 것으로 기대했다.

갤럭시 S23에 사용된 폐어망 재활용 소재 / 삼성전자
갤럭시 S23에 사용된 폐어망 재활용 소재 / 삼성전자

◇ 국민 대다수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도 폐어망 재활용 소재 사용

삼성전자는 작년 2월 폐어망을 갤럭시S22 시리즈 부품 소재로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앞서 지난 2021년 8월 삼성전자가 발표한 ‘지구를 위한 갤럭시(Galaxy for the Planet)’ 프로젝트 일환으로, 당시 삼성전자는 오는 2025년까지 모든 갤럭시 신제품에 재활용 소재를 적용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갤럭시 S22 시리즈는 폐어망 등 해양폐기물을 재활용한 플라스틱이 사용된 삼성전자 최초의 스마트폰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갤럭시 S22 시리즈 △갤럭시 북2 프로 시리즈 △갤럭시 탭 S8 시리즈 등의 주요 부품에 폐어망 재활용 소재를 최초 적용됐다.

구체적으로 갤럭시 S 시리즈 등에 사용하는 S펜의 키 브라켓과 내부 S펜 커버 부품에는 폐어망 재활용 소재가 20% 가량 사용됐다.

이어 삼성전자는 같은 해 8월 ‘삼성 갤럭시 언팩 2022’를 열고 폐어망 재활용 소재 부품을 적용한 스마트폰 신제품 다수를 추가 공개했다.

회사에 따르면 ‘갤럭시 Z 폴드4’의 △사이드 키 브라켓 △디스플레이 커넥터 커버, ‘갤럭시 Z 플립4’의 △볼륨키 브라켓, ‘갤럭시 버즈2 프로’의 △배터리 장착부 브라켓 △크래들 PCB 장착부 브라켓 △내장기구 강성 보강 브라켓 등에 폐어망 재활용 소재로 만든 부품이 사용됐다.

이 중 ‘갤럭시 버즈2 프로’의 경우 폐어망 등 재활용 소재를 적용한 부품 무게가 전체 기기의 90%를 차지했다는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일명 ‘유령 그물(Ghost nets)’로 불리는 폐어망 대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썩지도 않은 채 해양생물 몸속에 들어가거나 덫으로 작용해 해양생물 몸에 감겨 죽음에 이르게 한다. 사진은 폐어망이 친환경 소재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은 삼성전자 영상 중 폐어망에 의해 고래의 몸이 감겨있는 모습  / 삼성전자
일명 ‘유령 그물(Ghost nets)’로 불리는 폐어망 대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썩지도 않은 채 해양생물 몸속에 들어가거나 덫으로 작용해 해양생물 몸에 감겨 죽음에 이르게 한다. 사진은 폐어망이 친환경 소재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은 삼성전자 영상 중 폐어망에 의해 고래의 몸이 감겨있는 모습  / 삼성전자

당시 삼성전자 측은 “2022년 한 해 동안 바다에 버려진 폐어망 약 50톤을 수거해 스마트폰 부품에 재활용했다”며 “이에 따라 해양 플라스틱으로 인한 바다생태계의 위협을 점점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올해 2월 1일(현지시간) 삼성전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갤럭시 S23을 공개하면서 이번 최신 기종에도 폐어망·폐생수통·폐페트(PET)병 등을 재활용한 소재가 사용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폐어망 재활용 소재를 20% 사용해 만든 재활용 플라스틱(PA : Polyamide)은 갤럭시 S23 내부 S펜 커버, 하단 스피커 모듈 등에 적용됐다. 

삼성전자는 폐어망 재활용 소재를 갤럭시 기종 등에 사용함으로써 올 한 해 동안 약 15톤 이상의 폐어망을 수거·재활용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 삼성전자, 폐어망 재활용 부품 갤럭시 사용 후 CO2 약 25% 절감 기대

삼성전자는 폐어망 재활용 소재 부품 사용으로 일반 플라스틱 사용 때보다 상당량의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에 갤럭시용 폐어망 재활용 소재 부품을 생산·공급하는 한화 컴파운드가 지난해 글로벌 안전인증기관 UL(Underwriters Laboratories)에 의뢰해 진행한 LCA(전과정 평가, Life Cycle Assessment) 결과에 따르면 폐어망 재활용 부품을 갤럭시 기기에 적용할 경우 일반 플라스틱을 사용할 때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약 25%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각종 전자제품 부품에 쓰이는 플라스틱 1톤을 생산할 때 폐어망을 재활용하면 기존 열가공 방식 대비 1.1톤, 약 25%의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립산림과학원에 의하면 탄소 1.1톤은 국내 중부지방 30년생 소나무 120그루가 약 1년 동안 흡수하는 양에 해당한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22·S23 등에 사용 중인 폐어망 재활용 부품은 인도양 인근해에서 수집된다. 이는 다시 분리, 절단, 청소, 압출 등의 과정을 거쳐 폴리아미드 수지 펠릿으로 가공되며 이를 부품으로 최적화하는 시스템을 거쳐 스마트폰 부품으로 생산된다.

작년 SK에코플랜트는 해양폐기물 전처리 업체 넷스파에 폐어망 수거·운반 시스템 구축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SK에코플랜트
작년 SK에코플랜트는 해양폐기물 전처리 업체 넷스파에 폐어망 수거·운반 시스템 구축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SK에코플랜트

◇ 넷스파, 국내에서 폐어망 수거 및 선별‧분리 분야 개척

국내 기업들이 폐어망 재활용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기업이 있다. 그곳은 부산에 본사를 둔 해양폐기물 전처리 업체 넷스파다.

지난 2020년 설립된 넷스파는 폐어망 등 해양폐기물을 수거한 뒤 재활용해 재생 나일론을 생산한다. 이 재생 나일론은 다시 의류용 장섬유, 자동차 부품, 스마트폰 부품 등에 활용된다.

폐어망에서 좋은 품질의 나일론을 얻으려면 선별‧분리 작업 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외에서 일부 소수 기업을 제외하고는 폐어망을 선별‧분리 가능한 곳이 극히 드물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폐어망 선별‧분리 과정은 인도, 동남아 등 인건비가 싼 지역에서 수작업을 통해 이뤄졌다.

이에 착안한 정택수 넷스파 대표는 소셜벤처기업 넷스파를 설립했고 회사는 폐어망에서 나일론을 단일소재로 대량 선별하는 기술‧설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넷스파는 현재 효성티앤씨, LG화학 등 국내 대기업들과 협업해 ‘해양쓰레기를 선순환시켜 지속가능한 바다로 재창조’하는 사업을 선도하고 있다. 

넷스파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에서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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