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살쾡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삵’은 우리나라에 남은 마지막 고양잇과 포식자다. / 국립생태원
‘살쾡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삵’은 우리나라에 남은 마지막 고양잇과 포식자다. / 국립생태원

시사위크=강준혁 기자  산새 소리만이 간간이 울리는 고요한 숲속. 작은 들쥐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풀숲을 헤매고 있었다. 그 순간 포식자가 날랜 몸짓으로 들쥐에게 달려들었다. 들쥐는 반응조차 못한 채 포식자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에 목숨을 잃었다. 들고양이처럼 보이는 이 포식자는 들쥐를 문 채 의기양양하게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는 태안해안국립공원에서 설치한 무인센서카메라에 잡힌 영상을 묘사한 것이다. 영상에 등장한 사냥꾼은 ‘삵’이다. 한때 ‘살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 이 동물은 한반도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양잇과(科) 포식자로, 늑대가 사라진 현재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로 당당히 군림하고 있다.

◇ 고양이를 닮은 생태계 지킴이 ‘삵’

같은 ‘고양잇과’ 동물인 만큼, 삵은 들고양이와 생김새도 비슷하다. 빵빵한 볼과 긴 수염, 둥근 귀, 황갈색의 털에 얼룩덜룩한 흰 줄무늬를 가진 삵은 얼핏 보면 ‘치즈태비 들고양이’와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삵과 들고양이는 엄연히 다른 종이다. 이는 외모에서도 드러난다. 삵의 평균 몸길이는 50~58cm, 몸무게는 3~5kg 정도로 덩치가 일반 들고양이보다는 확연히 큰 편이다. 길고 가는 꼬리를 가진 들고양이와 달리, 털이 북슬북슬한 굵은 꼬리를 가진 것도 특징이다. 이 꼬리엔 회황갈색을 띈 7개 정도의 둥근 점이 있으며, 끝부분은 검은색 털로 덮여있다. 또 귀 뒤의 흰 점은 삵 고유의 무늬로, 들고양이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외형적 특징이다.

삵은 고양이와 유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훨씬 강력한 이빨과 발톱을 갖춘 무서운 사냥꾼이다. / 국립생태원
삵은 고양이와 유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훨씬 강력한 이빨과 발톱을 갖춘 무서운 사냥꾼이다. / 국립생태원

생활 방식에도 조금의 차이가 있다. 들고양이는 해질 무렵 주로 활동하는 ‘박명박모성’ 동물이지만 삵은 달빛도 잘 들지 않는 한밤중에 활동하는 완전야행성 동물이다. 또 들고양이는 물을 싫어해 주로 도심지역·숲속에 머무르는 것과 달리, 삵은 하천, 숲속 계곡 지역 등에서 주로 활동한다. 물을 마시러 온 동물·물고기·새 등을 사냥하기 위해서다.

배변 습관도 차이가 있다. 들고양이의 경우, 외진 곳에 배변한 다음 이를 모래로 숨기는 습성이 있다. 반면 삵은 영역 표시의 의미로 계곡 끝이나 하천변 둑길 등에 배변한다.

사냥꾼으로서의 ‘강력함’에서도 삵과 들고양이는 천지차이다. 삵의 이빨과 발톱은 들고양이보다 훨씬 크고 날카롭다. 또 신체 근육량도 훨씬 많아 앞발 및 턱힘이 들고양이보다 수배 이상 강하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쥐, 작은 새 정도만을 사냥할 수 있는 들고양이와 달리, 삵은 큰고니, 두루미 등 대형 조류를 사냥할 수 있다. 때때론 고라니, 멧돼지 등 대형포유류를 사냥하기도 한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엄연히 강력한 맹수인 셈이다.

하지만 가장 삵과 들고양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들고양이의 경우 소형 조류, 파충류, 양서류 등의 천적일 뿐만 아니라 개체수도 매우 많아 생태계 교란종으로 꼽히기도 한다. 때문에 환경부에서는 2019년부터 들고양이를 포획한 후, 중성화하는 ‘TNR(덫-중성화-되돌리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1960년대만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삵은 ‘쥐잡기 운동’으로 살포된 쥐약 때문에 개체수가 크게 감소했다. / 국가기록원
1960년대만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삵은 ‘쥐잡기 운동’으로 살포된 쥐약 때문에 개체수가 크게 감소했다. / 국가기록원

반면 삵의 경우 유해 조수를 잡아먹는 생태계 파수꾼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특히 최근엔 ‘뉴트리아’의 개체수 감소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다. 몸길이 40~60cm의 대형 설치류인 뉴트리아는 남아메리카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에서 건너온 외래종이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농작물 피해, 질병 전파 등의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환경부에선 뉴트리아에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고 포획상금까지 걸기도 했다.

그런데 2019년 들어 뉴트리아의 개체수가 급감한 뒤, 적정 숫자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삵이 뉴트리아의 천적으로 자리 잡으면서다. 환경부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매해 7,000여마리가 잡히던 뉴트리아의 숫자는 최근 60% 이상 감소해 2,000마리 아래로 유지되고 있다”며 “이는 강력한 포식자인 삵이 생태계 균형을 맞추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쥐약’과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 급감

한반도 생태계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는 삵은 안타깝게도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서식지파괴와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현재 삵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상태며, 국가적색목록 평가에선 ‘취약(VU)’ 등급으로 분류된다.

물론 삵이 처음부터 한반도에서 멸종위기종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삵은 우리 강산에서 매우 쉽게 볼 수 있는 동물 중 하나였다. 1454년 작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한반도 335개 지역 중 276개 지역에서 삵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됐다. 특히 공물로 바쳐진 동물 가죽 중 가장 많은 209개의 군현에서 기록된 동물이 삵이기도 했다.

2014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방사 준비를 마친 삵의 모습. / 서울대공원
2014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방사 준비를 마친 삵의 모습. / 서울대공원

그러나 근대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삵의 보금자리였던 숲은 개간돼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또 삵이 먹이를 잡던 공간인 하천엔 어느새 도심 지역의 물 공급을 위한 파이프와 둑방이 들어섰다. 삵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좁아지게 된 것이다.

특히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은 ‘쥐약’이었다. 1960~70년대, 부족한 양곡을 훔쳐 먹고 질병을 퍼뜨리는 쥐를 박멸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전국 쥐잡기 운동’을 실시했다. 당시 농림부의 추정에 따르면 국내에 서식하던 쥐의 숫자가 9,000만 마리 정도였으니 당연히 필요한 조치였다.

쥐잡기 운동 끝에 국내선 쥐가 크게 줄어들었다. 1972년 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총 4,728만6,027마리의 쥐가 잡혔으며 목표 대비 91.4%의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 결과, 쥐가 옮기는 각종 질병과 양곡 손실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빛나는 성과 뒤에는 삵의 심각한 멸종위기라는 그림자가 있었다. 쥐약을 먹은 쥐를 삵이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당시 쥐약에 사용된 물질은 ‘인화아연제(zinc phosphite)’였다. 이는 소량만 섭취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맹독물질이다. 문제는 이 인화아연제가 들어 있는 쥐약을 쥐가 먹을 경우, 위장의 산과 반응해 유독한 인화수소가스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쥐를 삵이 먹을 경우, 인화수소가스에 중독되고 결국 죽고 마는 것이다.

◇ 희망이 보이는 삵 복원… ‘로드킬’ 등은 넘어야 할 산

이처럼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했던 삵 복원에 희망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968년 발생한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인 ‘1.21 사태’ 때문이었다. 1.21 사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공작원(124부대)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우리 정부는 북한군의 침투로였던 북한산 우이령 일대의 출입을 40여년 동안 금지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자 북한산 우이령 일대의 자연 생태계는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멸종위기종인 미선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종과 어종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동물들도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국립공원공단에서는 삵도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삵의 개체수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로드킬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치명적인 위협이다. 사진은 경남 함양군 휴천면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삵의 모습. / 뉴시스
삵의 개체수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로드킬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치명적인 위협이다. 사진은 경남 함양군 휴천면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삵의 모습. / 뉴시스

이런 자연복원뿐만 아니라 인공복원사업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진행한 국내의 최초 삵 방사 활동이다. 2014년 서울대공원에서는 암컷 3마리, 수컷 2마리의 삵을 안산 시화호 지역에 방사했다.

이 같은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삵 개체수는 시화호 지역에서 서서히 증가했다. 환경부 측에 따르면 현재 약 20여 마리의 삵이 시화호 지역 안산갈대습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삵에겐 아직 큰 시련 하나가 남아 있다. 바로 ‘로드킬(야생동물이 차에 치여 죽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선 산간 지역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삵의 활동 영역과 겹치는 고속도로 등 자동차도로가 굉장히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매년 적잖은 숫자의 삵이 로드킬을 당해 목숨을 잃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지난 2년 6개월간 로드킬을 당한 삵은 100여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또 서울대공원에서 2017년 추가 방사한 삵 수컷 두 마리 중 한 마리도 로드킬을 당해 죽고 말았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삵과 같은 멸종위기종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 중 하나가 로드킬”이라며 “삵의 개체수 증진을 위해선 복원사업과 서식지 보호도 중요하지만, 로드킬을 막을 수 있는 생태 통로 등 대책 마련이 더 시급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한반도 고양잇과 사냥꾼의 자존심을 지키는 마지막 존재인 삵. 때로는 고양이처럼 귀엽게, 때로는 호랑이보다 날렵한 포식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 매력적인 사냥꾼이 진짜 ‘최후’의 사냥꾼이 되지 않도록 복원의 불씨가 좀 더 커지길 기대해본다.

 

근거자료 및 출처

조선 시대 고문헌을 활용한 한반도 포유동물의 시・공간적 분포 복원 (2020)
/ 김다빈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물국토연구본부 자연환경연구실 위촉연구원

2020. 물국토연구본부 자연환경연구실  

쥐잡기 운동

  국가기록원
한국의 멸종위기종 ‘삵’
  국립생물자원관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