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매년 입춘(立春)이 지나면 손꼽아 기다리는 게 있네. 뭐냐고? 매신(梅信)이야. 제주도나 남도에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봄소식 말일세. 올해는 1월에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고 눈이 펑펑 쏟아졌던 날이 많아서 모든 꽃들의 개화 시기가 꽤 늦어질 것 같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지난주부터 제주에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는 거야. 제주지방기상청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제주의 매화 개화는 지난해보다 2일 늦었지만 평년보다는 7일 이른 것이라고 하네. 서울에서도 3월 중순경에는 매화의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마음은 매화 곁에 가 있어.

봄의 전령인 매화는 모란처럼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한파 속에서도 은은한 향을 품은 꽃을 피우는 모습이 고결한 선비의 기개와 의연한 자세 같아서 옛날부터 동양 삼국(한국, 중국, 일본)의 시인과 묵객들이 좋아했던 품격 있는 동양의 꽃이었네. 중국 남송(南宋)의 범석호(范石湖, 1126-1193)는 「매보(梅譜)」서문에서 매화는 천하우물(天下尤物)이니, 즉 세상에서 으뜸가는 물건이니,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자, 어질고 못난 이 할 것 없이 아무도 여기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원예를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매화를 가장 먼저 심는데, 숫자가 많아도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했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2대 원예서인 『양화소록』과 『화암수록』의 저자인 강희안(姜希顏, 1417-1464)과 유박(柳璞, 1730-1787)도 소나무, 대나무, 국화, 연꽃과 더불어 매화를 고표일운(高標逸韻), 즉 높고 뛰어난 운치를 가진 1등 식물로 평가했어.

조선시대 매화의 인기는 대단했네. 매화(梅)는 난초(蘭), 국화(菊), 대나무(竹)와 더불어 문인들이 즐겨 그린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였으며,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松), 대나무(竹)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 즉 추운 겨울의 세 벗 중 하나로 사랑을 받았지. 지조를 지키면서도 운치가 있는 품격 높은 선비의 표상 같아서 군자의 꽃으로 추앙을 받았어. 그러니 조선시대의 거의 모든 사대부들이 매화를 좋아할 수밖에. 사육신의 한 명인 성상문의 호가 매죽헌(梅竹軒)이고, 생육신의 한 명인 김시습의 호가 매월당(梅月堂)인 것만 봐도 조선의 유학자들이 매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덕무는 이른 봄에 잠깐 피었다가 져버리는 매화가 아쉬워서 밀랍을 녹여 윤회매(輪回梅)를 만들었고, 연암 박지원은 이렇게 만든 인공매화를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니 요즘의 장미나 백합 같은 서양 꽃보다 훨씬 인기가 많았던 거지.

조선의 유학자들 중 유난히 매화를 좋아했던 사람이 퇴계 이황일세. 그에게 매화는 또 다른 ‘자기’였으며, 매화를 인격체로 생각하여 ‘매형(梅兄)’, 매군(梅君)이라고 부르기도 했어. 퇴계는 『화암수록』의 저자인 유박이 그랬던 것처럼 매실나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야. 도산서원에는 퇴계가 옥선(玉仙)에 비유한 매실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퇴계는 병이 나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된 후에도 자주 찾아가 술 한 병 옆에 놓고, 서로 시(詩)로 대화하면서 술을 주고받았다고 하네.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는가. 그렇게 쓴 매화 시가 모두 107수인데, 그 중 91수를 모아 놓은 게 퇴계의 『매화시첩(梅花詩帖)』일세.

퇴계는 1570년 12월 8일 아침에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죽으면서 아들 준에게 했던 말도 유명하지.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단양 기생 두향(杜香)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도 있지만, 퇴계에게 매화는 항상 좋아하는 꽃 그 이상이었네. 그래서 조선 최고의 유학자 중 한 분인 퇴계가 죽으면서 아들에게 한 말은 ‘언제나 네 자신을 성찰하면서 살아라.’는 아비의 당부로 받아들이는 게 옳아. 왜냐고? 퇴계 자신이 매일 화분에 심은 매실나무에게 물을 주면서 『대학』에서 말한 격물(格物)을 손수 실천했던 사람이거든. 퇴계는 단순히 매화가 가진 상징성이나 그 꽃의 향기에 취해 매실나무를 사랑했던 게 아니란 말일세. 그러면 왜 『대학』에서 가르치는 8조목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인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지배계급인 유학자들에게 중요할까? 주희가 말한 대로 어떤 사물이든 직접 관찰하고 연구해서 그 본질을 정확하게 아는 게 수신(修身)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자기 수양이 제대로 된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려야 유학의 꿈인 ‘평천하(平天下)’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거든.

퇴계 선생이 매일 아침 매실나무에게 물을 주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내가 사는 ‘지금 여기’를 생각해보네. 왜 이 나라가 점점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을까? 사람에 따라 진단이 다르겠지만, 내 눈에는 거의 모든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자기 수양 부족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갈등들의 근원으로 보이네. 물론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책임이 가장 큰 게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는 격물치지의 뜻이 뭔지 수신제가(修身齊家)가 왜 중요한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치국(治國)을 할 때 한 나라가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걸세. 그래서 정치인이든 지식인이든 남 탓만 하지 말고 먼저 자기성찰부터 해야 하네. 야당 정치인과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야. 지난 편지에서 이야기한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은 우리 모두가 가슴에 깊이 새기고 실천해야 할 가르침일세. 탕왕(湯王)처럼 새로운 나라를 열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 특히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게.

다음 편지에서도 매화 이야기를 계속하세.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