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피가 끓는다는 배우 최민식.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아직 피가 끓는다는 배우 최민식.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아직 피가 끓는다.”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뒤 1989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을 시작으로 영화와 드라마, 무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로 대중과 만나온 배우 최민식은 여전히 뜨거웠다. 죽는 순간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며 ‘천상 배우’다운 바람을 드러냈다. 

호평 속에 종영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연출 강윤성)도 최민식의 뜨거운 열정과 애정이 가득 담겼다. ‘카지노’는 우여곡절 끝에 카지노의 왕이 된 한 남자가 일련의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은 후 생존과 목숨을 걸고 게임에 복귀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해 12월 시즌1이 첫 공개된 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은 데 이어, 지난 23일 종영한 시즌2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최대 시청 시간 기록을 경신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탄탄한 이야기와 몰입도 높은 전개, 배우들의 열연이 호평의 이유로 꼽힌다. 

그 중심엔 단연 ‘대배우’ 최민식이 있다. 1997년 방영된 ‘사랑과 이별’ 이후 무려 25년 만에 드라마를 택한 그는 온갖 사건사고를 겪으며 카지노의 전설이 된 차무식, 그 자체로 분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16부작의 거대한 이야기 속 극을 묵직하게 이끌며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이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최민식은 ‘카지노’라는 대장정을 끝낸 소감을 묻자 “왜 힘들지 않았겠냐”며 웃었다. “긴 호흡의 이야기가 그리웠다”는 그는 “‘멋’부리지 않고 ‘진짜’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해당 기사에는 결말에 대한 결정적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최민식이 ‘카지노’ 종영 소감을 전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최민식이 ‘카지노’ 종영 소감을 전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오랜만의 드라마였다. 긴 호흡으로 극을 이끌어가야 했는데 힘들지 않았나. 

“왜 안 힘들었겠나. 물리적인 힘듦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다만 이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내야 하니까, 감독과 모든 스태프, 배우들이 추구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긴 이야기가 그리워서 선택했는데, 오히려 이 긴 이야기 때문에 아주 큰 고생을 했다. 하하. 말할 수 없이 예민해지고, 코로나19 때문에 무기력증도 심하게 왔다. 게다가 (필리핀) 더위가 장난이 아니더라. 보통 때보다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던 것도 맞다. 한 시퀀스라도 놓치면 다 엉클어져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 끈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가는 게 힘들었다.”

-긴 이야기가 그리웠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예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도 3~4시간짜리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대부’ ‘벤허’ 이런 영화를 보며 명작이라고 하면서 왜 우리는 그런 여유를 갖지 못할까 했다. 물론 이해는 한다. 러닝타임이 주는 압박감도 있을 테고. 그런데 이제 우리도 전 세계에 한국영화에 대한 존재감도 알렸고 하니 긴 호흡을 갖고 가는 드라마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래 강 감독과 하려던 작품이 무산됐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하다 나름대로 정리한 대본이 ‘카지노’였다.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의도가 보였고 한 인물의 서사, 긴 이야기에 끌렸다. 쉽지는 않겠지만 하나하나 꼼꼼히 만들어보면 괜찮은 한국형 드라마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분명 악한 일을 행하는데 차무식을 응원하게 되더라. 선과 악으로 정확히 구분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인물이었는데, 차무식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다가왔나.

“내가 의도한 바가 그것이다. 분명히 하는 짓은 나쁘다. 멀쩡한 기업 사장을 꼬셔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먹고 나중에 차용증 쓰라고 하고 밥 먹었냐고 푼돈을 쥐여주면서 모욕감을 주잖나. 분명히 나쁜 놈이다. 그런데 세상에 100% 나쁜 놈은 없지 않나. 누구에게는 좋은 형일 수 있고 좋은 선배일 수 있다. 카지노라는 왕국을 건설하고 권력을 누리고 계속해서 생존해 나가려면 누군가의 피를 마셔가면서, 누군가의 몰락을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그걸 헤쳐 나가야 하고, 그런 양면성, 다면성이 차무식의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인간적인 룰이 있었다. 그래서 더 약하게 보이지 않았나 싶다. 똑똑한 차무식에게 어느 순간 구멍이 생기는 거다. 하나의 벽돌을 뺐을 때 와르르 무너진 거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국엔 그래서 화를 자초하게 된 거다.” 

차무식을 연기한 최무식 스틸.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차무식을 연기한 최무식 스틸.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차무식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평범함이다. 어떤 한 여자의 아들이자,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아버지. 그래서 카지노라는 정글에서 벗어난 무식이 엄마가 주는 김치를 맛보고 하는 함께 밥을 먹고 하는 모습들이 꼭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있는 일상이잖나. 그 일상성을 차무식이라는 캐릭터에 꼭 주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이지만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이렇게 흘러간다는 것, 알다가도 모를 인생의 불확실성을 차무식이라는 인물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음악으로 치면 록이냐 발라드냐 아니면 포크냐에 따라 악기를 택하고 그것에 따라 연주하듯, 나 스스로 어떤 장르냐 캐릭터냐에 따라 변주한다. 나의 몸뚱이가 악기고, 목소리와 몸짓은 캐릭터를 표현하고 작품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에 맞는 것을 선택한 거다. ‘카지노’에서는 평소 내가 쓰던 장난스러운 말투를 많이 삽입해서 조금 더 자연스러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처음에 강 감독과 만나서 리딩하고 그럴 때도 ‘영웅본색’처럼 멋있게 하지 말고 ‘진짜’처럼 하자고 했다. 리얼리티를 항상 염두에 두고 표현해 보자 생각했다.”

-영어 대사도 많았다. 어려움은 없었나. 

“‘루시’를 제안받았을 때 처음에 거절했다. 영어를 진짜 잘해야 하는데 국제적으로 망신당하기 싫잖나. 그래서 거절을 했더니 그럼 영어 하지 말고 한국어로 하라고 하더라. 그래야 더 무섭다고. 일리도 있고 고맙기도 해서 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카지노’가 영어 연기는 처음이었다. 아주 고생했다.(웃음) 다행히 한국식 영어였다. 콩글리시가 허용되는 캐릭터라 다행이었다. 극 중 존으로 나온 배우 김민이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틈나는 대로 가르쳐 줬다. 평양에서 카지노 하자고 전화한 친구가 그 역할도 하면서 영어 대사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 친구는 진짜 미국 사람이니까 촬영 없는 날에도 현장에 와서 대사도 맞춰주고 놓치고 가는 게 있으면 짚어주고 했다. 그 친구가 고생이 많았다.”

-영어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나. 또 기회가 있다면 도전할 생각이 있는지. 

“안 한다. 극에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한국인이 한국말을 해야지. 너무 힘들다. 외워지지도 않는다. 안 할 거다 이제.(웃음)”

최민식이 평범함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고 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최민식이 평범함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고 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차무식의 30대 시절부터 연기했다. 어떤 차이를 뒀나. 시청자들 사이 회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무식의 뱃살에 대한 재밌는 반응도 많은데, 일부러 체중을 불리기도 했나.     

“과학기술의 힘을 빌린다고 해서 뱃살도 깎아주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더라. 하하. 굳이 변명하자면, 아까도 말한 평범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주 멋있고 안티 히어로 같은 모습이 아닌, 정말 평범한 아저씨의 삶. 그래서 그냥 방치했다. 나도 배우인데 외형이 어떻게 비치느냐에 대한 우려가 왜 없었겠나. 그런데 우리가 너무 외모에 대해 비중을 크게 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바웃 슈미트’라는 영화에서 케시 베이츠라는 배우가 옷을 홀딱 벗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노년의 여배우가 배가 이렇게 나와 있고 가슴도 늘어진 모습인데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런 자연스러움이 캐릭터의 평범함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또 다음 작품에서 나름대로 변화한 나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걸 위해 이번엔 망가지자 생각했다. 하하.”

-결말에 대한 생각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에 대한 이야기가 극 초반에 나오는데, 뚜껑을 열 때 화무십일홍으로 열었으니 끝도 그렇게 맺고 싶었다. 처음과 끝이 관통되는 것을 의도해 봤다. 총에 맞았지만 나중에 좀비처럼 살아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겠지. 그런데 나는 왠지 기시감이 들었다. 느닷없지만 느닷없는 게 좋은 것 같았다. 꽃송이가 바람이나 비, 외부의 힘에 의해 떨어지지만, 자기의 삶이 너무 버거워,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낙화하는 꽃잎 같은 차무식의 종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멋 같은 거 부리지 말고 해외 누아르가 보여주는 방식을 따라가지 말고 우리 느낌대로 가는 게 어떨까 했다.” 

-가장 아끼던 동생 정팔(이동휘 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것 역시 배우의 의견이었다고. 

“그게 더 짠할 것 같았다. 차무식에게 정팔은 말 안 듣는 자식 같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 정팔이 무식을 죽여야 할 것 같았다. 욕망을 좇던 인간이 느닷없이 죽어버리는, 그 허무함을 더 잘 표현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강 감독도 받아들여준 거다. 세상에 얼마나 멋있는 엔딩이 많나. 폼 나게 그리려면 그릴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과연 그게 드라마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것일까. 그걸 정직하게 표현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도 (결말 때문에) 연락을 무지하게 받았다. 지금까지 일주일을 기다리면서 봤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냐고 하더라.(웃음)”

또 한 번 이름값을 증명한 최민식.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또 한 번 이름값을 증명한 최민식.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차무식은 왜 그토록 돈에 집착했을까. 

“그러니까 말이다. 필리핀에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본인을 위해 쓰지도 않는다. 돈은 절대적인 거잖나. 상징성이 있다. 모든 인간에게 돈에 대한 집착이 있고 돈이 많았으면 하는데, 돈을 그렇게 벌었으면 뭐든 누려야 할 것 아니냐. 그런데 ‘카지노’에는 그런 게 묘사되는 게 없다. 무식은 돈에 중독된 것 같다. 돈은 곧 내 삶을 윤택하게 함과 더불어 권력까지 따라온다. 돈에서 파상되는 권력 밑으로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게 되고 그들이 무시하지 못하게 되고 그런 인생에 중독된 거다. 고생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면서 성공에 대한 로망이 생기고, 욕망을 좇다 그 욕망 자체에 중독된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공개된 메이킹 영상에서 액션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전히 파이팅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아직까지는 피가 끓는다. 하하. 어느덧 고참이 되다 보니 효율적으로 잘 찍어야 하는 것에 있어서 의견을 낼 때가 있다. 낭비가 심하고 누수가 심하면서 효율성을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되잖나. 액션 같은 경우는 다치게 되면 촬영 일정에도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의욕보다 효율적으로 가야 하고 한 방에 임팩트를 보여줄 수 있는 걸 생각해서 나름대로 의견을 냈다. 이제는 끓는 피만으로는 안 된다. 끓는 피와 아주 차가운 냉철함이 같이 가야 한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진단하고 아주 드라이하게 생각도 해보는 과정이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 나름대로 나이를 먹었다고 그런 지혜가 생긴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예전에는 피만 끓었는데.(웃음)”

-앞서 차무식이 돈에 중독됐다고 표현했는데, 돈을 연기로 치환한다면 배우 최민식에게 연기는 어떤 의미인가. 

“모르겠다. 연기가 나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처음으로 연극 대본을 리딩 했을 때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신촌오거리에 있는 극단 뿌리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다.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한 것 외에는, 하다못해 투잡도 없었다. 오로지 이걸로 먹고살았다. 그래서 연기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중에 내가 죽을 때 느낄 것 같다. 내가 무슨 짓거리를 하면서 살았는가에 대해.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그냥 이게 아니면 할 게 없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숨 쉬듯, 밥을 먹듯 늘 해온 일이다. 간혹 그런 질문은 한다. 그래서 이제 행복한가? 나름대로 좋아하는 일을 줄곧 해왔는데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가 있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다.

소위 말해 지명도 있는 배우가 됐고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는 참 감사하다. 친구들도 다 퇴직하고 뒷방 늙은이 취급받는데 ‘너는 그래도 행복한 놈이야’라고 할 때 그런 면으로 봤을 때는 할 말이 없다. ‘그래,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야지,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 아직까지는 그 단계인 것 같다. 이것에 대한 것은 죽어야 알 것 같다. 연출이든 배우든 끝까지 모르고 갈 것 같다. 이 의미에 대해서. 다만 죽는 순간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 신구 선생님이나 이순재 선생님은 그 연세에 지금도 연극을 하고 작품 활동도 활발하게 하시잖나. 나도 저렇게 나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선배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니까 공부가 따로 없다. 나도 따라가야지 생각한다. ‘천문’할 때 신구 선생님이 ‘너는 배우 한다는 놈이 왜 담배를 안 끊느냐’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끊지는 못하겠고 전자담배로 바꿨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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