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인구 소멸 지역으로 알려진 작은 소도시의 구도심을 방문했다. 낡은 건물이 길게 늘어선 중심가는 마치 199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듯해 보였다. 길에는 자가용이 즐비했고, 도로 한 켠은 시장에 방문하기 위한 자동차 운전자들의 간이 주차로 빼곡했다. 저속으로 움직이는 도로였지만 주차된 차량 사이사이로 튀어나와 무단횡단을 하는 어르신들 덕분에 놀란 심장이 멈추지 않았다.

◇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소도시

평일 낮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상하다고 느꼈던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인근 초등학교나 중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도심의 길 위에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아이들은 보통 어떻게 이동하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화자가 너무 당연한 것을 묻는다고 생각했는지 주민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재차 ‘아이들은 보통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 동네를 다니나요?’라고 풀어 설명했다.

그러자 일부 주민은 ‘엄마차’, ‘학원차’라고 대답했고, 또다른 주민은 ‘데리러가야죠’라고 말했다. 혹, 아이들이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는 않는지를 물었더니 버스는 배차간격이 너무 길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했고, 자전거를 타기엔 도로가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엄마가 혹은 부모가 셔틀버스처럼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것이 작은 소도시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라는 것이다.

순간 수도권의 아이들이 어떻게 이동을 하는지를 상상해보니, 비수도권 소도시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음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심지어 이동수단을 선택할 기회도 훨씬 많았다.

수도권의 아동들, 대략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비수도권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학원차량이나 부모님차량이 방과후 주 교통수단이기는 하겠지만, 필요하다면 시내버스, 지하철, 자전거(공공자전거 포함)를 이용할 수 있고 보행자 친화적인 인도가 마련돼 그리 불편하지 않게 도보 이동도 가능하다.

짧은 시간 방문했던 비수도권의 작은 도시엔 보행자가 편히 다닐 수 있는 보행로의 연결이 끊겨 있었고, 즐비한 불법주차로 인하여 인도가 침범되거나 택시 및 버스를 탑승하는 것 조차 불편한 구조였다. 

그 뿐만 아니라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다니는 버스 배차 간격으로는 방과 후 아이들이 편하게 이동하기 어려운 구조였고, 대안 교통수단인 자전거나 택시 또한 현 교통환경에서는 쉽사리 이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가시적으로도 확인될 정도였다.

골목을 놀이터 삼아 놀던 옛 시절은 사라졌다 하더라도, 최소한 아이들이 집과 학교, 그리고 자신들의 놀이 공간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 아동의 독립 이동권

유니세프(Unicef)의 아동친화도시계획에는 아동의 참여, 놀이와 여가 공간, 자연환경 확보, 그리고 이동성 개선이 골자로 구성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아동친화도시를 계획하고 구축해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바로 ‘아동의 독립 이동권’이다.

아동의 독립 이동권 혹은 독립 이동성은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감독 없이 동네나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아이들은 동네 바깥으로 나와 성인의 동반 없이 이동하고 놀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불법주차한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 뉴시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불법주차한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 뉴시스 

아이들은 자신의 주변 환경에서 놀고 탐험하면서 성장하고 발달한다. 또 모든 움직임에는 놀이가 동반되기 때문에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행위도 곧 놀이이며 통학 길도 어린이들에게는 놀이 동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도시 내 교통사고나 범죄에 따른 위험 때문에 아이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거나 이동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 때문이다. 

신호를 무시하는 차량, 인도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지 않는 자동차, 불법주차 등으로 인해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이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부모차’, ‘학원차’라는 대답이 일반적으로 튀어 나오게 된다.

아동의 독립 이동권을 통해 아동들은 거리상 집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지는 않겠지만, 야외활동을 즐기는 시간과 횟수가 증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동을 통해 더 많은 학습과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단절시키는 현재의 이동 환경이 과연 아이들에게 적절한 사회인지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아마 쉽게들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당장 자동차의 설계만 보아도 아이들에게 편한 구조가 아니다. 택시나 버스, 자가용 모두 성인의 신체 규격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횡단보도의 점열신호등이나 계단은 또 어떠한가. 보폭이 좁은 아이들은 허둥지둥 뛰어야 길을 건널 수 있고, 계단이 높아 등산을 하는 자세로 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비상벨의 높이나 긴급전화의 높이는 어떠한가, 버스나 지하철의 손잡이는 아이들이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설치되어 있지 않다. 결국 아이들은 일상에서 대중교통으로 편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없고,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아동에게 불평등한 이동 환경과 이동 가능성은 모든 아동이 마땅히 가져야 할 평등한 발달 기회를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또, 이런 관점에서 저출생 문제도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도시는 과연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지, 자동차를 위해 설계되어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람 중에서도 그 지역에서 환경과 교감하여 성장기를 보내야할 가장 중요한 시민인 아이들에게 편한 도시 환경인지 행정가, 정책입안가, 정치인, 도시계획자 모두 돌이켜보아야 한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프로필 

 

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현) 장애인문화예술원 비상임이사 

전) 한국방송공사 앵커 

전)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 

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이사 

전) 한국교통안전공단 비상임이사 

전) 서울관광재단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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