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세계 3대 진미 ‘캐비아’의 황홀한 맛은 큰철갑상어(사진)의 멸종위기라는 비극을 불렀다./ 사진=Wiki Media, 편집=시사위크
세계 3대 진미 ‘캐비아’의 황홀한 맛은 큰철갑상어(사진)의 멸종위기라는 비극을 불렀다./ 사진=Wiki Media, 편집=시사위크

시사위크=설공원 기자   

Caviar and cigarettes

(캐비아와 담배에)

Well versed in etiquette

(세련된 에티켓까지)

Extraordinarily nice

(너무나 환상적인)

She's a Killer Queen

(그녀는 완벽한 여자야)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퀸’이 부른 명곡 ‘킬러 퀸(Killer Queen)’의 한 소절이다. 노래 속 남성은 자신이 마주친 아름다운 여성을 묘사할 때, 철갑상어 알인 ‘캐비아’를 먹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 노래에 묘사된 바와 같이, 캐비아는 우아하며, 성적 매력을 끄는 음식으로 잘 알려졌다. 실제로 철갑상어의 척추 안에는 ‘베시가’라는 골수가 있어 최음제로 취급된다. 중국에서는 가루로 만든 베시가를 결혼하는 신부에게 먹이는 관습도 있다. ‘캐비아’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곳으로 알려진 고대 페르시아에서 ‘최음제’로 캐비아를 묘사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캐비아의 이미지는 최음제가 아닌, ‘부와 미식’일 것이다. 푸아그라, 트러플과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캐비아는 18세기부터 유럽 귀족들 사이에선 가장 귀한 음식으로 꼽혔다. 또한 절대 권력으로 유명했던 러시아 왕조에선 “그해 처음 만든 캐비아를 먹을 권리는 오직 황제에게만 있다”고 정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캐비아의 환상적인 맛은 철갑상어들에겐 저주로 이어졌다. 최상급 품질의 캐비아를 얻기 위한 인간들의 탐욕이 커졌다. 이는 철갑상어들을 멸종위기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다.

한 스푼에 5,000만원을 호가하는 ‘벨루가 캐비아’./ Gettyimagesbank
한 스푼에 5,000만원을 호가하는 ‘벨루가 캐비아’./ Gettyimagesbank

◇ ‘검은 다이아’ 얻기 위한 남획에 큰철갑상어 95% 절멸

탐욕스런 인간 어부들의 남획 대상이 된 대표종은 ‘큰철갑상어(Huso huso)’다. 연어와 같은 회유성 어종으로, 배란 시기가 되면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 ‘벨루가 철갑상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큰철갑상어의 배와 옆면이 흰색을 띄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로 벨루가는 흰색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복치와 함께 현존하는 경골어류 중 가장 거대한 종으로, 평균 3~5m 길이로 자란다. 현재 기록된 최대 몸길이는 7.2m로 기록돼 있다.

외형적 특징도 특징이지만, 큰철갑상어가 특별한 이유는 최상급 품질의 캐비아에 있다. ‘벨루가 캐비아’라 불리는 이 캐비아는 15년 이상 성장한 개체에서만 얻을 수 있어 희소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알 크기도 가장 크다. 부드럽고 크리미한 식감에 호두향이 나는 기름은 풍미를 돋궈 최고급 레스토랑에선 거의 반드시 사용하는 식재료 중 하나로 꼽힌다. 이름값처럼 가격도 어마어마한데, 최고 품질의 벨루가 캐비아는 한 스푼에 3만6,000달러(한화 4,831만원)을 호가한다. 때문에 어부들 사이에선 큰철갑상어의 캐비아를 ‘바닷속 검은 다이아몬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이처럼 높은 캐비아 가격은 큰철갑상어의 남획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1980~1990년대에 들면서 돈에 눈이 먼 러시아·아랍권 어부들은 큰철갑상어를 무자비하게 잡아댔다. 뿐만 아니라 큰철갑상어의 주요 서식지였던 아조프해 인근에는 저수지 건설 공사까지 다수 진행됐다. 이로 인해 회유성 어종인 큰철갑상어가 알을 낳을 장소도 사라졌다.

1980~1990년대 캐비아를 얻기 위한 큰철갑상어 남획이 성행했다. 이로 인해 큰철갑상어 개체수는 182년 전보다 95% 가량 줄었다./ Getty images
1980~1990년대 캐비아를 얻기 위한 큰철갑상어 남획이 성행했다. 이로 인해 큰철갑상어 개체수는 182년 전보다 95% 가량 줄었다./ Getty images

남획과 환경파괴가 이어지면서 큰철갑상어의 개체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큰철갑상어는 3세대(약 182년)에 걸쳐, 개체수가 95%나 감소했다. 이로 인해 큰철갑상어는 IUCN이 발표한 멸종위기종 분류 목록인 ‘레드리스트(Red List)’에서 ‘심각한 위기종(CR)’으로 분류된 상태다. 이는 개체수가 거의 없어 멸종을 목전에 둔 종에게 부여되는 등급이다.

현재 살아남은 큰철갑상어는 러시아 볼가 강 인근에서 극소수의 개체수만이 생존하고 있다. 하지만 볼가 강 인근에 ‘볼고그라드 댐’이 건설되면서 인근 산란 장소 역시 크게 손실된 상태다. 때문에 이곳의 살아남은 큰철갑상어 번식은 인공수정 방식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IUCN은 “캐비아를 얻기 위한 지난 세기의 남획으로 인해 큰철갑상어는 곧 전 세계 야생에서 멸종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살아남은 개체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효과적인 어업 관리, 양식, 불법 어업 퇴치, 산란지 보호 등에 달려있다”고 조언했다.

◇ 치어 방류 등 지속적 복원 노력 이어지는 국제사회

큰철갑상어가 멸종위기의 절벽 끝까지 몰리자 늦게나마 국제사회에선 이를 막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강구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다. 1973년 3월 채택된 이 조약은 야생동식물종의 국제적인 거래가 동식물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게끔 여러 보호단계를 적용한 것이다. CITES를 통해 보호되고 있는 생물종은 현재 총 3만3,000여 종이며, 큰철갑상어는 2008년 등재됐다. 때문에 현재 벨루가 캐비아의 거래는 국제사회의 엄격한 규제를 거쳐 선별된 제품만 가능하다.

2020년 ‘다뉴브강의 날’ 행사에서 큰철갑상어 치어를 방류하는 모습./ WWF
2020년 ‘다뉴브강의 날’ 행사에서 큰철갑상어 치어를 방류하는 모습./ WWF

2020년 6월 불가리아에선 ‘다뉴브강의 날’을 기념해 큰철갑상어 치어를 방류하기도 했다. 세계자연기금(WWF)의 주도 하에 진행된 이 행사에서 방류된 큰철갑상어 치어는 총 7,000여마리다. 각각의 개체엔 전자태그가 부착돼 있어, 이들의 이동 패턴 및 서식지 등 큰철갑상어 복원에 단서가 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유럽뿐만 아니라, 큰철갑상어의 고향인 카스피해에서 약 9,000마일 떨어진 미국도 큰철갑상어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국가다. CITES 등재에 앞서, 미국에서는 2005년에도 큰철갑상어 거래를 통재하기 위한 국제 규약이 마련된 바 있다. 미국어류야생동물보호국(USFWS)은 2005년 3월 4일 ‘큰철갑상어 거래 통제를 위한 특별 규제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규제안에 따라, 큰철갑상어 관련 제품(고기 및 캐비아)을 미국 내 시장에 판매하고자 하는 국가는 엄격한 심사(불법 어획 관련)를 거쳐야 한다. 또 허가를 통과한 후 시장 내에서 판매가 이뤄질 경우에도 USFWS의 지속적 모니터링을 받게 된다.

미국에는 큰철갑상어의 복원이 이뤄지는 수산 기업도 있다. 플로리다주 배스컴에 위치한 ‘스터전 아쿠아팜(Sturgeon AquaFarms)’이다. 러시아 이민자 마크 자슬라브스키(Mark Zaslavsky)가 2001년 설립한 스마트팜 기업이다.

큰철갑상어 치어에 전자 태그를 부착하는 모습./ WWF
큰철갑상어 치어에 전자 태그를 부착하는 모습./ WWF

스터전 아쿠아팜은 2016년 미국 내 기업 중 유일하게 큰철갑상어와 관련한 제품 생산 및 거래 허가를 받았다. 약 120에이커(48만5,623㎡) 넓이에 이르는 이 아쿠아팜에서는 큰철갑상어의 복원 및 캐비아 생산이 이뤄진다. 이곳에서는 큰철갑상어 복원 연구에 16만여 개의 수정란을 기증하기도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큰철갑상어 복원의 경우, 환경을 고려해 정확히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멸종위기종이긴 하지만 큰철갑상어는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된 복원은 인근 환경 생태계를 오히려 망가뜨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바헤닝언대학교 톰 부이즈세(Tom Buijse) 교수팀은 2022년 4월 발표한 연구 논문을 통해 “라인 강, 뫼즈 삼각주에 외래 철갑상어를 재도입할 경우, 토착 생물 다향성에 위험을 줄 수 있다”며 “이들은 잠재적인 교잡 위험, 경쟁 및 기생충과 질병 전파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간에게 ‘음식’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맛있는 음식은 현대인에게 있어 ‘삶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즐거움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생명을 멸종의 문턱으로 몰아세우며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과연 ‘좋은 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가톨릭에서 7대 죄악 중 하나인 ‘Gula(탐욕)’을 ‘식탐’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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