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수용” 요청하며 입실거부한 성소수자에 징벌 조치
인권위 “인권침해, 재발방지 대책 마련” 교도소에 권고

국가인권위원회가 15일 교도소에 수용된 성소수자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 뉴시스
국가인권위원회가 15일 교도소에 수용된 성소수자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조윤찬 기자 #A씨는 2021년 9월 피의자로 교도소에서 독거수용되다가 같은 해 10월부터 일반 수용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됐다. A씨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독거수용을 요청했지만 교도소 측은 증거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 결국 A씨는 성소수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입실 거부를 반복하다 처우가 낮아지는 처분을 받고 다른 교도소로 이송됐다.

◇ ‘성소수 수용자 처우 절차’ 여전히 소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교도소에 수용된 성소수자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법무부 지침은 성소수 수용자의 안정된 수용생활을 유도하기 위해 별도의 상담자를 지정하고, 상담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용동 및 거실을 지정해야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A씨는 형이 확정된 지난해 2월까지 여러 수용자들과 함께 지내는 혼거 생활을 했다. 이후 A씨는 성소수자 특성상 혼거 생활이 어렵다며 독거수용을 요청했으나 교도소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교도소 측은 입실 거부를 반복하던 A씨에 대해 징벌을 부과했다. 결국 A씨는 일반경비처우급(S3)에서 중경비처우급(S4)으로 낮아지는 처분(징벌)을 받고 지난해 5월 다른 교도소로 이송돼 독거수용됐다.

이 같은 내용은 A씨의 지인이 지난해 9월 인권위에 진정을 내면서 알려졌다.

인권위는 성소수 수용자에게 적절한 처우를 하지 않고 되레 징벌 조치한 교도소 측의 조치를 ‘인권침해’로 판단했다.

인권위는 우선, 교도소 측이 성소수자 처우 관련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법무부 ‘성소수자 수용처우 및 관리 방안(2020)’에 따르면 “수용자 입소 시 성소수자로 인지한 경우 다른 수용자와 즉시 분리, 의견을 청취”하도록 규정돼 있다. 개별 상담을 통해 △법률적 성별 △신체적 성(性) △다른 수용자로부터 위해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성소수자의 수용동 및 거실(혼거·독거) 지정을 결정해야 한다.

성소수 수용자의 처우 여부가 수용자 본인의 의견과 상반될 경우엔 외부의료시설 비뇨기과나 정신과 전문의 진료·상담 등 외부 전문가 의견을 고려해 결정하도록 돼 있다. 성소수자 입소자는 ‘독거수용’이 원칙이지만, 지난 2020년 4월 인권위 권고에 따라 거실 지정시 수용자의 의견을 고려하는 절차가 새로 마련됐다.

그러나 교도소 측은 A씨에게 ‘성소수자’라는 증거를 제출하라는 요구만 반복한 것으로 알려진다. A씨에 대한 원격 정신과 진료도 1회만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A씨가 본인의 특성상 혼거 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하며 독거수용을 요청했지만 성소수자 처우 관련 절차는 상당부분 생략됐고, 수용자의 의견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 인권위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 제한 행위”

이 과정에서 교도소 측이 별도의 상담자를 지정하지 않은 점도 인권위는 문제 삼았다.

‘수용관리 및 계호업무 등에 관한 지침(법무부 훈령)’ 제5장 제39조에 따르면 교도소장은 성소수자의 안정된 수용생활을 유도하기 위한 별도의 상담자를 지정해야 한다.

인권위 조사 결과, A씨와의 상담은 여러 명의 교도관이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7개월 기간 동안 4명의 교도관이 A씨와 상담을 진행한 것이다. 이 때문에 A씨의 성적지향이 다수의 교도관에게 알려졌다는 설명이다.

인권위는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동성애자는 성소수자인지 확인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신속히 별도의 상담자를 지정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성소수자라고 주장하는 피해자(A씨)에 대해 별도 상담자를 지정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게티이미지뱅크
인권위는 “성소수자라고 주장하는 피해자(A씨)에 대해 별도 상담자를 지정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 게티이미지뱅크

혼거수용을 거부하며 입실을 거부한 A씨에게 교도소 측이 징벌 조치한 것 역시 부당하다고 봤다.

인권위에 따르면 교도소 측은 혼거실 입실을 거부하는 A씨에게 일반경비처우급(S3)에서 중경비처우급(S4) 낮아지는 처분(징벌)을 내렸다.

중경비처우급(S4)은 수용자에게 가장 많은 제한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중경비처우급은 CCTV가 설치된 독거실에서 생활하며, 일반귀휴, 사회견학, 가족만남의 날, 가족만남의 집 등의 처우가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성소수자라고 주장하는 피해자(A씨)에 대해 ‘수용관리 및 계호업무 등에 관한 지침’에 따라 별도 상담자를 지정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입실 거부 행위에 대해서만 징벌을 부과했다”면서 “이는 피해자가 고립된 생활을 넘어 감당하기 힘든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게 한 것으로,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 교도소 측 “생물학적 성에 따라 수용자 처우 원칙”

이에 대해 교도소 측은 A씨의 성적지향 관련 기록이 없어서 A씨의 주장 내용을 사실로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교도소 측은 인권위에 “피해자(A씨)는 입소 시 본인의 성적지향과 관련하여 별다른 의사 표현을 한 바가 없다”면서 “교정기관에서는 생물학적 성에 따라 수용자를 처우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시설의 형편을 설명했는데 A씨가 계속 입실을 거부해 징벌 처분을 한 것”이라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인권위는 성소수 입소자에 대한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교도소 측에 “성소수 수용자에 대해 별도 상담자를 지정하는 등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의 이번 권고에 대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관계자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단체 관계자는 “성소수자 모두를 독거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독거수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실제로 교도소에 수용 중인 성소수자 분들이 상담연락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대부분 교도소 내부에서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져서 차별을 받거나 폭력을 경험한 사례들이다. 이러한 분들이 독거수용을 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무부) 지침이라는 것은 일반 국민에게 구속력 있는 법률은 아니지만 그 행정을 담당한 사람들은 지켜야 한다. 내부적으로 인권 관련 지침이 있지만 행정관행상 지켜지지 않는다면 문제”라고 덧붙였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인 희망법의 박한희 변호사는 “이전에는 성소수자를 독거수용하는 것이 문제였다”면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방식이 문제가 됐었는데, 이번 사건은 본인이 혼거수용을 원하지 않았다. 성소수자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렇게 판단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권고 내용이 추상적이라는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상담을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하는데 현장이 개선될 수 있는 구체적인 권고가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교도소들이 특별히 변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근거자료 및 출처

수용관리 및 계호업무 등에 관한 지침
http://www.cathrights.or.kr/bbs/view.html?idxno=22891

  천주교인권위원회

성소수자 수용처우 및 관리 방안
http://www.cathrights.or.kr/bbs/view.html?idxno=22852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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