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얼마 전 세입자가 지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문제는 사망한 세입자의 계약 기간이 1년 더 남았다는 겁니다. 전세금은 추후 세입자의 상속인들에게 돌려줘야겠지만,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라 당장 반환을 요구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계약 기간 중 세입자가 사망한다면 집주인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전세금반환 시기뿐 아니라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는 건 아닌지 혼란이 생기기 때문.

실제로 계약 기간 중 세입자가 사망하면 그의 상속인이 전세금반환을 바로 요구해 분쟁이 일어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전세 기간 중 세입자가 사망하더라도 임대차 계약은 쉽게 무효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임대차 기간 중 세입자가 사망하면 집주인은 남아 있는 계약 기간을 파악해 전세금반환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 즉 사망한 세입자의 상속인이 남아 있는 기간을 무시하고 전세금반환을 요구하더라도 집주인은 그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뜻.

민법에는 세입자가 사망한 경우 상속절차로 인해 그의 상속인이 사망한 세입자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민법 1005조 - (상속과 포괄적 권리의무의 승계) 상속인은 상속개시된 때로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한다.

따라서 사망한 세입자의 상속인은 임대차 계약서상 세입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계약 기간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과정에서 상속인은 계약 특성상 월세가 발생하거나 관리비 등의 비용을 내야 할 의무까지 생긴다.

반면 세입자의 사망 시점이 한 번이라도 계약이 갱신된 후라면 계약 해지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 즉 남아 있는 계약보다 빨리 계약해지가 가능하고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 시기도 빨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주택 임대차보호법에는 '세입자는 계약이 갱신된 후 언제든지 집주인에게 계약해지를 통지할 수 있고 그 후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해지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

주택 임대차에서 계약이 갱신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세입자가 갱신요구권을 행사하거나 묵시적 갱신이 된 상황이다.

법률에서는 두 가지 계약 갱신 상황에 모두 세입자가 언제든 계약해지 통보를 할 수 있고 이후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전세금반환요구도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세입자의 사망으로 인해 권리와 의무를 승계받은 상속인은 법률상 절차대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전세금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만약 집주인이 이를 거부한다면 상속인이 집주인을 상대로 전세금반환소송까지 가능하다.

다만 현실에서는 법률 규정과 다르게 유연한 합의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상속인이 사망한 세입자와 함께 거주한 경우 꼭 상속절차가 아니더라도 세입자의 지위와 동일하게 보기 때문. 법률에서는 이를 보조 점유자라 한다.

가령 계약서상 아버지가 세입자로 등록되어 있지만, 주민등록상에는 함께 거주하고 있는 가족 모두가 점유자로 등록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계약서상 세입자로 특정된 아버지가 사망하더라도 나머지 가족들이 보조 점유자로서 세입자의 위치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은 기간을 채워 거주하면 된다.

반면 상속인에 해당하는 가족이지만, 사망한 세입자와 함께 거주한 게 아닌 경우 집주인과 상속인이 합의 후 계약을 조기에 해지하는 사례도 많다.

한편 사망한 세입자에게 상속인조차 없는 경우에는 상황 판단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은 집주인 마음대로 계약해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계약 기간 중 집주인이 마음대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듯이 세입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뜻.

따라서 집주인은 세입자의 재산을 관리할 상속재산관리인을 선임해 남아 있는 계약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계약을 해지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후 세입자의 전세금을 맡은 상속재산관리인은 상속인이 없는 세입자의 전세금을 국고에 귀속하는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상속재산관리인이란 상속인이 여럿이거나 존재하지 않을 때 상속재산의 관리 및 청산을 위해 가정 법원이 선임하는 관리인을 뜻한다.

정리하면 계약 기간 중 세입자가 사망하더라도 계약에 따른 권리와 의무가 상속인에게 승계되기 때문에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다만 현실에서는 상황에 따라 집주인과 상속인의 합의로 계약이 조기에 해지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상속인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집주인이 상속재산 관리인을 선임해 계약 관계를 정리 후 전세금반환을 진행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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